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겐지의 ‘그날 밤의 맛있는 맥주’
뚱뚱하게 살이 찐 중년 남자가 어설픈 솜씨로 골프며 스키 같은 운동을 한다. 그런 다음 너무 맛있게 맥주를 비우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식의 TV 광고가 자주 나온다. 이런 광고를 볼 때마다 모처럼 땀을 흘렸는데 맥주를 저렇게 벌컥벌컥 마셔서야 살만 더 찌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저렇게 이상한 웃음을 짓는 남자를 잘도 찾아냈다는 놀라움이 든다. 광고의 진짜 노림수에는 절대로 속지 않는다.
예전에 이제 막 만들었다는 맥주를 마신 적이 있다. 맥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억지로 마신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세상에 유통되는 생맥주라는 것은 그저 쓰디쓴 물 같고------ 아니, 지금은 좋아졌을지도 모르니 과장해서 말하는 것은 그만 두기로 하자. 아무튼 공장 사람이 마시라고 집요하게 권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마셨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용기에 넣기 전의 맥주(다른 술도 그런 모양이다.)는 전혀 과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니, 공장에서 마시는 정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느니.
시골 사람들의 애주 정도를 보고 나면 질리고 만다. 물론 도시 사람도 술을 좋아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취해서 난리를 피우는 모습도 고만고만하지만 어딘가가 다르다. 본인들은 즐기면서 마시는 것일 텐데.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내 눈에는 음주가 삶의 유일한 보람인 것처럼 보인다. 어김없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웃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져 있다. 때로는 거친 인상을 받는 일조차 있어 어쩐지 서글프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술 한 병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얼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달리 잠을 못 자서도 아니고 몸이 아파 열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얼굴 전체가 부어올라 있다고나 할까. 부석부석 하다고 할까. 칙칙한 분홍빛으로 부풀러 올라 있다. 여성의 경우는 훨씬 더 선명하게 얼굴에 드러난다. 애써 가꾼 몸매와 미모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붓기 때문에 특히 웃을 때 오싹할 정도로 천하게 보이기도 한다.
맥주에는 추억이 하나 있다. 이제 막 청춘이 시작되었을 무렵의 일이어서 아무래도 좀 괴롭고 안타까운 추억이 되고 만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여름밤, 나는 반 친구 몇 명과 함께 옥상에 있는 맥줏집으로 나섰다. 센다이 거리는 야경이 아름답고 바람에는 어렴풋이 바다 냄새가 났다.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어른들 얼굴은 어딘가 어린애같이 발랄하고,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인생을 긍정하고 있었다. 작은 잔을 든 나는 쓴 맛밖에 느끼지 못하는 보통 맥주 맛을 각오하고 그 차가운 액체를 목 너머로 단숨에 들어부었다. 그런데 그 맥주가 예상외로 맛있어서 금새 다 마셔버렸다. 딱딱한 의자에 등을 내맡긴 채 나는 한동안 멍하니 공허함 밖에 비치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마음 탓인지, 별빛이 유난히 강렬하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옥상 주위가 바다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꿈을 꾸는 듯한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아마 누구 한 사람도 영원한 우정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모두가 분명 행복한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입을 열어서 하는 말은 건성뿐이고, 호주머니는 빈털터리이고, 머리는 텅 비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우리는 평소와 달리 마음이 넉넉했다. 그것이 단순히 알콜 탓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고 소리를 질러내며 거리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인생길로 나서, 두 번 다시 만나지도 못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억척스럽게 살고 있을 뿐이다.
반 친구 한 명은 자살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술에 취해 전철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최근에 바다에서 또 한 명이 사고로 죽었다. 나머지 친구는 힘차게 살고 있는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무사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어딘가 먼 지역에서 직장 동료들 몇 명과 맥주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하고.
나로 말하면 맥주를 마시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맥주도, 위스키도, 청주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독특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혹 예전 친구들이 모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주스만 마실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그날 밤의 맥주처럼 맛있게 마시지는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