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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장수왕 시대의 '갈로맹광'은 한 사람? 두 사람?
광개토태왕 추천 0 조회 284 09.01.08 23:57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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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1.09 00:27

    첫댓글 저는 각기 다른 인물로 봅니다. 우선 위서에서는 갈만로, 태평어람에서는 갈거로, 십육국춘추에는 갈거맹광,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에는 갈로맹광(갈로, 맹광)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위서를 비롯한 몇몇 사서에는 갈로를 지칭한 기록은 있으나, 맹광을 지칭한 기록은 없고, 맹광이 기록 된 사서들도 맹광은 갈로 보다 뒤에 나옵니다. 대개 사서에서는 인물들을 기록할 때 벼슬순 혹은 나이순으로 기록하는데, 이로 보아 맹광은 갈로 보다 중요도가 낮은 인물 즉 벼슬이 낮은 인물이기에 몇몇 기록에는 누락되어있고, 기록된 사서에도 갈로 보다 뒤에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연 흡수라는 중요한 작전을 수행해야 할 정도면 갈로는 군사를 다루

  • 09.01.09 00:29

    는데 노련하다고 볼 수 있으며 군사 수 만을 맡길 정도로 지략이 뛰어났을 가능성이 크고 장수태왕의 최측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북연 흡수작전의 총사령관격인 그가 북위의 군사들과 대치 중일 때도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도 기선을 확실히 제압한 것을 보더라도 저돌적이라기 보다는 침착하고 지략이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필이 이끌던 북위의 군대도 고구려군의 위용을 보고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고구려의 군기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갈로와 맹광의 무위가 어느 정도 북위에 알려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 09.01.09 00:31

    약간 삼천포로 샜는데, 갈로와 맹광이 매우 노련하게 북연흡수라는 대작전을 수행했다는 것과 중원에 알려졌을 가능성을 염두해둔다면 광개토태왕 때 부터 활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작성자 09.01.11 14:47

    그렇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갈만로, 갈거로는 나와도 맹광 비스무리한 이름이 따로 나오지는 않으니 역시 두 명의 서로 다른 장수로 봐야겠군요. 북위에 이름이 알려질만큼 무덕이 출중한 장수라... 어쩐지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헌데 한 가지가 아직도 의문으로 남는군요. 이들의 출신성분 말입니다. 갈 씨나 맹 씨는 이전의 고구려 귀족들에게서 보여지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을 광개토대왕에게 발탁된, 무예나 용병술에 출중한 평민 출신 장수들로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사실 '고구려 귀족은 모두 성을 썼는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될 것 같습니다만...

  • 09.01.11 02:40

    추모왕 첫 부인의 성이 예씨라는 기록 하나로 예씨는 동부여의 귀족일 것이다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에서 보여지듯 성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구분하는 일종의 구분선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에는 다양한 층의 귀족들이 있던 만큼 성들 또한 다양했을 것입니다. 다만 성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고구려인들 스스로가 남긴 기록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기록 부재의 한계를 느낍니다.ㅠ

  • 작성자 09.01.11 14:53

    그렇다면 갈로와 맹광 모두 본래 귀족으로 갈씨와 맹씨 성을 썼는데, 그 조상들이 유명세를 못타서 기록에 남아있지 못하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북부여수사 모두루의 조상은 잘 아시다시피 염모인데, 이대로라면 모두루의 성은 염씨이므로 그냥 모두루가 아니라 '염모두루'라고 적었어야 옳지 않을까요? 우리 역사에서 성씨의 사용이 보편화된 것은 고려시대로 알고 있는데, 고구려의 경우 귀족출신이라고 성이 꼭 있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평민 출신 장수라는 괴추측(!)은 날아가버리는군요^^;

  • 09.01.11 19:36

    흠... 그러고 보니 염모나 모두루 문제가 걸리는군요. 분명 모두루는 중앙귀족급인데...;; 어렵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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