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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영화의 다양한 인간 군상
십대 학원물의 주요 특징으로 한 학급 안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사회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은유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없는 준, 최고 성적에 잘생긴 얼굴과 카리스마로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유진, 비밀 스터디 그룹의 비밀을 풀려고 애쓰는 컴퓨터 천재 수진, 돈으로 성적이든 친구든 뭐든지 살 수 있는 2인자 명호 등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가능한 온갖 막장 캐릭터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예쁘고 파괴적인 여학생, 자기만 위험에서 벗어나면 된다는 이기적인 남학생, 2인자의 하인 노릇을 하는 비굴한 학생, 자살하는 학생, 미쳐버리는 학생, 철면피 악당, 심드렁한 선생, 진학률만 높이면 뭐든지 덮을 수 있는 교장, 아무것도 풀지 못해 무기력한 형사, 성적만 좋으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 학부모. 막장스러운 현실 때문에 이런 비상식적인 인물 군상들이 펼쳐져도 우리는 이것을 다큐로 받는다. 그리고 살벌한 교실 안의 풍경은 어른들 사회의 한 단면으로 놓아도 무방하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극적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어린 악당들이 그간 무슨 일을 벌였는지 하나씩 펼쳐놓는다. 그리고 마지막 준의 비장한 결정은 폭발적 위력을 발휘한다. 비밀 스터디 팀에 들어가기 위해 그 아이들이 주문한 악행들에 동참하다 인질범이 되고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린 준의 행동 때문에 이 영화의 원래 등급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다. 그러다 재심의에서 15세 관람가로 낮춰졌는데, 누군가에게는 모방범죄에 대한 염려를 살지도 모를 일이다.
신수원 감독은 이에 대해 어느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명쾌하게 설명했다. “도처에 모방할 거리들은 얼마든지 있다. 꼭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모방하는 자는 온갖 미디어, 실제 사건들 속에서 모방거리를 찾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 모방 충동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경험한 현실에 토대를 두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바람과 다르게 준이라면 저렇게 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참혹한 결말이지만 악을 대하는 준의 행동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손쓸 새 없이 막나가는 학교를 청소하려는 주인공에게서 느끼는 대리만족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더 깊이 다가온다. 영화는 도달할 수 없는 욕망 구현 장치로서의 환영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비정한 아이들의 세계, 네오카스트 시대의 초상
용인의 소시오패스 고등학생 살인사건이 터졌다. 영훈국제중 입학비리, 매 신학기 시작이면 떨어져 죽는 아이들, 전혀 해결될 것 같지 않는 왕따 문제. 학생이 교사를 때렸다는 사건, 학부모가 교사를 무릎 꿇리는 사건, 교실에서 자위한 교사……. 입에 담기도 싫은 막장 이야기가 지금 학교를 둘러싼 풍경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온건해보이기까지 한다.
중학교 교사 출신 신수원 감독은 2010년 첫 장편 <레인보우>로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했고, 단편 <순환선>(2012)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카날플뤼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장편인 <명왕성>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초청되어 ‘특별언급’되었다.
본인이 발 딛고 경험한 현실에서 탄생한 이 영화는 여느 주류 십대영화들과는 다르다. 호러물과 코미디, 성장드라마 등 하위 장르들로 이루어진 십대 장르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장르의 규칙보다는 감독의 개성적 스타일과 사회비판적 문제의식으로 점철된 성찰적 시선을 강조한다. <시>에서 말없는 손자 역할을 맡았던 이다윗이 비밀을 담은 섬뜩한 눈빛으로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장래 소중한 연기파 배우로 성장할 것이다.
십대 영화는 1970년대 ‘얄개 시리즈’라는 명랑영화에서 장르적 틀을 다졌고,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통해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 있는 상업 장르로 새롭게 주목받았다. 그러던 것이 1998년 <여고괴담>을 통해 호러물로 꽃피우고, <몽정기>, <써니> 등 몇 편의 코미디 영화 흥행으로 십대 관객이 주요 관객층으로 부상했음을 입증해왔다. <파수꾼>(2010)과 <돼지의 왕>(2011)은 신랄한 사회성 짙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십대 영화이며, TV 드라마 <여왕의 교실>까지 최근작들은 아이들이 순수하고 동심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바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각에 의문을 표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며 영혼의 짝이다. 아이들의 세계도 비정하다.
우리는 악마를 보고 있고, 이 악마들을 만들어낸 비인간적인 어른들과 비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서 누구든 자유롭지 못하다. 공고화된 네오카스트 시대에 특권층의 안정을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에 속고 미디어에 속아 멍청하게 있어주어야 한다. 세상의 비리나 불공평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이대로 가만히…….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태양계에서 퇴출되어 루저가 되어버린 명왕성이 자신만의 역사를 쓸 날이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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