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울음
김 경 순
“꼬오껴어~~~”
미명의 새벽, 장 닭의 힘찬 외침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일찍이 이육사 시인은 닭의 울음소리를 태초에 하늘이 열리는 소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탉의 울음소리는 시골에서도 듣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것은 간편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축을 기른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을 만드는 일에 불과 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동물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읍내에 사는 우리 집에는 닭들이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수탉의 울음소리가 소도시에서는 소음이 될 수도 있다. 아침잠은 자야하는 이도 있을 테고, 감성이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정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닭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집이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고, 주위에는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종종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마당에서 놀고 있는 토종병아리들이 신기한지 한참을 멈춰 서서 구경하다 가곤 한다. 우리 집 닭들은 모두 열다섯 마리인데, 우리 안에 암탉 네 마리와 깃털이 멋진 장닭 한 마리가 살고 있고, 마당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중닭 열 마리가 있다. 마당을 유유히 다니는 중닭들이 처음부터 우리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중닭들은 모두 닭장 안에 있는 암탉들이 품어서 나온 새끼들이다. 그런데 품안에 자식이라고 했던가. 부화한지 두어 달쯤 되어서 부터 자신들의 새끼를 밥도 먹지 못하게 쪼아대기 시작했다. 아직 연약한 깃털은 이리 삐쭉 저리 삐죽 도통 어미들의 괴롭힘에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새끼들을 마당으로 내놓고 기르기로 했다. 그렇게 마당을 나온 지가 두 달여가 되었다.
며칠 전 이상한소리가 들렸다.
“꾸어~~꺽”
처음에는 잘못 들었으려니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두 세번을 반복해서 들렸다. 밖을 살펴보았다. 마당에는 이제 겨우 엄지손가락 반 큰기의 볏을 단 중병아리 수탉이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지켜보니 그놈이 목을 길게 빼더니만 아까전의 그 소리를 또 내고 있었다. 마치 변성기 소년의 목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둔탁했으며, 짧은 단말마의 비명 같기도 했다. 그 수탉의 괴기한 소리는 그날부터 몇 번씩 들려왔다. 중닭이 저리 마음 놓고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장닭이 없는 마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어쩌면 수탉의 첫울음은 도전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수탉에게 있어 울음이란 승리한자만이 하늘을 향해 내지를 수 있는 포효이기 때문이다. 지금쯤 닭장 속에 있는 장닭의 심정이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일 년 전의 일이었다. 장닭이 꼭 지금의 중닭 만 할 때 우리 안에는 늙은 아비 장탉이 모든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인가 중병아리 중에서 두 마리가 이상한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일순간 아비 수탉의 모습이 변하더니 그 닭들을 쫒기 시작했다. 모이는 물론이거니와 가로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특히 동물의 세계에서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결국 한 마리는 장닭의 괴롭힘에 비실비실하더니만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몇 달 후 한 마리만은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둔탁한 울음을 재우치더니만 어느 날엔가 드디어 목청이 터지고 말았다.
“꺼어꾜오~~~~!!”
처음에 장닭의 소리인줄 알았다. 하지만 닭들에게도 저만의 톤이 있어 오랫동안 들어온 나는 그 장닭의 음색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순간 툭탁탁 거리는 소리가 들려 닭장으로 뛰어 갔다. 한 쪽 구석에서 왔다 갔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새끼 닭은 어느새 늠름한 검붉은 깃털을 가진 수탉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그놈은 붉은 벼슬과 갈기를 꼿꼿이 세우더니만 이내 아비 장닭을 향해 날아올랐다. 싸움은 격렬했다. 세월의 흔적은 아비 수탉에게도 비켜 갈 수가 없었나보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 후로 크고 튼튼했던 아비 수탉의 벼슬은 서서히 한쪽으로 쳐지기 시작했다. 암탉들은 새로운 강자만을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도 못되어 수탉은 기운을 잃더니만 우리 한 쪽 구석에서 주검이 되어 버렸다. 수탉에게 있어 사랑을 잃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장닭의 죽음에도 아랑곳 않고, 강자가 된 그 수탉은 한 쪽 날개를 쭈욱 펴더니만 암탉을 향한 구애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정한듯 보이는 저들의 삶을 두고 사람인 내가 잘못되었다고 탓 할 수도 없었다. 종족 번식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삶의 방식인 것을 사람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쯤 우리안의 장닭은 자신의 운명을 점칠지도 모른다. 지금은 둔탁하고 짧은 저 소리도 언젠가 하늘을 열듯 울어재낄 날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햇살을 받은 중병아리의 깃털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그러더니 이내 길게 목을 앞으로 빼더니만, 냅다 소리를 지른다.
“꾸어~~~꾜”
첫댓글 지금쯤 우리안의 장닭은 자신의 운명을 점칠지도 모른다. 지금은 둔탁하고 짧은 저 소리도 언젠가 하늘을 열듯 울어재낄 날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햇살을 받은 중병아리의 깃털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그러더니 이내 길게 목을 앞으로 빼더니만, 냅다 소리를 지른다.
“꾸어~~~꾜”
장닭의 죽음에도 아랑곳 않고, 강자가 된 그 수탉은 한 쪽 날개를 쭈욱 펴더니만 암탉을 향한 구애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정한듯 보이는 저들의 삶을 두고 사람인 내가 잘못되었다고 탓 할 수도 없었다. 종족 번식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삶의 방식인 것을 사람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쯤 우리안의 장닭은 자신의 운명을 점칠지도 모른다. 지금은 둔탁하고 짧은 저 소리도 언젠가 하늘을 열듯 울어재낄 날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