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개(魏元凱)-동시도습(東詩蹈襲)(우리 한시 본받기)(초심을 지킨다면)
流水喧如怒(유수훤여로) 흐르는 물은 노한 듯 시끄럽고
高山嘿似嗔(고산묵사진) 높은 산은 화난 듯 말이 없네
兩君今日意(양군금일의) 저 둘이 오늘 보이는 행태는
嫌我向紅塵(혐아향홍진) 속세로 가는 내가 싫어서이리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성호사설星湖僿說)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권경열님은 “고려(高麗) 때의 문사(文士)인 위원개(魏元凱)의 시이다.
고려 고종 때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한림에 이르렀고, 뒤에 출가하여 법명을 충지(沖止)라고 하였다. 시호는 원감(圓鑑)이다.
그는 승려가 되었는데,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환속하였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다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다시 환속할 때의 심사를 읊은 듯하다. 물이나 산이 무슨 감정을 표현하랴?. 그들은 평시와 다를 것이 없건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비춰지는 것이리라. 조선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도 벼슬길에 나가면서 이와 비슷한 시를 읊은 적이 있다.
산과 물의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靜看山水意(정간산수의)
너무 자주 오간다고 비웃으리라. 應笑往來頻(응소왕래번)
워낙 사상이 비슷하다 보니,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우암이 표절한 것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사가 크게 다를 리도 없었으리라.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산림을 중시하고 벼슬길을 경시해 왔다. 이는 ‘북산이문北山移文’이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북산(北山)에 은거하며 덕행으로 이름을 얻었던 주옹(周顒)이라는 사람이 황제의 부름에 응해 조정으로 나가 벼슬하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북산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자 평소 그와 함께 뜻을 같이하였던 공치규(孔稚圭)가 산의 산(山)의 뜻을 가탁해서 그가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는 글을 지어 보냈다. 그 글이 바로 후대에까지 인구에 회자된 ‘북산이문’이다. 그러나 은거를 중시하는 마음이 전적으로 진심일지는 모르겠다. 당(唐)나라 승려 영철(靈澈)이 지은 시가 정곡을 찌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벼슬 버리고 돌아간다 하는데 相逢盡道休官去(상봉진도휴관거)
산림에선 은거하는 사람 하나도 못 보았네 林下何曾見一人(임불하증견일인)
하지만 은거하는 것만이 자신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벼슬을 한다 해서 꼭 부끄럽게 여길 일은 아니다. 이 시의 저자처럼 부모의 권유 때문에 마지못해 벼슬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맑은 세상에서 뜻을 펴기 위해 벼슬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 시를 노래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경우도 그렇다.
이곳은 세상 고뇌 모두 잊을 수 있는 데지만 是處塵勞皆可息(시처진로개하식)
시대가 맑아 끝내 차마 벼슬을 버리지 못하겠네 時淸終未忍辭官(시청종미인사관)
벼슬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관건은 험한 벼슬길에서 이욕과 영화에 물들어, 작게는 자신과 고을을 망치고 크게는 나라를 망치는 일을 주의하는 것이다.
벼슬한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벼슬을 내놓고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문제될 것이 무엇이겠는가?.”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위원개[魏元凱 1226년(고종 13) ~ 1293년(충렬왕 19), 속명은 위원개, 자호는 복암노인(宓庵老人). 첫 법명은 법환(法桓), 뒤의 법명은 충지(冲止). 전라남도 장흥 출신]-고려후기 삼중대사, 대선사, 수선사 제6세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아버지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소(紹)이며, 어머니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郎)송자옥(宋子沃)의 딸이다. 원나라 세조의 흠모를 받았으며, 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수선사(修禪社) 제6세 국사가 되었다. 9세에 경서(經書)와 자사(子史)를 외웠으며, 17세에 사원시(司院試)를 마쳤다. 19세에는 춘위(春闈)에 나아가 장원을 하고, 그 뒤 영가서기(永嘉書記)에 부임하여, 사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하였으며, 벼슬이 금직옥당(禁直玉堂)에 이르렀지만,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 후, 남쪽의 여러 지방을 순력하면서 수행하다가, 1266년(원종 7)원오국사의 강권으로, 경상남도 김해의 감로사(甘露寺) 주지가 되었다. 1269년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다시 3년 후에는 감로사를 떠나 순천의 수선사로 옮겼다. 이때까지 그는 교(敎)에 더 치중하였다.
수선사에 온 다음 해인, 1274년 원나라 세조는 탐라에 총관부(總管府)를 두고 우리나라의 전지공안(田地公案)과 별고노비천적(別庫奴婢賤籍)을 관장하게 하며 수선사에서 군량미 명목의 전세(田稅)를 거두었다. 그는 세조에게 「상대원황제표(上大元皇帝表)」를 올려 어려운 사원경제를 알리고, 빼앗겼던 전답(田畓)을 되돌려 받았다.
세조가 그를 흠모하여 청하자, 1275년(충렬왕 1) 개경을 향하다가 충청도 웅천(熊川)에 이르러 병을 이유로 상경할 수 없다고 글을 올리고 청주(淸州)로 갔다. 청주의 화정사(華井寺)에 머무르던 중, 조정에서 다시 불러 원경(元京)에 도착하자, 세조는 빈주(賓主)와 스승의 예로 대하였으며, 귀국한 다음 해 충렬왕은 대선사의 승계를 내렸다.
그 후, 청주의 현암사(玄巖寺), 청주 진각사(眞覺寺), 천호산 개태사(開泰寺) 등지에 머물렀다. 1283년 11월에는 원오국사가 선원사에서 수선(修繕)하여 수선사로 옮기던 거란본대장경을 도중에서 맞이하여 나누어지고 왔고, 「단본대장경경찬소(丹本大藏經慶讚疏)」와 시를 지었다.
1284년 상무주암(上無住庵)으로 옮겼고, 1286년 2월에 원오국사가 왕에게 수선사의 사주(社主)로 그를 추천하고 입적하자, 그 해 6월에 수선사의 제6세가 되었다. 1271년 여름 합단적(哈丹賊)의 난을 피하여 고흥군 불대사(佛臺寺)에 잠깐 머문 것을 제외하고 수선사에서 교화 생활에만 몰두하며 수선사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1293년 1월 10일 문인들에게 설법과 게송을 남긴 뒤 법랍 39세로 입적하였다.
불교의 삼장(三藏)과 사림(詞林)에 이해가 깊었고, 문장과 시로 유림의 추앙을 받았다. 그는 수선사 제1세였던 지눌의 순수 선(禪) 시대와는 달리 유학사상과 상교(相交)하는 선풍(禪風)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충지는 유사(儒士)들처럼 천명을 믿고 운명에 안주하는 유·선(儒禪) 조화의 사상 조류를 보였고, 상제상천(上帝上天)의 신앙을 통하여 유교와 도교를 불교 속에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념무사(無念無事)를 으뜸으로 삼았고, 지관(止觀)의 수행문 중 지(止)를 중시하였으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여 지눌의 종풍(宗風)을 계승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1권이 남아 있으며, 『동문선(東文選)』에도 시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원감국사(圓鑑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보명(寶明)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부도는 송광사남암(南庵)의 옛터 북쪽에 있으며, 입적 후 22년 만인 1314년(충숙왕 1)에 문인(門人) 정안(靜眼), 진적(眞寂), 신열(神悅) 등이 원감국사비를 세웠으나 그 뒤 병화(兵火)로 파괴되었고, 약 200년 전에 시안(時安), 찬현(贊玄) 등에 의하여 그 자리에 중건되었다.
*東詩(동시) : 우리나라 시인(詩人)들이 지은 한시(漢詩). 중국(中國) 시인(詩人)들이 지은 한시(漢詩)에 상대(相對)해서 이르는 말.
*蹈襲(도습) : 전(前)부터 해 내려온 정책(政策)이나 방식(方式)이나 수법(手法) 같은 것을 그대로 본받아 따라 함.
*喧(훤) : 지껄일 훤, 1.지껄이다, 2.떠들썩하다, 3.시끄럽다, 吅(동자), 咺(동자), 諠(동자), 𧮥(동자)
*嘿(묵) : 고요할 묵, 1.고요하다, 2.말을 아니하다, 3.입다물다, 默(동자), 黙(동자)
*嗔(진) : 성낼 진, 성한 모양 전, 1.(성낼 진), 2.성내다, 3.책망하다, 원망하다, 瞋(동자), 謓(동자)
*嫌(혐) : 싫어할 혐, 1.싫어하다, 2.미워하다, 3.의심하다
(유의어) : 厭(싫어할 염, 누를 엽, 빠질 암, 젖을 읍), 妬(샘낼 투) 嫉(미워할 질), 忌(꺼릴 기), 憚(꺼릴 탄, 놀랄 달), 猜(시기할 시, 시기할 채)
첫댓글 마음이 불편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이고...
초심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한 듯합니다.
총괄대장님의 노고에 항상 감사를 드리며....
ㅎ, 초심 지키는 것, 마음 편하게 생활한다는 것
참 쉽지도 않고, 평소 자기암시, 자기쇄뇌 등을 통해 수양이 필요한 부분인 듯 합니다.
회장님의 좋은 말씀과 배려에 감사드리고,
행복한 금요일과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