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에서 청량리행 KTX로
일월 중순 화요일이다. 한낮 기온이 한 자릿수이고 아침 최저는 빙점 밑으로 내려가는 연중 가장 추운 때다. 전날은 도서관에서 유홍준의 답사기를 펼쳐 재독으로 읽었다. 초판을 보완한 개정판 2권과 3권에서는 영남의 불교와 유교 문화 유적지를 소개해 내가 둘러본 곳이라 문득 필자와 동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함양 서하 계곡 정자는 유 교수만큼 나도 소상하게 알고 있다.
간혹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나왔는데 안동 이천동 마애불이 눈앞에 그려졌다. 며칠 전 동해선 전철로 좌천역 인근 임랑리 묘관음사를 찾아 법당에 들어 부처님을 뵙고 왔다. 그날 뜻하지 않은 병마가 닥쳐 큰 수술 후 회복 중인 여동생의 안정과 쾌유를 빌었다. 동생 병문안을 가는 셈 치고 돌부처를 찾아 중생이 겪는 병고를 덜어 주십사 간절히 빌어보려 안동으로 길을 나섰다.
안동행은 동대구역으로 가 영천으로 가 환승을 하든지 시외버스로 가는데 다른 경로를 택했다. 창원중앙역에서 삼랑진을 지나면서 다대포로 향해 흐르는 유장한 물길 따라 내려가 구포와 사상을 지나 부전에 닿아 동해선으로 열차로 바꿔 탔다. 부전으로 가 거기서 중앙선 따라 달리는 청량리행 KTX 객실이다. 해운대와 송정을 지난 월내에서 차창 밖 검푸른 바다가 잠시 드러났다.
태화강역을 지나 경주에서 거기서부터 낯선 풍광인 중앙선을 따라 영천을 거쳐 안동역에 닿았다. 북부 경북에서 여러 유적지가 떠오르지만 단품으로 이천동 마애불만 보고 되돌아갈 참이다. 최근 새로운 KTX 철길이 놓이면서 예전 시내의 역이 외곽으로 옮겨졌고 시외버스터미널도 곁으로 왔다. 역사 앞에 관광 안내소로 가 이천동으로 가는 버스 편을 여쭈니 친절히 알려주었다.
시내로 들어 안동 문화방송국 근처 골목은 이육사 생가지 이정표가 나와도 그냥 스쳤다. 옹천으로 가는 311번으로 갈아타 안기를 지나자 제비원이 나왔다. 안기는 어진 화가로 활약해 정조의 사랑을 받은 김홍도가 외직 관리로 나가 찰방을 지낸 곳이기도 했다. 제비원이라는 ‘원’은 조선시대 관리가 공무로 묶을 때 여관이 있는 교통요지로 관용차에 해당한 말도 기르던 곳이었다.
이천동 마애불은 제비원 마애불로도 불린다. 우리 고장 삼정자동에 통일신라 작품으로 여겨지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마애불이 있다. 제비원 마애불은 보물로 지정 보존하는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불이다. 사적지는 근래 정비를 잘 마쳐 ‘연미사’라는 절이 들어서고 그 안쪽에 미륵전이 꾸며졌다. 서책서 사진으로 봤던 거룩한 석불을 경건히 치올려 보며 대면했다.
낮은 구릉에 불거진 거대한 바윗돌은 좁은 틈새를 두고 두 겹으로 마주 섰는데 뒷벽이 더 웅장하고 컸다. 거기에다 부처님 몸체를 새기고 얼굴은 외부에서 조각한 불두를 덧대어 얹힌 마애불이었다. 아래에서 치올려다 본 부처님 얼굴은 눈을 지그시 감은 듯하면서 눈시울에는 붉은 채색 흔적이 입술에도 조금 남아 있었다. 목에는 염주와 같은 조각과 함께 삼도 주름이 뚜렷했다.
마애불상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았다. 거대한 바위가 뿜는 지자기와 마애불상의 자비로움을 경건히 받아들였다. 마애불상에서 연미사 법당으로 들어 부처님을 뵙고 나와 다시 마애불상 앞으로 가 한 번 더 손을 모으고 왔던 길을 되돌아 시내로 들었다. 옛 역전 동부동 오층전탑이나 법흥동 고성 이씨 종택 칠층전탑을 둘러보기는 시간이 촉박 신시장에서 늦은 점심 끼니를 때웠다.
예매해둔 열차표를 고려해 안동에 머물도록 허여된 4시간이다. 다시 안동역으로 와 왔던 길을 어둠을 뚫고 내려오면서 ‘제비원 석불’을 남겼다. “안동부 제비원로 불거진 바위 더미 / 천년 전 석공 손에 정으로 쪼고 쪼아 / 내세에 힘을 더 보탤 마애불을 새겼다 // 넉넉한 법의 자락 불두는 덧대어도 / 근엄한 표정으로 지긋이 내려 뜬 눈 / 비바람 찬 이슬에도 중생 구제 이끈다” 26.01.13
첫댓글
창원에서 안동으로
안동역에서 다시 이천동 마애불까지
더구나 대중교통으로....
대단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