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한다
아비센나(서기 980~1037년)
맥락읽기
이전의 관련 역사
기원전 400년경 : 플라톤이 정신과 육체는 뚜렷한 물질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4세기 :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신은 육체의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서기 800~950년경 :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처음으로 아랍어로 번역된다.
이후의 관련 역사
서기 1250~1260년대 :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과 육체에 대한 설명을 개작한다.
서기 1640년 : 르네 데카르트가 그의 저서『성찰Meditations 에서 이원론을 주장한다.
서기 1949년 : 길버트 라일이 그의 저서『정신의 개념The Concept of Minds 에서 이원론을 '범주오류'라고 설명한다.
이븐 시나(Ibn Sina)라고도 알려져있는 아비센나(Avicenna)는 전통 아랍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전임자 알 킨디(al-Kindi)와 알 파라비(al-Parabi)를 비롯해 후임자 아베로에스(Averroes)처럼, 아비센나는 이슬람교의 신학자보다는 그리스의 지혜와 논리와 증거의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 철학자로 자신을 의식적으로 부각시켰다. 특히 그는 자신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라 여겼으며, 그의 주요 저서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아비센나가 다시 정리하여 종합해놓은 것이다. 아비센나는 우주가 항상 존재했다는 사상 등의 원칙에
관해서는 이슬람의 정통과 충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고수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마음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났다. 한 가지 예로 정신(또는 자아)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 수 있다.
정신과 육체는 뚜렷이 구별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또한 다른 동물들도)의 육체와 정신은 두 개의 다른 것들(또는 '물질들')이 아니라 하나의 합일체이고, 정신은 육체의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정신은 사고를 비롯하여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책임이 있다.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어떤 것도 죽음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와 반대로, 아비센나는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원론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육체와 정신이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훌륭한 선배는 정신을 육체에 갇혀있는 별개의 물질로 여겼던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의 주장에 따르면, 죽음의 시점에서 정신은 육체라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어 이후 또 다른 육체에서 환생한다.
아비센나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었다.는 본질을 입증하려고 '공중인간(flying man)’이라고 알려진 한 사고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은 그의 저서 「치유의 서안의 영혼론>이라는 논문에 등장하는데, 이는 가능한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지식은 모두 벗겨
내고 절대적 진리만 남겨두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세월이 훨씬 지난 17세기의 유명한 이원론자 데카르트가 자신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결정한 사고를 훨씬 앞지른다. 아비센나와 데카르트는 모두 정신이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 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자아가 인간의 육체와 별개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 했다.
공중인간
'공중인간'이라는 사고실험에서 아비센나는 우리가 사실상 감각을 빼앗기게 되어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감각에 의존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없는지 시험하고 싶어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상상해볼것을 권한다. 나는 방금 생겨났지만 모든 정상적인 지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눈이 가려지고 공중에 떠있으며 팔다리가 서로 분리되어있어서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어떤 감각도 완전히 없다고 가정해보
라. 그렇더라도 나는 내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고 하는 이 자이는 무엇일까? 내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자아는 내 육체의 일부일 리가 없다. 내가 존재한다고 단언하는 그 자아는 길이나 폭이나 깊이가 전혀 없다. 그 자아는 확대도 안되고 물질적 특성도 전혀 없다.
따라서 인간의 자아(나란 존재는 무엇일까?)는 육체나 물질적인 것과 별개의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아비센나에 따르면, 공중인간 사고실험은 정신이 육체가 아닌 것, 즉 육체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주의하고 상기시키려는 방식이다.
아울러 정신이 물질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입증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의 방법들은, 정신으로 이해될 수 있는 지적 지식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에 포함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질적이고 형태를 이루는 것들이 물질적이고 형태를 이루는 감각기관의 일부와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기는 쉽다. 내가 바
라보는 벽의 이미지는 각각 렌즈의 한 부분에 일치하면서 눈의 렌즈를 통해 확대된다.
하지만 정신은 감각기관이 아니다. 정신이 파악하는 것은 '인간은 이성적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동물이다'와 같은 정의들이다. 이 말의 부분들은 모두 한번에 파악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신은 육체와 같은 방식이거나 육체의 일부일 리가 없다.
불멸의 영혼
아비센나는 또한 정신은 육체가 죽을 때 파괴되지 않고 불멸성을 지닌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 결론으로 인간, 즉 육체와 정신이 죽은 뒤 부활해 사후를 누린다고 믿는 정통 이슬람교도들은 그의 사고를 더욱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비센
나는 12세기에 위대한 이슬람 신학자 알 가잘
리는 아비센나를 사후 환생한다는 이슬람의 핵심교리를 포기한 이단자라 불렀다.
아비센나의 의학지식은 너무 광범위해서 그는 왕실
의 후원을 얻었다. 그의 의학전범』 은 17세기 중반
까지 유럽의 의학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사고하는 존재다. -르네 데카르트
하지만 그 시대에 아비센나의 업적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그의 이원론이 기독교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들은 아비센나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불멸의 영혼이라는 관념과 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명백한 자아
약 200년 후인 1250년대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신과 육체가 훨씬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을 더 신뢰하면서 옹호했고, 그의 관점은 16세기와 17세기의 신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1640년에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보다 플라톤의 사상에 더 가까운 이원론에 관심을 돌렸고, 그에 대한 데카르트의 주장은 아비센나의 주장과 매우 흡사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에 관해 자신이 어쩌면 기만당할 수 있는 어떤 악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속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깨닫는다. 이 자아는 정확히 아비센나가 다른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공중인간에서 확인한 바로 그 자아다. 그당시 아비센나처럼 데카르트도 '나'라는 자아는 육체와 완전
히 별개의 것이고, 또한 분명 불멸의 존재라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기계 안의 유령
아비센나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반대 주장을 펼친 사람은 바로 토마스아퀴나스다. 그는 사고하는 자아는 육체에서 감각을 느끼는 자아와 똑같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선원이 그의 배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는 식으로 나는
내 다리에 통증이 있는 것을 그냥 관찰하지는 않는다. 그 통증은 철학에 관한 내 생각이나 내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에 관한 내 생각들처럼 내게 속해있는 것이다.
현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주로 뇌에 대한 현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주로 뇌에 대한 과학지식이 증가했기 때문에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을 거부한다. 아비센나와 데카르트는 모두 철학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그들은 운동과 감각과 같은 활동에 대한과학적 해석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의 과정은 그 시대의 과학적인 도구로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 사고가 뇌의 여러 영역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이것이 자아와 상관없이 하는 사고가 그리 명백하지 않다고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영향력 있는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은 이원론자의 자아를 '기계안의 유령'으로 풍자했는데, 그는 우리가 이런 자아라는 유령에 의존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고 활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소수의 이원론자들을 비롯해 정신이 바로 두뇌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상가들, 그리고 사고는 두뇌의 물리적 활동의 결과라는 데 동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등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두뇌의 물리적 상태(회백질, 뉴런 등)
와 그곳에서 생기는 사고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철학자들, 특히 유럽대륙의 사상가들은 여전히 아비센나의 사고실험의 결과를 어떤 핵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 따르면, 그 사고실험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과학적 이론의 객관적인 관점에 순응하지 않
는 세상의 1인칭 관점을 지닌 자아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비센나
아비센나(혹은 이븐 시나)는 서기 980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부카라(Bukhara)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주로 이슬람세계의 언어인 아랍어로 글을 썼지만 원래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아비센나는 논리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의학에서도 스승을
재빨리 능가할 정도로 신동이었다. 그는 십대에 이미 사만왕조(Samanid)의 통치자 누흐 이븐 만수르(Nuh ibn Mansur)에게 뛰어난 의사로 알려지게 되어 그의 훌륭한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
받았다.
아비센나는 의사이자 정치 고문관으로 여러 왕자들을 보좌하면서 삶을 보냈다.
그리고 21세의 나이에 저술활동을 시작했고 형이상학, 동물생리학, 고체역학,아랍어 구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200여권 이상의 저서를 계속 펴냈다. 그는후원자 알라 알-다울라(Ala al-Dawla)와
함께 출정을 나갔을때 사망했는데, 당시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아비센나의 복통 치료약을 바꿔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주요 저서
서기 1014~1020년경 치유의 서Book of Healing,
서기 1015년경 의학전범Canon of Medicines
서기 1030년경 조언과 암시Pointers and Reminders
*철학의 책 p7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