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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피숫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왜군은 1592년에 우리나라 부산포로 쳐들어와 2개월도 채 안 되어 전 국토가 왜군에 의해 짓밟혔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으나 졌다. 전쟁 초기에는 모두들 섬나라 왜군이라 깔보며 대단치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상황이 나빠지자 백성들은 왜군들의 약탈을 피해 너도나도 깊은 산골로 찾아들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많은 왜구들은 중으로 꾸며 우리나라 전역을 염탐하였고, 산과 강 등의 지형을 꼼꼼하게 정리하여 전쟁에 활용하였다. 당시 조선은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억압했으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부처가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었기에 중에 대한 신뢰는 높았다. 그래서 머리 깎은 중이라면 의심하지 않았고 호감을 가지고 대했다.
충청도 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왜란이 터지자 미곡리에는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박도령이라 부르는 소년도 있었다. 박도령은 10살로, 목천에서 부모님을 따라 미곡리에 피난을 왔다. 골이 깊어서 왜군들은 알지 못할 거라 안심하고, 저녁 준비를 하려고 물가로 갔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왜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도망을 쳤으나,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잡혀 죽임을 당했다. 박도령도 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달아났으나 따라온 왜군의 칼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쓰러졌다. 박 도령 부모는 순간적으로 아들을 안고 쓰러졌는데, 왜군은 그걸 알지 못했다. 왜군들의 무자비한 살육은 한참 동안 이뤄졌다. 박 도령은 왜군들이 저지른 만행을 아버지, 어머니 품속에서 울면서 이를 지켜봤다.
이때 갑자기 목탁소리가 들리더니 중 하나가 나타났다. 박 도령은 아버지 겨드랑이 사이로 그중의 얼굴을 봤다. 일본 중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는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몰라도 너무나 미웠다. 훗날 만나면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왜군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떠났다. 박 도령은 어두워지자 부모님의 품속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한참을 울었다. 주위에는 너무 많은 주검들이 있고 피 냄새가 온 골짜기에서 묻어났다. 박 도령은 주변의 돌을 모아 부모님을 덮어드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버님, 어머님 죄송하고 고맙습니다.’를 외면서 산을 타고 도망하여 미곡리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렸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년 몇 명이 몹시 분개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 말고 우리 대책을 세웁시다.” “그래요. 우리는 인원이 얼마 되지 않으니 기습적으로 공격하면 될 거예요.” “그럽시다. 왜구들이 지금 목천으로 간다니 우리가 먼저 가 기다립시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목천으로 향했다. 목천 지리를 아는 박 도령이 앞장섰다. 얼마를 가다가 쉬고 있는 왜군을 만났다. 결사대는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천막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미곡리에서 본 중이 염불을 외고 있었다. 순간 박 도령은 움찔했으나 박 도령은 과감하게 중의 목을 내리쳤다. 중이 신음소리를 내자 한 번 더 내리쳤다. 다른 청년들도 맡은 천막을 습격하여 왜군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그날부터 박 도령을 비롯한 결사대는 왜군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밤에 왜군의 숙소를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왜군들을 괴롭혔다. 좋은 피난처로 알고 각지에서 미곡리에 왔으나 일본 중의 염탐으로 많은 피난민이 주검이 되었고,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는 붉은 핏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참고자료
웹페이지
"충청남도 전설 - 연기군에 전해지는 전설 좀 알려주세요", 다음 팁
지방문화원
세종문화원 GO
집필자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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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미션님 감사합니다
한국의 지명설화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