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의 미국(요약)
남북전쟁이 끝나고 19세기 말까지 미국사회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이 시대의 미국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서, 미국인은 대통령의 이름보다 기업가의 이름을 더 잘 알았다.
미국을 연 초기의 역사에서 이주민들은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들에게 사람은 ‘부를 축적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미국인의 의식에는 알게 모르게 이런 의식이 오래 동안 남아 있었는 듯하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헌법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정치도 자기의 이익을 키우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교양도 없었고, 도덕의 바탕이 되어준 종교도 나와는 무관한 다른 사람의 일이 되어버렸다.
요약하면, 무서우리만치 이기적이었고, 능률만을 강조하는 위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개혁파가 기업가를 압도했다. 미국인의 사고에는 ‘현실 따로, 이상 따로’의 사고가 있었나 보다. 기업가도 만년에는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대표적 인물이 카네기와 록펠러이다.
1890년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부정부패가 널리 퍼져있었다. 그러나 규탄받을 정도의 부정부패라면 반드시 처벌받았다. 그러니까 구제불능 정도로 속속들이 썩은 것은 아니었다. 이성을 가진 국민들이 나타나면서 정부가 잘못된 길로 나가면 바로잡고, 정부도 흔들린다고 하여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여 도시가 비대해진 것도 이 시기의 문제점이었다. 1800년의 뉴욕 인구가 1174779명이었다. 1900년에는 3437202명으로 늘어났다. 도시의 빈곤지역이 생겨나고, 이 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하였다. 그래서 뉴욕은 400명의 부자가 400만 명과 대립하면서 살아간다고 하였다. 미국은 도시문화가 중심이 되어 있다.
비판세력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은 헌법이 우수하다고 말한다. 그 헌법을 잘 지켜낸 것이 바로 미국 역사의 자랑이다. 영국에서 이주민이 가지고 온 ‘자유’의 전통도 잘 보존했다. 앵글로-색슨의 전통이 미국이 중-서부를 개척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유 토론, 배심원 재판 제도, 대표권이 없으면 세금이 없다는 등등의 여러 전통이 철저히 보존되고 있다.
남북전쟁 이후에 새로운 세계가 미국에 나타났다. 나라 재건과 전후 30여년 간 휘몰아친 사업 열품은, 산업시설을 발전시키고, 사업의 기회가 많아짐으로 계급간의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미국은 20세기를 맞이하였다. 20세기를 흔히 미국의 세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