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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대한민국의 첫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선제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점골을 내준 점은 무척 아쉬웠으나, 사실 러시아와의 첫 경기의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결과이다. 항상 언론에서는 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곤 하는데, 언론의 시나리오대로 보자면 첫 경기부터 제대로 해낸 셈이다. 첫 경기의 부담감을 떨쳐내고 비교적 괜찮은 경기를 치렀지만, 모든 점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 본격적으로 리뷰를 시작해보자!
1.수준급 전술 싸움이 벌어진 전반전
전반전은 양 팀의 수준급 수비 전술이 맞붙었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러시아의 수비는 공의 중앙 투입을 최대한 막은 후 측면과 후방으로 우리를 몰아붙였다. 수비 라인을 비교적 높이 올린 채 미드필더와 공격진 사이의 거리를 좁혔고 이에 우리가 원하는 축구를 하기 쉽지 않았다. 사실 파훼법은 우리 스스로가 보여주기도 했다. 손흥민의 역습 장면들은 러시아의 견고한 수비를 거의 뚫어냈었다. 대한민국이 러시아의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한 번의 터치로 공간에 패스를 연결하고 순간적인 스피드를 이용하는 빠른 공격이 필요했다. 지난 경기에서 많은 실점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도전적인 플레이를 반복하기엔 두려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안정적인 경기로 첫 경기에 임한 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빠른 공격이 많이 나오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분명한 것은 러시아의 수비가 훌륭한 경기를 했다는 것이다. 다른 팀들이 왔어도 쉽사리 골문을 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를 상대로 공을 잘 지켜나가면서 이번 월드컵 첫 경기를 운영한 것은 분명히 칭찬할 일이다.
2. 이근호의 투입은 환상적이었다.
박주영의 경기력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부지런히 움직였고 몇몇 헤딩을 따내기는 했지만, 팀의 공격에 활로를 열어주지 못했다. 55분 만에 이근호를 투입할 때 약간의 의문을 갖기도 했다. 김신욱이라는 전문 중앙 공격수가 있음에도 이근호를 투입할 필요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 됐다. 단순히 득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근호는 양쪽 측면으로 폭넓은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러시아를 흔들었다. 더운 날씨에 러시아도 체력적으로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근호 특유의 끈기있고 부지런한 움직임은 큰 부담이 되었을 수 밖에 없다.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찬스를 만들어 냈으며, 과감한 슈팅 시도로 약간은 행운이 따른 골까지 기록했다. 골을 기록한 것이 없었다 해도 이근호가 투입 후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훌륭했다. 후반 말미에 다른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이근호의 지속적인 역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못한 것이 아쉬웠다.
3. 손흥민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손흥민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골대 앞까지 드리블로 돌진해가는 모습은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공격수가 나타났음을 알렸다. 러시아 선수들이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은 지켜보는 우리나라 팬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했을 것이다. 주로 이렇게 빠르고 파괴적인 공격수에 당하곤 했는데, 손흥민의 모습은 오히려 러시아 수비들을 압도했다. 마무리가 평소와 같았다면 손흥민은 두 골을 기록하여 영웅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평소에 정확한 슛을 자랑하는 선수였기에 더욱 아쉬웠지만, 그래도 데뷔전의 부담감을 생각한다면 나쁜 경기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적인 부진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 잉글랜드의 에이스라고 손꼽히는 웨인 루니는 이번 월드컵 첫 경기 이탈리아 전에서도 평소와 달리 결정적 찬스를 놓치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메시 역시 지난 대회에서 대회를 무득점으로 마치고 말았다. 팀의 에이스들이 받게 되는 중압감을 생각해보면 골 침묵이 장기화 될 경우 심리적인 문제가 또한 발생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바로 다음 경기인 알제리 전에서 득점포를 터뜨려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벨기에와 치러야 할 건곤일척의 마지막 승부에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도 있다.
4, 체력이 핵심이다.
이번 월드컵은 날씨가 덥고 습해서 체력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대회에선 체력이 팀의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에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뒤지면서 경기의 우세함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실점을 허용했고 후반 말미엔 이러한 체력 상의 열세 때문에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공격을 끊어낸 후에도 적극적으로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며 역습에 임하지 못했고, 그것은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급급한 상황까지 이어졌다. 후반전에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한 손흥민과 가벼운 부상을 입은 홍정호 역시 체력적인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체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려주길 바랄 수는 없지만 잘 쉬고 컨디션 조절에 만전을 기해서 다음 경기에는 더욱 훌륭한 컨디션을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
5. 백업 멤버가 중요하다.
홍명보 감독이 팀을 꾸릴 때 가장 많이 욕먹었던(어감이 거칠지만, 선수 선발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순 비난이라 하기에도 너무 원색적이고 근거가 없는 것 같다.) 것은 바로 인맥 축구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잘 아는 선수들을 위주로 뽑기에 그러한 비난을 받았던 것인데, 이번 대회에서도 홍명보 감독이 익숙한 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서고 있다.(오늘의 경기 결과로 홍명보의 인맥 축구에 대한 비난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전까지 이어졌던 평가전에서도 주로 주전들이 경기에 나섰으며, 대체 자원들은 제한적인 기회를 얻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마다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는 제한적이었고 오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교체 선수들이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황석호의 플레이는 특히 실점 상황에서 아쉬움이 남았고, 김보경은 경기 후반에 투입됐음에도 새로 투입된 선수로서의 플레이를 공·수 양면에서 보여주지 못했다. 대체 자원이 투입되었을 때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불안 요소로 다가올 수 있따.
우선 오늘 받은 손흥민, 구자철, 기성용이 받은 경고 3장은 핵심 선수들이 받은 것이기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선수들도 조심하긴 하겠지만 경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고 경고를 한 장 더 받을 경우 이 선수들은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 나설 수 없다. 혹시라도 경고를 한 장 더 받아 벨기에 전 출전이 불발된다면, 결장 선수들이 팀의 핵심인 만큼 이들이 빠진 자리를 메꿀 선수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오늘 홍정호의 부상처럼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불가할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고, 또 더운 날씨와 월드컵이 주는 중압감으로 인해 떨어지는 체력 등을 고려해도 교체선수들이 활약해야할 여지가 많다. 선수들의 실력이 단기간에 진일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경기에 즉시 투입되더라도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심리적인 준비 상태, 기존의 주전 선수와의 융화 등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홍명보 감독이 강조했던 'One Team'은 교체 선수들까지 모두 포함한 개념이 되야할 필요가 있다.
6. 박지성이 그리웠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은퇴를 한 박지성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앞길을 응원하겠지만, 오늘 그가 있었다면 우리는 아예 다른 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갖는 가치를 봤을 때, 오늘 경기에서는 그의 공간을 이해하는 능력과 공의 스피드를 살린 방향전환이 가장 그리웠다. 오늘과 같이 블록을 형성하여 수비하는 팀을 상대로는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한 박자 빠른 움직임이 중요하다. 오늘 중앙 미드필드에서는 안정적으로 발 앞에 멈춰놓은 후 공을 연결하는 플레이들이 많았다. 안정적인 플레이었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만하지만, 상대방에게 큰 위협을 주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자신에게 오는 패스의 속도를 죽이지 않고 그 속도 그대로 빙글 돌아 상대편으로 드리블해가는 박지성이 있었다면 오늘 더욱 파괴력 넘치는 공격을 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특유의 공간을 찾는 움직임 역시 큰 위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 이전과 드록바 이후로 나뉜다. 그의 투입 직후 상대는 얼어붙었고 동료들은 마치 다른 팀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대한민국 축구에서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갖는 독보적인 위상과 카리스마는 드록바와 마찬가지로 오늘 한국 대표팀에 깊은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득점 이후 들뜬 분위기를 제대로 가라앉히지 못하고 위기 상황을 반복해서 맞다가 결국 어영부영 한 골을 내주는 상황에서 경험 많은 박지성이란 리더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현 주장 구자철을 비롯해 주장 완장을 찼던 박주영, 곽태휘, 기성용, 이청용 모두 팀 내에서 핵심적인 선수이고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선수일 수도 있지만 박지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보여줬던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이미 떠난 그를 더 이상 아쉬워할 수만은 없다. 다만, 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대한민국 대표팀엔 실력, 성품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의 행동까지 두루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앞으로 팀을 이끌어줄 카리스마적 존재가 등장하길 바랄 뿐이다.
7.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한다.
쏟아지는 비난에는 결과로 말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결과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경기력 그리고 오늘처럼 정신적으로 무장된 모습과 경기에 임하는 열정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패배했더라도 큰 비난에 직면하지는 않았겠지만 오늘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더욱 호의적인 여론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승리하면 모든 비난은 수그러든다는 것이다. 어디가나 같은 일을 해도 성공하는 이들에겐 칭찬이 실패하는 이들에겐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선수들과 감독은 여론보단 경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튀니지와의 출정식 및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졸전을 펼친 후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비난은 팀의 분위기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언정 실력 자체를 떨어뜨릴 순 없다. 지난 두 번의 패배로 그 어느 때보다 여론이 좋지 않았기에 팬들도 서슴없이 패배를 예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여론과 관계 없이 월드컵에서 충분히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각 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어디로 가겠는가. 홍명보 감독이 팀을 잘 조직하고 정비한다면 오늘처럼 괜찮은 경기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믿었다. 사실 현재 대표팀은 지난해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2:1로 패하긴 했지만 호각으로 싸웠던 그 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여론에서 떠들 듯 3패로 탈락할 만한 약팀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당시보다 특별히 강해진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역시 반길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전을 치르면서 경기력이 나아지는 경우도 있으니 그에 기대를 걸고 알제리 전에서의 승리를 기대할 뿐이다.
누구보다 큰 비난에 휩싸였던 정성룡과 윤석영은 오늘 경기에 동반 출전했다. 오늘 경기 후에 두 선수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지난 경기들 이후로 각종 포털 사이트, 축구 관련 기사, 축구 커뮤니티, 심지어 축구 관련 웹툰까지 이 두 선수를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훌륭한 경기력으로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해냈다. 비난을 듣고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비난들은 선수들이 신경써야할 필요가 없는 수준의 것들이다. 훌륭한 결과가 나오면 번복되고 뒤바뀔 이야기들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축구팬 입장에서도 선수들을 조금 더 믿고 지켜봐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 단추는 나쁘지 않게 끼웠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알제리 전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적었던 만큼 받는 압박 역시 작을 것이다. 상황을 한 번에 반전시킬 수 없다면 상황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봐야 한다.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아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벨기에 전에서 최고의 승부를 벌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난 여론을 이기고 첫 경기를 잘 치러낸 대한민국 팀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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