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초산장 이야기 1219회 ) 산장의 가을풍경
2022년 11월 18일, 금요일, 맑음
비가 한 달 보름 이상 내리지 않아
가을 가뭄이 심했는데
지난 주 토요일 밤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 평 작은 방에 누워있는데
천장에서 또드락 또드락 비오는 소리가 들렸다.
햐- 좋구나!
비가 오면 이렇게 좋은 것을!
가끔 적당한 비가 내리고
잡곡밥 한 그릇,
생선 한 토막,
푸성귀 한 줌
이거면 충분하다.
더 무엇이 필요하랴!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살면 되고
건강하고 병 없으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다.
그날 밤 꿈속에서도
계속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계곡으로 내려가 보니
물이 그득하게 불어났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설거지할 물조차 없어서 노심초사하다가
단비 덕분에
넉넉해진 계곡물.
이제 한두 달은 안심이다.
산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모터가 얼어서 터지기 때문에
미리 나사를 빼놓았다.
이제부터 봄이 올 때까지는
불편하더라도
계곡에 가서 양동이로 물을 떠와야만 한다.
나 혼자라면 밥하고 설거지 하는데
양동이로 세 번만 물을 길어와도 충분하다.
많은 물을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밥을 먹고 푸근한 마음으로
산장을 돌아보았다.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산장을 둘러싼 나무들도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었다.
나무들은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열심히 자랐기 때문에
이제부터 서너 달은 푹 쉴 것이다.
단풍이 든 산장을 혼자 거닐며
맑은 공기를 호흡하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멀리 여행을 가야만 행복한 게 아니다.
방풍이 가뭄으로 시들어 있다가
빗방울을 담뿍 머금고 싱싱하게 살아났다.
애써 만든 방풍 군락지가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달리아는 남부 지방이라 뿌리를 파내서 보관하지 않고
이웃집에서 하는 대로
줄기만 잘라낸 다음에 비닐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에
다시 비닐을 덮어두었다.
이러면 충분히 월동이 된단다.
쌍둥이집에 가서 한 수 배웠다.
금정산 등산을 갔는데
진달래가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봄인줄 알고 핀 모양이다.
한세경씨가 새로운 동화책을 펴냈다고 부쳐주었다.
<명탐정, 블랙맨을 잡아라/ 스토리 I 발행>
나한테 동화 배운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니
가르쳐준 보람을 느낀다.
황경숙씨가 소개해서 나한테 배웠는데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성실하게 배우더니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했다.
지금은 퇴직하고 연산동에서
동화 카페 <이야기 정원>을 운영하고 있다.
11월 17일 목요일
대연동에 있는 <들꽃이야기 도서관>에 갔다.
그림책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나와 임유리씨가 제출한 그림책 원고 합평을 하고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었다.
이상교씨가 펴낸 동시집이 참 좋았다.
시들이 철학적이라
한참 음미하며 읽었다.
그림책은 여러 권을 보았는데
그 중 제일 내 마음에 든 책이
<벤지의 선물>이었다.
먹보이면서 괴팍하고 장난꾸러기인 벤지는
친구들에게 늘 사고뭉치인데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 말썽만 부리다가
마지막에는 벤지가 자신의 털을 깎아
친구들에게 스웨터, 장갑, 모자 등을 선물한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주제다.
이 책을 만든 이가 <이치가와 사토미>라서
여태 못 본 작가라
어떤 작가인지 검색해보았더니
놀랄만한 내용이 나왔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고
혼자 독학으로 그려서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을 스무 살 무렵에 떠나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니
공부와 성적, 학력만을 강조하는 일본이 싫었던 모양이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터.
이 작가가 살아온 과정이 마음에 들어서
이 작가의 그림책을 다 구해서 읽어볼 작정이다.
그녀가 작가가 되기까지 겪은 일과
작품을 만드는 독특한 작업 과정을
아래 블러그를 클릭하면 소상하게 적혀 있으니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치카와 사토미 시간 사용법,
<에디터C 최혜진입니다> 브런치 중에서...
https://goo.gl/cQUS3y
(*)
출처: 글나라 동화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凡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