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도 있고 남도 있고 다른 많은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모두 하나의 존재로 보면 그 사람에 관한 형식이 생긴다. 이런 경우에 누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존재가 잘못한 것으로 확정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잘못한 것을 기억하여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이렇게 해서 고정관념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받아서 자신의 실재와 상관없이 고통을 겪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산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반드시 잘못된 행동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 잘못된 일을 했지만 다른 순간에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서 각인된 꼬리표가 있으면 훌륭한 행동을 한 것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 훌륭한 행동도 나쁜 의도를 가진 일로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사람을 존재로 보아서 생기는 온갖 문제다.
하지만 사람을 존재로 보지 않고 단지 하나의 행위로 보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어느 경우에 누가 나쁜 일을 했으면 그 순간의 행위가 나빴을 뿐이지 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른 경우에 좋은 행위를 했을 때도 선입관이 없기 때문에 그냥 좋은 행위로 인정한다. 매사를 한순간의 행위로 분리해서 보면 아무런 걸림이 없다.
사람을 나나 너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의 존재로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잠재되어 있어서 선입관으로 보기 마련이다. 그러면 편향된 시각으로 보아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바르게 판단하지 못해서 생기는 피해는 나에게도 있지만 남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판단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는 일이다.
어리석으면 모두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은 일을 더 열심히 하며 산다. 이처럼 내가 남을 보는 일에서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존재로 보면 과거에 내가 잘못한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심각한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 과거에 잘못한 일도 있지만 잘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유독 잘못한 것만 기억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한순간에 잘못한 일을 가지고 평생 괴로움으로 지내기도 한다. 이런 것이 나의 일이라고 하는 존재로 인해서 생기는 괴로움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 아니고 그 순간의 행위라고 보면 오랜 괴로움으로 자신을 학대할 이유가 없다. 존재는 사람을 개념으로 정의해서 특화시킨다. 이처럼 관념으로 포장해버리면 한 인간이 가진 다양한 내면을 볼 수 없다. 존재로 획일화된 개념은 인간을 박제로 만들어버린다.
인간을 존재로 보지 않고 순간순간의 행위로 보면 인간을 개념으로 특화하지 않는다. 순간순간의 행위로 보기 시작하면 순간순간의 마음도 보이기 시작하여 한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존재가 해체되면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진실은 인간이 나라고 하는 자아가 없고 순간순간의 몸과 마음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면 나에 대한 집착도 사라지고 나에 대한 분노도 사라진다. 이때 비로소 나와 남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자유를 얻는다. 인간을 존재로 보는 사람은 아직 자신이 만든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끝없는 윤회를 하며 계속 괴롭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을 존재로 보지 않고 단지 하나의 행위로 보면 나를 지배하는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괴로움뿐인 윤회가 끝나며 청정한 즐거움을 느끼며 산다. 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세월부터 나를 하나의 존재로 보아 스스로를 속박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단지 한 순간의 행위로 보면 스스로를 옥죄는 속박에서 벗어나며 산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명이며 최고의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