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도에 쓴 저의 다짐과도 같은 글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저의 삶은 희망적이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건강상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작년엔 '길 위에 부는 바람'이란 시집도 내었구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러 다니구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저의 소개는 아래 글로 대신할까 합니다.
그럼, 솟대를 사랑하시는 님들 행복한 날 되세요. ^@^
<다시는 절망하지 않는다>
스무살 때부터 내 건강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염색체 이상이었지만 20년 동안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갑자기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위해 몇 가지 검사를 한 결과
"말판 증후군"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다.
몸의 모든 기능이 약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제 기능을 잃어버린다고 해야할까.
몇 차례의 눈수술을 했지만 결국 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어
버렸다. 그렇다고 오른쪽 눈이 아주 온전한 것도 아니다.
수술이나 안경으로도 내 시력의 한계는 0.5를 넘지 못한다.
가끔은 1.0의 세계가 얼마나 밝아 보이는 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알려고 하는 자체가 내게는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른다.
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어야 했고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독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냈다.
병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외출 자체를 꺼려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싫어했던 것이다.
평범하게 학교 생활, 직장 생활, 결혼 생활을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내 모습이 더 초라하고
더 비참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 재작년 여름에는 급기야 심장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숨이 차서 한 걸음도 옮길 수가 없게 되었다. 수술을 하기 전
주치의 선생님께서 몸이 워낙 약하여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했지만 난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다. 차라리
깨어나지 말기를 하는 바램이 더 컸던 것이다. 그 만큼 내가
걸어 온 길이 힘들었고 난 지쳐 있었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럽지만 적어도 그 때는 그랬었다.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시력이 관계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야윈 몸뚱이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이 사회에서 내가 설 자리는 어느 곳에도 없었던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혈액농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지금도 애를 먹고 있다. 하루라도 항응고제를 먹지 않으면
내 몸속의 혈액은 흐르기를 거부하여 점점 굳어지려고 하고
좀 과다 복용했다 싶으면 혈액이 너무 묽어져
내 몸속의 일부에 출혈이 일어난다.
수치가 올라 간 줄도 모르고 약을 계속 먹다가
어느 날 선명한 붉은 피가 소변에 섞여 나왔을 때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며칠동안 약을 끊고 정상치로 돌아왔다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왼쪽 눈에 출혈이 생겨 버렸다.
제 아무리 강렬한 태양빛도 내 왼쪽눈 앞에서는
제 빛을 잃고 만다. 눈 안에 가득 고여 있는 피는
좀처럼 흡수되지도 않고 멈출 생각을 않았다.
병원에 가는 횟수는 더 잦아졌고 내과에서도 안과에서도
난감해 하는 표정이다.
출혈이 심하여 눈 안이 온통 벌겋다 못해 통증까지
수반되었다. 안 보이는 것 까진 좋은데 통증이 심하니
부어오른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거니와
새벽에도 잠을 설쳐야 하는 아픔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항응고제를 줄이면 눈의 출혈이 멈출까하여
약을 점점 줄였더니 혈액농도 수치가 너무 떨어져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과에서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눈 적출하라고 제거하라고
너무나 쉽게 말하지만 안과에선
가능한 한 살려 두자고 한다.
그러나 아픔이 있다는 건 아직 시신경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참을만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그날 이후에는 아픔조차 느낄 수가 없을 테니까.
설령 그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른쪽 눈 마저 희미하여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지만 희미한 빛이나마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불편함이야 이루 말로 다 못하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길을 나설 수 있고
쉬엄쉬엄 내 못난 글들을 옮겨 적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약해지는 육체 앞에 자꾸만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나는 작년부터 내가 가진 작은 희망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쓴 글들을
정리하곤 하는데 모니터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화면을 크게 확대 시켜놓고 그것도 모자라 돋보기를
설정해 놓고 모니터 앞에 얼굴을 들이민 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니 어둡고 절망스럽기만 했던 내 주변이
온통 환해지는 느낌이다.
'밤새도록 책을 읽고 싶은데 나쁜 시력 때문에 남들처럼 책을
많이 읽지도 못하고......'
이제 그런 불만과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가끔씩 내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그런 친구가 있음에
시집 한 권, 수필집 한 권을 한 달에 걸쳐서라도 다 읽을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기로 했다. 오늘처럼 햇살 좋은 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쟈스민차 향기에 물든 오후를
바라볼 수 있음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다.
행복이라는 것, 희망이라는 것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내 가까이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욕심 하나를 버리면 내 가슴엔 어느새
두배 세배의 행복이 피어남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분명 힘든 일이 닥쳐와 절망의 순간들이 고개를
내밀 테지만 나는 그 절망까지도 사랑할 것이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내 삶의 행복을 끊임없이 만들어 갈 것이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이웃과 내 자신을 사랑하는 날 되십시오. ^@^
조현자님 . 님의글을 읽고서 내 자신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님의 그굿굿한 용기와 절망까지도 사랑하며 살아가신다는 말씀에 다시한번 고개숙이며 지금까지 욕심속에 살아온 이 못난사람에 지금까지의 삶을 주님께 감사하며.!... 조현자님의 마음에 평안을 기도 드릴께요. 안녕히....
제가 잘 아는 아이중에 한쪽눈은 전혀 보이지않고 한쪽눈만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애는 TV를 아주 화며네 눈을 들이대고 봅니다. 그렇게 힘겨운 일을 하는 그 눈은 깊이 함몰되고 충혈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눈이 안보이는 눈인줄 알았습니다. 그애 엄마에게 가는 시력을 살려보려고 받은
여러번의 수술이 아이의 눈을 그리 만들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애의 보이지 않는 한쪽눈은 그렇게 예쁠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늘 환하게 웃습니다. 그냥 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님도 그애처럼 환한 마음의 눈을 가졌구나.... 그런 생각...
첫댓글 조현자님 힘내세요....
조현자님 . 님의글을 읽고서 내 자신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님의 그굿굿한 용기와 절망까지도 사랑하며 살아가신다는 말씀에 다시한번 고개숙이며 지금까지 욕심속에 살아온 이 못난사람에 지금까지의 삶을 주님께 감사하며.!... 조현자님의 마음에 평안을 기도 드릴께요. 안녕히....
제가 잘 아는 아이중에 한쪽눈은 전혀 보이지않고 한쪽눈만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애는 TV를 아주 화며네 눈을 들이대고 봅니다. 그렇게 힘겨운 일을 하는 그 눈은 깊이 함몰되고 충혈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눈이 안보이는 눈인줄 알았습니다. 그애 엄마에게 가는 시력을 살려보려고 받은
여러번의 수술이 아이의 눈을 그리 만들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애의 보이지 않는 한쪽눈은 그렇게 예쁠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늘 환하게 웃습니다. 그냥 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님도 그애처럼 환한 마음의 눈을 가졌구나.... 그런 생각...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생활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현자님 ! 힘 내세요.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