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갇히다
정명숙
여덟 살 동갑내기 친구 둘을 꾀어
성당을 찾아간 건
우연히 들은 종소리가 좋아서였어
3층에 있는 종탑에 올라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종을 치지 않는 거야
종을 치는 아저씨도 보이지 않고
딱 한 번 쳐보고 싶었지만 참고 기다렸지
성당이니까 장난치면 안 되잖아
그런데 왜 그랬는지 몰라
누군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침을 뱉기 시작했어
그게 왜 그리 재밌었는지
누구 침이 빨리 떨어지나 내기를 했지
그때 날벼락이 떨어졌어
- 누가 하느님의 성전에 침을 뱉어 누구야,
우리는 고개를 저었지
- 성당에서 거짓말을 해, 천벌을 받을 것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어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는데
뎅,뎅,뎅......종소리가 따라오는 거야
그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
되돌아가서 하느님께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빌었어야 했는데
거짓말한 죄 가슴에 묻고 반백 년 넘게 살다가
노트르담의 꼽추 영화를 보는데
그때 그 종소리가 들리는 거야
흐르는 시간도 지우지 못한
그 무서운 얼굴이 종을 치고 있었어
낡은 수레
정명숙
폐짓값 내려간 만큼
과적된 수레가 언덕을 오른다
헐떡이며 끌고 온 길
온통 땀범벅이다
내리막길
가속 붙은 앞바퀴를 제어하느라
남은 힘 쏟아붓는 깊은 주름에
줄비 내린다
등 굽은 노인
해종일 끌고 다녔던 길을
고물상에 부려놓고
집으로 가는 길
그림자를 삼킨 어둠이
덜거덩거리며 낡은 수레를 끌고 간다.
시집 『그 많은 인연의 어미는 누구인가 』 2024 글나무
정명숙 시인
-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 2006년 <문학마을> 신인상 수상
- 시집 『섬이 바다에 머무는 것은 』, 『그 많은 인연의 어미는 누구인가』가 있음
- 2018년, 2024년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 문학창작 지원금을 받음
- 현재 강원문인협회 이사. 설악문우회 <갈뫼>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