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정부 친일역사 청산 이제 그만 두나? | |||
이건무 국립중앙박물 관장, '친일사학자' 이병도 손자 | |||
역사 표기 논란으로 곤혹을 치른 국립중앙박물관이 때아닌 친일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권을 맡고 있는 이건무 관장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거론되고 있다. 이 관장의 조부인 사학자 두계 이병도가 지난 8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3천95명의 친일인사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일파의 대명사인 이완용과 이병도가 같은 집안의 친인척 관계라는 사실 때문에 이같은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친일 역사 청산'이라는 취지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친일파의 후손'이 관장으로 재직중인 셈이다. 이에 따른 논란은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이 '무늬만 청산'이라는 비난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무 관장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사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하나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취지에도 불구, 친일파 논란을 가져올 이 관장을 국립중앙박물관장직에 역임한 노무현 대통령의 자기모순적 과거사 청산관에 있다. 참여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과거사를 청산하자며 시행된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규모 이전에서, 수장인 관장직에 이건무 현 관장의 역임이 이어지면서 과거사 청산의 취지가 무색해져 버렸다. 이건무 관장은 지난 2003년 관장직에 임명된 후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논란에 휩싸여 왔던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현 국립중앙박물관의 과거사 왜곡 사례들이 이건무 관장의 선친들이 보여준 친일적 역사관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지적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친일적 뉘앙스의 역사 왜곡 사례는 시민들과 각종 사회단체에서 줄곧 문제로 제기돼 왔다. 사학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이 관장의 개인적 역사관'이 조부인 이병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하는 의혹도 이번 박물관의 왜곡사례에 힘을 싣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친일적 역사 왜곡사례가 이 관장의 가계 문제와 연결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무늬만 청산 '친일 논란' 사실 이건무 관장의 임명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건무 관장은 지난 1969년 서울대 고고사학과를 졸업한 후 한양대와 고려대를 거치며 고고사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후 지난 1973년부터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했으며, 학계에서는 '박물관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문제는 이 관장의 역임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이 명분을 잃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을 실행하면서 표피적인 부분의 청산은 이루어 냈다. 그러나 내부에서의 변화는 미진했다. 임명과정에서부터 친일파 후손 논란에 휩싸였던 이건무 관장을 계속 역임토록 했다. 변화를 위한 개혁을 내세우며, 간판만 바꾸고 안은 그대로 둔 셈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을 역사 왜곡에 앞장섰던 친일파의 후손이 맡고 있는 모양새다. 이 관장의 조부인 이병도의 경우, 친일 식민사관 역사관을 가진 대표적 사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부 역사학계에서는 "이병도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가 상당히 축소됐다"는 말도 들리는 실정. 더욱이 이병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이마니시 류는 황국신민화에 앞장섰던 대표적 일본인 역사학자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병도를 친일파로 규정, 친일파 명단 3천95명 속에 포함시켰다. 게다가 이 관장은 이병도의 손자임과 동시에 이완용과 먼 친척벌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부터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친일파의 대명사인 이완용과 친척관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관장에 대한 친일파 논란이 불에 기름을 붓듯 가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한 박물관에 재직 중인 이 아무개(48)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아무나 입사시키지 않는다. 사람들 가계도에 대한 조사까지 한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공식적인 루트는 아니지만 가족사에 대한 조사까지 이루며 직원채용에 신경을쓴다는 말이었다. 이 아무개의 말 대 로라면, 이건무 관장이 박물관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이 관장의 가족사를 윗선에서는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과거사 왜곡 또 하나 제기되는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일각에서 "이건무 관장의 선친들이 가지고 있던 친일 역사관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실과 다른 역사를 그대로 전시한 경우가 많이 있고, 그 중 친일적 뉘앙스의 왜곡 사례도 하나둘씩 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고조선의 표기 누락을 들 수 있다. 박물관 고고사관 입구에 설치된 대형 고고학 연표에 고조선을 누락한 채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원 삼국시대, 삼국시대'의 순으로 우리 역사의 시대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특히 국학운동시민연합 등은 연표에 나타난 '삼국시대' 부분에서 고구려가 서기 100년부터 676년까지 지속됐다는 내용에 대해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오류"라고 지적하고 박물관 측에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친일적 뉘앙스의 왜곡은 또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불교 문화재로 꼽히는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에 대한 외국어 설명에 일본의 국보인 목조반가사유상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점을 강조해 놓은 것이다. 한 관람객은 "일본 목조반가사유상과 닮았다고만 설명함으로써 한국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오도될 소지가 보인다"며 "한국보다는 일본에 친숙한 외국인들에게는 금동반가사유상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자 사학계 일부와 일부 시민·네티즌들은 이건무 관장의 가족사를 들고 문제삼기 시작했다. 이 관장의 역사관이 반영돼 역사 왜곡 사례들을 그대로 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역사 표기 논란과 관련해) 해명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연구소 측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며 "차후 재발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조부인 이병도를 친일파로 본 것에 대해 이 관장은 "가족들에게 창씨개명도 안 시켰으니 친일은 아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올해,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과거사 청산법도 통과시켰고, 한일협정문서도 공개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이전과 맞물린 이건무 관장의 역임이 그 동안 참여정부가 벌여왔던 과거사 청산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꼬리표. 선대의 잘못에 대한 연좌제를 질 필요는 없지만, "왜 하필 국립중앙박물관에…"라는 질문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병도 [李丙燾 1896∼1989] 189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1934년 진단학회(震檀學會) 이사장에 취임했다. 194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출강한 이병도는 1945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1954년에는 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됐고 이어 서울대학교 대학원장에 취임했다. 1960년 문교부장관에 등용되고 같은 해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으로 선임됐다. 주요저서로는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한국사(중세편)》 등이 있다. 1925년 설치된 『조선 반도사』 편수회의 핵심위원으로 활동하며 불교전문학교 강사 시절, 진단학회의 전신인 청구학회(靑丘學會)라는 어용 학술단체에 가입, 식민사학의 저술·출판·강연 등의 활동을 펴기도 한 이병도는 1922년 12월 일황의 칙령에 따라'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이후 1938년 3월까지 16년간 반도 조선사 34권을 완간한 공로(일본의 제1등 공신)를 인정 받아 일본천왕으로부터 거액의 포상금과 금시계를 받았다. 금년 8월 29일에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3090명 가운데 포함돼, 현재까지 학계에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
첫댓글 친일청산이란 말은 애당초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위한것~
노정권 전체가 친일파 일수도.....
쩝...
죽일넘들 여기 있엇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