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원(洪宇遠)-야좌독서(夜坐讀書)(밤에 앉아 글을 읽다)(깊은 밤 등불 아래 책을 읽자니)
寒齋夜寂靜(한재야적정) 차가운 서재에 밤이 고요한데
窓外雪尺餘(창외설척여) 창밖에 소복하게 눈이 쌓였네
一燈當案明(일등당안명) 등잔 하나 책상을 환히 비추니
案上古人書(안상고인서) 책상에는 옛사람의 책이 있구나
古人今不在(고인금부재) 옛사람은 이제 가고 없는데
古書能起余(고서능기여) 옛 책이 나를 일깨운다오
一讀眼忽開(일독안홀개) 처음 읽자 홀연 눈이 열리어
恍若閱璠璵(황약열번여) 황홀하게 보배를 보는 듯하고
再讀心有契(재독심유계) 거듭 읽자 마음에 딱 맞으니
旨哉咀珍美(지재저진미) 아름다운 그 말씀 음미하노라
終然讀不已(종연독불이) 읽고 또 읽으며 그만두지 않으니
義理浩無涘(의리호무사) 담긴 의리 끝없이 광대하구나
如何輪扁子(여하윤편자) 그런데 어찌하여 윤편자는
乃將糟粕比(내장조박비) 책을 찌꺼기에 비유하였는지
猖狂侮聖言(창광모성언) 방자하게 성인 말씀 모독하였으니
誣世莫甚此(무세막심비) 혹세무민이 이보다 심한 것 없네
喟余苦好古(위여고호아) 아, 나는 옛것을 몹시도 좋아하여
尙志千載下(상지천재하) 먼 후대에 뜻을 높이 가지노라
魯鈍乖世用(노둔괴세용) 노둔한 자질 세상에 쓰이지 못해
屛伏在山野(병복재산야) 초야에 묻혀 살아가고 있지만
一室千萬卷(일실천만권) 방 안 가득 천만 권 책 있으니
餘年天所假(여년천소가) 하늘이 빌려 주시는 여생 동안
前言與往行(전언여왕행) 전대의 말씀과 옛 분의 선행을
服膺期不舍(복응기불사)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으려 하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남파집南坡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변구일님은 “어느 깊은 겨울밤, 고요하게 눈이 내린다. 밤이 깊어 고요한 건지, 눈이 내려 고요한 건지 알 수 없다. 창밖을 바라보니 한 자 넘는 눈이 쌓였다. 이런 날은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겨울밤의 정취에 취하는 것이 참 좋다. 책상을 마주하고 등잔에 불을 켜니 책을 읽을 마음이 절로 난다. 정겨운 등불 아래 서책을 펼치니 이제는 가고 없는 옛사람이 말을 걸어 온다. 처음 읽을 때는 보석처럼 찬란하게 다가와 눈이 부시게 하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와 거듭 읽어가는 사이 점점 그 말에 젖어들어 술과 고기보다 좋은 맛과 향이 마음 깊이 전해온다.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읽고 또 읽으면서 전에는 소홀히 지나치고 미처 보지 못했던 뜻을 깨닫고는 그 기쁨에 늙어가는 것도 잊어버린다. 옛날 제환공이 읽던 책을 이미 죽고 없는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폄하했던 윤편자(輪扁字)의 말은 좁은 식견으로 성인을 모독한 것이다. 나는 옛것을 좋아하는 방안 가득 옛 책을 쌓아 놓고 하늘이 허락한 남은 생애 동안 책 향기에 취해 살다 마치려 한다.
이 시를 읽으면 독서가 바로 삶 자체였던 유자(儒者)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전통 시대 유자는 바로 독서인(讀書人)이었다. 홍우원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살았던 이식(李植)은 ‘자제들에게 주는 글示兒孫等’에서 다음과 같이 독서할 것을 제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당대의 독서 수준을 엿볼 수가 있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은 대문(大文 주석을 뺀 원문)을 백 번 읽는다. 『논어(論語)』는 장구(章句 주희의 주석)와 함께 백 번까지 숙독(熟讀)한다. 『맹자(孟子)』는 대문(大文)을 백 번 읽는다.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은 횟수를 세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돌아가며 계속 암송한다. 『통감강목(通鑑綱目)』과 『송문감(宋文鑑)』은 선생에게 한 번 배운 뒤 숙독하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한두 권 정도 베껴 놓고 수십 번 읽는다.
이식은 학문의 길에 이제 막 들어서는 어린 선비들이 밟아야 할 이상적인 공부의 과정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기본 소양을 쌓기 위해 당대에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소학을 읽으며 가슴에 새겨 실천하고, 『주역(周易)』의 대문을 주희의 『역학계몽(易學啓蒙)』과 함께 읽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을 두어 번 읽는다.
이외에도 『예기(禮記)』, 『주자가례(朱子家禮)』등을 연구하고 『근사록(近思錄)』,『성리대전(性理大全)』,『성리군서(性理群書)』,『심경(心經)』,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전서(朱子全書)』등의 성리서를 깊이 강론하여 체득하고 실천한다.
한편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ㆍ소식(蘇軾)의 글을 비롯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문장, 문선(文選),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사서(史書), 순자(荀子)ㆍ한비자(韓非子)ㆍ노자(老子)ㆍ장자(莊子)ㆍ열자(列子) 등 제자백가의 글, 초사(楚辭), 이백(李白)ㆍ두보(杜甫)ㆍ한유(韓愈)ㆍ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 등의 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 역대의 사서(史書), 우리나라 사서(史書) 및 문집(文集),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전고(國朝典故) 등을 섭렵하여 안목을 넓혔다. 홍우원이 방안 가득 쌓아 놓은 도서 역시 이러한 동양의 고전(古典)들을 망라한 것이었으리라. 수많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홍우원은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였을까.
참된 삶을 살기 위해 도서에 둘러싸여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던 홍우원의 바람에 비추어 보면 나 자신이 부족하게만 느껴져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과시하는 것을 경계하고 책 한 권이라도 깊이 체득하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홍우원[洪宇遠, 1605년 7월 29일 ∼ 1687년 7월 27일,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징(君徵), 호는 남파(南坡). 시호는 문간(文簡).]-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학자이며 남인 중진이었다. 소현세자의 비 민회빈 강씨의 사면 복권을 주장했고, 제1차 예송 논쟁과 제2차 예송 논쟁 당시 윤선도, 허목, 윤휴의 참최복과 기년복 설 주장에 동조하였다. 만전당 홍가신의 손자이고, 홍경신은 종조부이며, 홍시주는 9촌 조카가 된다.
남인 중진으로 당색을 초월하여 서인 김육의 대동법에 적극 지지를 보냈으며, 소현세자의 아들 석철의 석방을 탄원하였고, 민회빈 강씨의 억울함을 상소하다 장살당한 김홍욱의 사면, 복권 여론을 주도하다가 파면당하기도 했다. 이후 당색을 넘어 송시열 등의 소현세자 일가 복권 운동에 동참하였다. 1660년 제1차 예송 논쟁 때에는 송시열, 송준길의 기년복에 반대하였으며, 1663년 윤선도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자, 여러 번 윤선도를 옹호하다가 파직, 금고당하기도 했다.
1669년 강원도 고성군수로 나가 치적을 쌓았고 1672년 그가 사직하자 강원도관찰사 안진이 다시 상소를 올려 특별히 고성군수에 재임명되었다. 이후 제2차 예송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승지, 부제학, 이조참의, 대사헌, 공조참판 등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1676년(숙종 2) 대사성, 예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허견의 옥사에 같은 남인 당원이라는 이유로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신원(伸寃)되고 1690년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璠(번) : 아름다운 옥 번 1.아름다운 옥(玉), 2.번여(璠與) 옥(玉), 3.노나라(魯--) 보옥(寶玉)의 이름
*璵(여) : 옥 여 1. 옥(玉), 2.옥(玉)의 이름, 玙(간체자), 𤫌(동자), 㼂(동자)
*涘(사) : 물가 사 1.물가(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2.강가(강의 가장자리에 잇닿아 있는 땅)
*糟粕(조박) : 1.재강. 술을 걸러 내고 남은 찌끼. 2.학문(學問)ㆍ서화(書畫)ㆍ음악(音樂) 등(等)에서 옛사람이 다 밝혀내어 전혀 새로움이 없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
*猖狂(창광) : 미친 것같이 사납게 날뜀
*喟(위) : 한숨 쉴 위, 한숨 쉴 귀, 불쌍히 여길 괴 1.(한숨 쉴 위), 2.한숨 쉬다 3.한숨, 탄식(歎息ㆍ嘆息), 𠣠(동자), 㕟(동자), 𠷝(동자), 嘳(동자), 𠿥(동자), 𡃪(동자), 𢼾(동자), 欳(동자)
*乖(괴) : 어그러질 괴 1.어그러지다, 어긋나다 2.거스르다 3.끊어지다, 단절되다(斷切ㆍ斷截--), 𠦬(본자), 𠁰(고자), 𦭅(동자)
*屛(병) : 병풍 병/물리칠 병 1.병풍(屛風) 2.울타리, 담(집이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돌,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린 것) 3.변방(邊方: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 시골, 屏(속자), 幈(동자), 庰(동자)
*膺(응) : 가슴 응 1.가슴, 흉부(胸部) 2.마음, 심중(心中) 3.(가슴에 걸치는)갑옷, 𦢖(본자), 𦢻(고자), 𩪠(동자)
*舍(사) : 집 사/버릴 사, 벌여놓을 석 1.(집 사/버릴 사) 2.집, 가옥(家屋) 3.여관, 舎(일본자), 捨(본자), 舎(약자), 𦧶(동자)
첫댓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
네, 어려운 글도 여러번 보면 이해가 되는 거 같아요.
회장님의 댓글에 감사드리고,
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