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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가난했으면 좋겠다" | |||||||||||||||||||
한국기독교장로회 60주년 인터뷰 시리즈 - 이수호 집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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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에서 민주노동당 최고 위원, 서울시 교육감 후보까지 한국 사회의 변혁 운동에서 일익을 담당해온 사람, 한국갈등해결센터 이수호 상임이사이다. 그는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인으로 하늘샘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기장 60주년, 그 동안 목회자들의 입을 통해 평가나 비판, 의견 등은 많이 들어왔지만 평신도의 눈에서 보는 평가와 전망은 많지 않았다. 이수호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기독교인이기 보다는 노동운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 배경과 근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교사 출신으로 교육운동 현장에서 출발해 노동운동, 진보정치운동, 민주노동당 최고 위원을 거쳐 작년 겨울에는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노동운동가의 이력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릴 적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어머니와 교회에 다녔다. 교사가 되고 나서 나에게는 자기고백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대로 사는 것이었다. 정의를 가르치고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가르치는 교사도 그런 삶을 살아야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바탕에는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예수라는 인물이 있었고, 내가 따라 살아야할 모델로 생각했다. 어떤 일을 당할 때, 만약 예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러다 보니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정신이나 예수의 삶은 나의 길잡이 또는 기준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원래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까? 원래는 상당히 보수적인 기독교 교파에서 신앙생활을 했었다. 형이 목회의 길을 가고, 집안이 모두 교회에 나가다 보니까 계속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전교조 결성으로 인해 징역과 수배를 당하면서 교회에 가지 못했다. 1993년 출감 후, 다니던 교회가 내부 문제를 겪으면서 교회를 바꾸게 되었는데, 하계동에서 빈민선교를 하던 영은교회에 나가면서 기장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기장교회가 주장하던 빈민교회, 민중교회 운동을 하는 교회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던 교회였다. 그 뒤로 지금까지 영은교회(하늘샘 교회와 합병)에 다니고 있다. 교회에서는 집사이고 학생부 부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처음부터 신앙생활이 뚜렷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영은교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가족이 다 교회에 나가니까 의무적으로 출석하는 정도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간 것이다.(웃음) 하지만 보수적인 내용은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보수적인 면을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나갔던 것 같다. 그저 진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윤리를 제공하는 정도로 생각해 버렸다. 그러던 중 출감 이후, 영은교회에 출석과 스스로 사회 운동적 삶을 그리는 과정에 들어가면서 기독교는 개인의 구원이나 사후 문제에 대한 해답만을 주는 것이 아닌 현재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영은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공부방, 노인 돌봄, 무료 진료 등 많은 일을 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기독교에 대해 눈이 뜨인 것 같다. 한마디로 영은교회를 접하면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 것 같다.
기장 교인으로 살아오면서 ‘기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솔직히 기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측면이 있다. 우선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있으며, 복잡한 교단정치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바라본 기장은 아주 진보적이고 실천적인이며, 사회의 고통과 어려움에 함께 하려는 예수 정신, 기독교 정신이 살아있는 교단이었다. 그래서 산업선교회 같이 여러 가지 어려운 곳에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교단이라고 생각했고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교도소에서 홍근수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통방(이웃 감방의 수감자와 암호로 의사를 소통함.)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기장 교단은 사회 민주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교단이라고 생각했다. ‘기장성’이라는 것도 사회의 부조리나 사회에서 억눌린 사람들, 노동자, 빈민 등을 예수 정신의 구체적 행동과 실천이라고 보고 있으며,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기장 60주년을 맞아 일반 교인으로서 기장의 모습을 평가해 주십시오. 한국 기독교가 비대해지고 이상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 중에서도 기장은 기독교 본래의 정신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회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한 점을 바꾸려고 하며, 사회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갖는 교단은 기장이 가장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실천을 하려면 목회자도, 교인도 고독하고 가난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현실적 어려움에 자꾸 편안함에 빠지려고 하는 경향이 보인다. 물량주의에 사로잡혀 큰 교회, 많은 교인, 높은 교회 재정 등에 연연하는 것 같다. 그럴수록 본래 지향해야할 기독교의 정신과 가치가 훼손되고 가려지는 것 같다. 물론 덩치를 키워서 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교회의 원래 사명을 생각했으면 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더 역동적이고, 서로를 안타까워하고, 공동체의 정신으로 이겨냈으면 한다. 교회가 조금 커지다보면 이런 부분이 자꾸 형식화되고 분리되며, 목회자들은 교회 정치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런 모습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 기장 교회도 그런 양상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말 어려운 시기, 70년대 말, 80년대 초, 기장 교회는 시대의 등불 역할을 해왔다. 사회에서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찾아가면 언제나 문이 열려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면서 그런 적극적인 모습이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향린교회가 추구하는 분가선교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꼭 교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다니던 영은교회는 2,30명 빈민교회로 정말 가족으로 지냈다. 그런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커지면 점점 본래의 가치를 지키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교회를 대형화하려 한다면 결국 관료주의와 권의주의가 생기고, 정치 논리가 우선이 되어 버린다. 이런 모습은 예수가 추구한 근본정신과 맞지 않다. 교회가 물량주의나 성장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미 자본주의는 뼛속깊이 체질화되어 있다. 결국 경쟁, 규모를 생각하게 된다. ‘부(富)’라는 것은 팽창하도록 되어 있고, 그것이 미덕이자 능력인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구조, 물신주의 구조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 양극화의 그늘에 있는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빈민들이 존재한다. 한국교회는 이런 면을 제대로 보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을 능력이 없는 사람, 기도를 덜 했거나 믿음이 적어서라고 얘기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더욱 자본주의가 체질화 되어서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아우성치는 민중들처럼, 예수가 그들을 보며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고 말한 것처럼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개신교는 자본주의 특성을 참 많이 가지고 있다. 개체교회 중심주의나 공격적인 전도에 의한 교인 빼오기, 교인들에 대한 통제와 관리 등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일반 회사에서도 조직 관리를 교회에서 배워오겠는가? 교육감에 출마하면서 대형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10명 이하의 그룹으로 치밀하게 짜여져 관리되고 있었으며, 헌금도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곳곳에 자본주의적 관점이 녹아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호도하고 분칠을 하더라도 예수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아무튼 교회는 좀 가난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말처럼 현실의 문제에 앞장서서 실천하는 책임 있는 교회와 교단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양극화가 극심한 사회에서 억눌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힘든 노동자들이나 빈민들과 함께 새로운 60년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 초기에 인사문제, 정부조직 개편안 등 악수를 두면서 국민들의 지지도가 매우 낮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본래의 모습,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본다. 국민들의 지지도가 낮은 지금은 원래 발톱을 꺼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지지도를 조금이라도 회복한다면 노조에 대한 공격, 사회적 양극화 등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싸워가는 지혜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이나 깨어있는 사람들은 저항하고 연대해서 함께 싸우는 것이 기본이다. 나는 기독교 정신 때문이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 정신이나 예수의 면모를 제대로 교인들이 이해하는 것에 개인의 경건함, 위로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저항하고 참여하고 힘을 보태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의 생각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목회자가 조금 더 기독교 본래의 정신, 가치, 역사적 요청을 교회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 평신도로서 목회자나 교단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것 같아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교회에서 역할에 따른 조화를 통해 목회자의 지도와 존중, 평신도의 비판과 참여를 가질 때 올바른 기독교의 실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
첫댓글 기장은 애증의 대상같습니다 버릴수도 쥘수도 없는 손안의 뜨거운 감자같기도 하고요 기존제도권 내에서는 그래도 가장 왼쪽에 있고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인정은 해줄수 있지만서도 그래도 여전히 교권이 존재하고 권력과 자본이 힘을 발휘하고 있고 신도들간 계급과 계층이 존재하는 기성교단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운면도 있는거 같고요 그러나 보수적교단이 워낙 힘이 강하고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기독교계내에서 그래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신학과 사회실천을 해나간다는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긴 있는것같고요 이수호님이 그래도 좋은교단 좋은교회에 정착을 해서 바른 기독교인으로 생활하고 계시다는것이
바람직해 보이기는 한데 다음 교육감선거에서는 꼭 당선이나 되었으면 좋겠네요 교육계도 워낙 보수적성향이 강한곳이라 그 벽을 뛰어넘을수나 있을런지 걱정도 되고...
하나형제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도 기장 수준만 되어도 한국의 기독교는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