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양순태 | 날짜 : 10-03-11 12:01 조회 : 1771 |
| | | 양순태 이상기온 현상인가 봄을 시샘하는 전주곡일까. 한동안 계속되던 포근한 날씨가 영하7도로 곤두박질친 아침공기가 맵다. 떠나가는 계절의 마지막 장일 것만 같아 동절기의 끝자락이라도 잡아 두고픈 아쉬움이다. 미운 이도 떠나고 나면 울컥 서러워지는 법, 언제 또 맛보게 될 혹한의 매력인가. 서울중심을 벗어나 올림픽 대로를 향하는 마포대교가 자욱한 안개 속에 묻혀 환절기의 묘미를 자아낸다. 자동차의 느린 속도에도 아찔한 스릴감이 있고 일순간 내려 본 차창으로 들이치는 냉기는 예리한 서릿발이 꽂히는 듯 살갗이 따끔하다. 때로는 세상과 차단된 공간에서의 호젓함이 독립된 자유를 맛보는 별천지가 된다. 좁은 차안에서의 아늑함같은, 보슬비 내리는 숲 속의 적막이 그러하며 나지막한 천장 다락방에서 우러나는 정감에서도 그러하다. 굵은 빗줄기 팽창한 우산 위로 통통대는 빗소리가 경쾌하고 작은 우산 속에서 느끼는 안도감도 그만이다. 짜릿하도록 깊은 고독과 살얼음 같은 투명한 외로움이 얼기설기 엮어져 시시때때 추억으로 들춰 보는 산소 같은 순간들을 삶의 애착으로 마음 한 자리에 고이 묻어 간직하고 싶다. 10여m 앞의 깜박이는 빨간 차등은 위험을 알리고 한강도 여의도도 무채색의 배경이 된다. 가까이 스치는 윤중로에 벚나무는 머지않아 볼록하게 부풀어 오를 꽃망울을 달고 일렬로 늘어선 고목들이 한 폭의 산수화로 운치를 더한다. 한강변 대로가 자욱한 안개터널이다. 정해진 인생의 운명과 같은, 길이 있으나 보이지 않는 길. 묵묵히 슬기롭게 헤쳐 가야 하는 길. 오리무중에도 빛을 찾아 향하는 길고 긴 여정. 희망이 있어 분명한 것은 하늘 위에 찬란한 햇살이 비추고 있음이다. 동장군의 한파가 제아무리 혹독하다 하여도 육중한 지구를 꿈틀거리게 하는 봄의 훈기는 대자연의 순리이며 법칙인 것을... 뒤돌아 보면 한 순간이요 안개 속에 퍼져 나는 희불그레한 광명의 눈부심이 생의 결실로 다가올 때면 모든 고난 다 잊고 특별한 행운이라 여기며 웃음 짓는 인간 본연의 심성 고운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를 감동하게 한다. 올림픽대로 끝자락을 따라 한강하류 제방도로를 들어선다. 군사보호구역의 날선 철책에 돋아난 서릿발의 매서움은 남과 북의 팽팽한 대치상황을 강조한다. 간첩도 비행기 타고 넘나드는 시대에 완전무장 한 간첩선 잠수함이 경계의 눈을 번뜩이며 안개 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올 것만 같은 한반도의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안개로 빚어지는 한정된 공간에 앙상한 나무들과 갈색 풀잎들이 서리로 단장한 하얀 세상은 마치 동화의 나라를 연상케 하는 여기는 대한민국 자유의 땅, 스치는 풍경에 감탄사 연발이다. 김포벌판을 거쳐 다다른 조각공원 산언덕에도 서리꽃 몽실몽실 고운 자태가 만개한 벚꽃인 양 무리지어 화사하고, 건너편 산등성이 눈썰매장에는 빙사기의 요란한 소음과 함께 줄기차게 눈가루를 뿜어댄다. 금방이라도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천국으로 웃음꽃이 만발할 것만 같다. 안개 짙은 날은 강한 햇살에 머리 벗어진다더니 오늘은 완연한 봄 기운이 들려나 보다. 아직은, 운동화에 밟히는 흙에 박힌 얼음이 꼿꼿하고 굳어버린 얼굴은 감각이 없다. 솔숲에 쌓인 참솔 갈비 한 움큼에 알싸한 낙엽향기 맡으며 그 옛날 가마솥에 구수한 밥 끓는 냄새를 떠올려도 본다. 개장開場을 알리는 피아노 연주곡이 옥구슬 구르듯 숲으로 퍼져 나고 하늘을 가린 검푸른 솔가지 사이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햇살의 억지가 반갑다. 저 아래 월곶 마을 동장님의 아침인사를 실은 마이크 소리가 메아리 되어 평화로운 고장의 산야를 울린다. 세계가 주목하는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로서 이 곳 김포에 국제 조각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을 주제로 한 국내 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훌륭한 예술 공간이다. 평탄한 능선에 오솔길로 이어지는 테마공원으로, 중 대형작품 30여 점이 자리하여 꿋꿋한 자태로 품격을 더한다. 계절마다 기후 따라 변모하는 자연을 배경하여 시시때때 새로운 느낌을 갖게한다. 움직이는 날개 '숲의 전설'은 바람 없는 날의 미동으로 고요한 아침을 연다. 오천 년 역사를 안은 뿌리 깊은 백의민족을 상징하여 날개부분을 흰색으로 표현한 작품이 먼저 나서서 길을 잇는다. 저 만치에 '산들거리는 속삭임' 앞에 서면 파란하늘에 유유자적하는 대형 잠자리의 은빛날개 눈부심은 마주보는 이로 하여금 비상을 꿈꾸게 한다. 그 앞에 서서 우러러 상상 속의 투명인간이 되어도 본다. 산등성이 정자에 올라 시야에 펼쳐지는 천지天池의 조화를 바라보는 순간은 내 선비 다 된 기분이다. 정자가 자리한 곳이야말로 자연의 중앙이며 마음의 중심이라 했던가. 저 멀리 겹겹이 그림 같은 산세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들이 평화롭다. 조선조 22대 정조 왕과 규장각 의학사 윤행임의 좌담에서 우리나라 8도 인물평에 있어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 칭했다는 경기도의 빼어난 풍광風光중에 그 일부인 김포광야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에 이름 모를 장인匠人의 우직함이 배어나는 우리의 문화유산 가치를 지니고 제 위치에서 그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회복된 낙원'은 남과 북의 대치상황을 상징하는 청, 홍색 두 마리의 거대한 공룡 한 쌍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힘찬 날갯짓에 남북의 화합을 기대하게 한다.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휘어 돌아 오르는 지점에는 주인 잃은 이태리 산 구찌 샌들 한 짝이 6.25동란으로 맺은 60여 년의 우정을 간직하고 담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명품으로서의 품위를 갖추고 여전한 전통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그와 대조적인 '두 얼굴'은 강한 이미지로 관심을 끈다. 석물에 새겨진 무던한 외면에 반해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매몰찬 표정에는 평화의 장 안전지대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나그네의 가슴이 섬뜩해진다. 일상에서 벗어나 길을 나선지 두어 시간일진데 억겁을 되돌아선 듯 아득하게 느껴지는 산 넘어 강 건너 마을이다. 반세기에 걸친 깊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실체가 드러남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가면으로 무장을 거듭하고 있다. 검은 안경에 가려진 기회주의자의 속모를 미소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자유를 갈망하는 탈북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분단된 한반도에 통일의 날은 언제나 오려는지. 통일조국이야말로 삼천리금수강산이 춤출 이 시대 최고의 걸작인 것을. 쏟아지는 햇살에 세속의 티끌 점점이 소멸되고 맑은 공기 한 아름 가슴에 안는다. 티 없이 푸른 하늘을 마시고 솔숲이 숨 쉬는 산소를 삼킨다. 까마귀 까악 까악 산비둘기 꾹꾹 꾸 욱꾹 가까이서 재잘대는 산새들의 지저귐은 천국인가 극락인가. 자유여 평화여 살아 있음에 행복감이여, 꿈이라면 영원하기를... 2010 한국수필 2월호 |
| 이희순 | 10-03-11 15:23 | | 선생님은 봄처녀가 되셨군요.
밀려오는 포근한 느낌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하네. 해맑은 하늘엔 햇빛이 눈부셔 꿈이라면 너무 슬프리라.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소망이 이루어져가고 있네. 그대 있으니까 모두가 행복해 그대 하늘처럼 높아보이네...
선생님의 봄을 감상하다가 문득 이성애 님의 '사랑을 느낄 때(top of the world)'가 떠올랐습니다. | |
| | 양순태 | 10-03-12 01:29 | | 이희순 선생님 들려주시는 황홀한 가사에, 실크감촉의 봄 바람이 스치듯합니다. 여성의 계절이라고들 하는 봄이면 마음만은 해맑은 소녀의 감정이 되살아나곤 한답니다. | |
| | 강승택 | 10-03-11 19:56 | | 금년처럼 봄 햇살이 그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총회가 있는 12일은 날씨도 청명하다니까 한결 기분이 좋네요~내일, 스치는 얼굴마다 반갑게 인사해요. 쓸데없는 긴장일랑 털어버리고~~~~ | |
| | 양순태 | 10-03-12 01:42 | | 강승택 선생님 반갑습니다. 봄이 오는 시기에 화기애애한 작가회의 분위기를 떠올려봅니다.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올 해 들어서는 선생님의 열성에 힘입어 한층 새로워지리라 기대하는 맘입니다. | |
| | 임재문 | 10-03-13 22:37 | | 양순태 이사님! 반갑습니다. 양순태 이사님만 보면 꽃바구니 생각이 납니다. 꽃처럼 그렇게 마음씨도 아름다우실 것만 같아서 입니다. 항상 지켜보아 주시고 그래서 더욱 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양순태 | 10-03-16 04:55 | | 임재문 전회장님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요즈음 선생님의 일상이 편안하신 듯한 느낌에 그저 감사의 마음입니다. 꽃을 바라보시는 표정만으로도 선생님의 심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누가 말하더군요. 꽃을 너무 좋아하면 외로운 법이라구요. 외로워서 꽃이 좋은건지, 꽃이 좋아서 외로워지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외로운건 원치않는 일이기에 한 동안 꽃을 멀리하려고 억지를부리다 보니 생기잃은 날들이 스산한 가을입니다. | |
| | 박원명화 | 10-03-15 01:06 | | 진짜 봄처이신 양순태 선생님!!!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글 한 편 잘 읽었습니다. 꽃처럼 여린 선생님의 모습만 봐도 꽃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런 분이지요. 일상에서 벗어나 아늑한 여행을 한 셈이시군요. 항상 사랑하는 동인으로 남겨지길 기원합니다. | |
| | 양순태 | 10-03-16 05:16 | | 박원명화 전 사무국장님. 우리 작가회의 안주인 역할에 장장 2년간을 참으로 수고많으셨습니다. 계절이 계절인만큼 이젠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함께 화사한 봄처녀가 되어 보실까요? 개나리 진달래 벚꽃으로 머리를 장식하며 나에게 깃든 꽃의 신 기를 선생님께도 불어넣어 볼까 합니다. 꽃. 귀신. ㅎㅎㅎㅎ 남산으로 오세요~~ | |
| | 최복희 | 10-03-16 08:43 | | 맑게 개인 아침 양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상큼한 봄 맛을 느낍니다. 이번 총회 때 무슨 일로 못나오셨어요. 봄꽃처럼 화사한 미소 눈에 어려 자꾸 둘러봤습니다. 좋은 글 감상 잘 했습니다. 하루가 행복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
| | 양순태 | 10-03-17 03:36 | | 최복히 선생님 저도 뵙고싶었습니다. 작가회 행사마다 무공해 자연속에서 금방 얼굴을 내민 듯한 봉곳한 한 송이의 꽃 봉오리를 연상케 하시는 모습은 여전히 반갑습니다.
늘 그자리에 그 모습으로 함께 하시는 작가회 가족의 합심된 분위기에서 은은하고 화사하고 깊이있는 인정의 향기만으로도 가득찬 꽃 밭으로 어우러는 우리 작가회는 언제나 굳.굳.굳.입니다. | |
| | 김창식 | 10-03-18 14:43 | | 김포 벌판에 홀로서서 통일을 염원하는 선구자... | |
| | 양순태 | 10-03-20 07:00 | | 경기 북부 dmz 접경지역 130km 트레킹 코스를 4월에 개방한다고 하니 걷기운동겸 그 곳으로의 봄 나들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을 노래하며^^ | |
| | 김정자 | 10-03-21 18:26 | | 양순태 선생님 좋은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양순태 | 10-03-23 05:30 | | 김정자 선생님 멀리 청주에서 다녀가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이미 10년 전에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셨네요. 저는 봄을 맞으려는 기대감에 여전히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생각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하니 다음은 '봄 바람 타고'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 보아야 겠습니다.
작가회 행사 때마다 박영자 선생님과의 나들이 모습이 다정한 자매 같으신 부러움이었기에 이아침 두 분 선생님을 그려봅니다.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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