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근처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은 뒤 나카사키로 압송되어, 1597년 2월 5일에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본기도
모든 성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도 죽기까지 신앙을 증언하게 하소서.
제1독서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22-23.27-30
그 무렵 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23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7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28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30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 안에도 암세포가 있고 면역세포도 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왜 손을 안 씻고 음식을 먹느냐고 따집니다. 사실 손을 씻는 법은 율법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조상들로부터 병들지 말라고 지켜온 전통인 거죠.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하느님의 전화 전통은 따르지 않고 인간들의 전통을 강요하냐고 하면서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당신을 헛되이 섬긴다, 결국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 백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런 일은 어디에서나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암세포는 그냥 병이 들었을 때 그때만 생기는 건 줄 알았더니, 항상 생겨난다고 합니다. 대신 그렇게 생기는 것들을 없애주는 면역세포도 있습니다. 면역세포는 세포가 몸 안에서 지켜야 하는 전통을 따르지 않는 세포를 없애는 역할을 합니다. 몸도 면역세포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몸이 전체가 인제 죽게 됩니다. 몸을 사랑한다면 자꾸 생겨나는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전체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교회 전통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들을 없애는 면역세포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대학 들어갔을 때 가톨릭 학생회에 들어갔습니다. 가톨릭 학생회는 데모 서클 중에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들어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가니 또 어쩔 수 없이 화염병을 나르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나라에 저항하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교회의 전통이 세상의 전통이 스며드는 것을 좌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허물어진 것입니다.
처음엔 스파이가 들어오고 그 스파이가 다른 전통의 가르침을 물들입니다. 그것들이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어느 체계건 무너집니다. 가톨릭교회는 안 그럴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인간이 하느님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대부분이 교만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예전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까지 되실 수 있다는 것을 반대했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했습니다. 암세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입니다. 지옥 이야기하면 극단적 이원론자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어둠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다는 요한 사도도 극단적 이원론자가 됩니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말할 때 오히려 거부당하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삼구(세속-육신-마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김대건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당부입니다. 그러나 성직자, 수도자면서 삼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하면 조선시대 사람이냐, 중세 시대 사람이냐고 합니다. 이제는 교리서에 나오거나 전통적인 가르침을 말하는 것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암세포가 될 것인지, 면역세포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올바른 전통적인 가르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반드시 암세포와 대결하는 면역세포의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전통을 지키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주신 가장 중요한 선물이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교회 밖에 구원이 있다고 당연하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세상 전통으로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우선은 교회의 성체로만 구원이 이뤄지고 나머지는 피의 세례, 열망의 세례, 혹은 계약에 관한 신학으로 나아가야지, 처음부터 교회를 부정하는 말들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는 개신교가 아니라 오히려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개신교 신자로 오해받습니다. 주님이라면 아마도 암세포를 무찌르는 면역세포의 역할을 하는 이들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바위 안에 천사가 갇혀 있음을 느끼고 그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보았고, 그가 차가운 돌 속에서 풀려날 때까지 돌을 깎았다.”
미켈란젤로는 원석을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원석만을 보고서는 “여기에 아름다운 다비드상이 있군.”, “여기에 천사가 갇혀 있군.”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원석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기에 지금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원석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는 사랑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자녀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누군가의 사랑에 큰 힘을 얻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게 만드는 사랑을 향해 ‘사랑의 미켈란젤로 효과’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천사를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천사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원석만을 바라보고서 ‘쓸데없는 돌이네.’라며 단정을 지어 버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 안에 천사가 있는데, 사랑을 통해 그 안의 천사를 꺼낼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분명 조상들의 전통에 맞지 않는 행동이고, 또 비판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두고 위선자라며 꾸짖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결 예식이 합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또는 서원을 채우고자 성전에 예물을 바치는 것이 의무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그저 사람의 전통일 따름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오로지 사랑 안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판단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특별한 곳에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작은 관심과 반응을 통해 사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의 몸과 성장을 응원하면서 이웃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진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받고, 30대는 이해타산, 40대는 분별력,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그라시안).
사진설명: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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