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는 말한다. “이렇게까지 약할 줄은 몰랐다”고. kt도 수긍한다. “우리 전력이 이처럼 미약할진 몰랐다”고.
시즌 17경기를 치른 kt는 2승 15패를 기록 중이다. 개막 11연패 이후 넥센을 상대로 기분 좋은 2연승을 거뒀으나 그것도 잠시. 현재 4연패를 달리고 있다.
kt의 시즌 꼴찌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연패도 충분히 예상된 수순이었다. 정작 문제는 경기 내용이었다. kt는 17경기 가운데 11경기에서 2득점 이하에 그쳤다. 1득점 이하는 7경기, 0득점도 2번이나 있었다. 경기당 평균득점이 2.88점에 불과했다.
kt 팀 평균자책이 4.83(리그 6위)으로 준수한 편이긴 하나, KBO리그 경기당 평균 득점 5.07점보다 현격하게 떨어지는 kt 득점력으론 도저히 승리를 거머쥐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팀 타율 .221 / 득점권 타율 .179에 머문 팀 타선의 돌파구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야구계에선 “2013년 NC처럼 kt도 트레이드를 통해 꽉 막힌 타선의 물꼬를 터보라”고 조언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우리라고 왜 트레이드를 하고 싶지 않겠나. 문제는 우리가 영입하고 싶은 선수는 많은데 상대 팀에서 영입하고 싶어하는 우리 선수가 적다는 것”이라며 “타선 강화도 좋지만, 눈앞의 성적을 위해 우리 팀 최고 유망주들을 마냥 내줄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와중에 4월 중순 kt에 트레이드 제안을 해온 팀이 있었다. 그 팀에선 kt의 신인 포수를 원했다. 그리 지명도가 높은 선수가 아니었기에 트레이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촉박한 시간과 여러 사정이 꼬이며 트레이드는 불발로 끝났다.
트레이드 기회가 한 차례 무산된 kt는 이후 연패가 거듭되자 팀 전력 강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kt의 움직임에 신호를 보내준 팀이 바로 LG였다.
kt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LG
4월 20일 kt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즌 개막 이후 연패를 거듭하면서 보강 포지션이 어딘지, 우리 팀에 부족한 점이 어딘지 고민했다. 고민 결과 공격력 강화와 내야 백업요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때부터 여러 팀의 백업자원을 살펴봤다. 시즌 중이라, 1군 요원을 내놓을 팀은 아무 곳도 없었다. 1.5군과 2군 자원들을 살펴봤지만, 그 역시 젊은 유망주를 내놓을 팀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LG에 주목했다. 그 가운데 내야수 박용근이 눈에 띄었다. 박용근은 1군 경험도 풍부하고, 1루수를 제외한 2루, 3루, 유격 수비가 모두 가능한 선수였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도 뛰어나 우리 팀에 합류하면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kt는 이 같은 생각을 LG에 전달했다. 이제 공은 LG로 넘어간 셈이었다. 물론 LG가 ‘NO'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시 kt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LG가 ‘싫다’고 해도 할 말은 없는 분위기였다. 올 시즌 LG의 시즌 초반 흐름을 고려하면 LG 역시 즉시 전력감이 필요한 터였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내줄 수 있는 선수는 A급 유망주보단 다소 아래인 선수일 게 분명했다. 당장만 놓고 보면 LG 입장에선 ‘득보단 실이 클 수 있는 트레이드’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다.”
LG도 kt의 트레이드 제안을 받고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G의 선택은 ‘NO'가 아니라 ’YES'였다. 이번엔 LG 관계자의 설명이다.
“kt 제안을 받고 내부 논의가 있었다. 처음엔 ‘트레이드를 한다고 우리가 무슨 이득을 보겠는가’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단장님과 감독님께서 ‘kt가 신생팀이고, 리그 발전과 상생 차원에서 kt를 도와준다면 당장의 우리 팀 이익보다 더 값진 가치를 생산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트레이드로 kt를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그때부터 트레이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LG는 그간 트레이드를 통해 재미보단 아픔을 더 맛봤던 팀이다. LG를 떠난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승승장구하며 LG는 ‘남 좋은 일만 해주는 팀’이란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런 세간의 평 속에 LG가 kt에 내준 선수가 다시 한 번 ‘펄펄 난다’면 LG는 또다시 의도하지 않은 논란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백순길 LG 단장은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 팀엔 부담이겠지만, 해당 선수에겐 좋은 일 아니겠느냐”며 “언제까지 우리 프로야구팀들이 적금을 넣듯이 선수들만 차곡차곡 모아둬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구단에 선수가 많으면 좋을 거다. 하지만, 모아만 두고 활용하지 않는다면 팀에게도, 선수에게도 마이너스일 뿐이다. 처음에 kt가 박용근을 원한다고 했을 때 과연 박용근이 우리 팀에서 얼마나 자주 뛸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 고민했다. 현 우리 팀 상황을 고려할 때 1군 출전 기회가 많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여기다 젊은 내야수도 많아 더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 선수가 지금 1군을 비워도 대체 선수가 있다는 자신이 섰다. 그렇다면 그간 우리 팀에서 고생한 박용근의 노력과 헌신을 고려할 때 kt에서 새 기회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박용근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일지 몰랐고.”
LG가 트레이드에 응하자 두 팀은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기 시작했다. 퍼즐을 맞추듯 여러 카드가 등장했다. 그러다 LG가 지목한 선수가 우완 이준형이었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2012년 신인 지명회의의에서 6라운드 전체 53순위로 삼성에 입단했던 이준형은 좋은 체격과 뛰어난 속구로 주목받던 선수였으나, 삼성에선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3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로 이적한 우완 투수였다.
스프링캠프에서 조범현 kt 감독은 “속구가 빠르고 좋은 투수”라며 “실전 경험만 많이 쌓는다면 1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기대주”라고 평한 바 있다.
kt는 LG가 이준형을 지목하자 적지 않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형은 참 좋은 투수다. 190cm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속구가 좋고, 투구 스타일 역시 괜찮은 투수다. LG가 이준형을 지목했을 때 구단 내부에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kt 관계자의 말이다.
팀의 미래를 보자면 이준형은 kt에 필요한 자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 패하기만 한다면 팀의 미래는 고사하고, ‘패배주의’라는 그림자에 휩싸여 오랫동안 힘을 쓰지 못할 게 분명했다.
kt는 결단을 내렸고, LG와 최종 카드를 맞춘 뒤 ‘이준형을 내주는 대신 박용근과 함께 윤요섭을 받는’ 2대 1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조 감독은 “이준형을 주고 박용근만 받는 1대 1 트레이드는 ‘좀 아니지 않냐’라는 내부 의견이 있어 포수와 공격력 강화 차원에서 윤요섭이 포함된 2대 1 트레이드를 진행해주길 바랐는데 우리 팀 프런트의 적극적인 노력과 LG의 결단으로 결국 좋은 그림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민하게 움직여 취약 포지션 강화에 성공한 kt
급물살을 탄 트레이드 논의는 19일을 기점으로 ‘2대 1 트레이드’로 결론났다. 그리고 두 팀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트레이드 소식을 알렸다.
조 감독은 “박용근을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윤요섭은 직접 실력을 확인해 포수로 쓸 수 있으면 포수로도 쓰고, 그렇지 않으면 팀 공격력 강화 차원에서 지명타자 등으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두 선수 영입이 2013년 NC처럼 반전의 기회가 될진 아직 알 수 없다. 당시 NC는 넥센으로부터 지석훈, 박정준을 영입한 뒤 수비와 공격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kt 역시 그런 결과를 얻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조 감독이 내심 바라는 ‘치열한 포지션 경쟁에 따른 시너지 효과’만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구계는 “kt 프런트의 첫 번째 트레이드치곤 매우 조용하고, 내실 있게 끝났다”며 “kt 프런트가 매우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이미지를 세상에 알린 것도 큰 수확 가운데 하나”라고 평하고 있다.
LG는 박용근, 윤요섭을 kt에 내주며 팀 내 준고참 적체 현상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두 준고참 선수를 kt에 보내며 ‘리그 발전과 상생에 기여했다’는 평까지 듣게 됐다. 여기다 ‘영건’ 이준형을 영입하며 미래 투수자원도 확보했다.
야구계는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이번 LG 트레이드는 꽤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 구단 관계자는 두 팀의 트레이드를 지켜본 뒤 ”kt와 LG 프런트의 우호적인 관계와 다른 구단보다 리그 발전을 폭넓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LG 입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번 트레이드가 잡음 없이 진행된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kt 김영수 사장이 과거 LG 구단 사장이었다. 운영팀을 훌륭하게 이끌고 있는 나도현 운영팀장도 LG 운영팀장 출신이다. 아무래도 다른 팀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친정격인 LG와 허심탄회하게 트레이드 논의를 하는 게 용이했을 것이다.
혹자는 ‘kt가 이준형을 내준 게 손해 아니냐’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이준형이 그렇게 좋은 선수였다면 2군 투수층이 얇은 삼성이 40인 로스터에서 제외해 2차 드래프트에 그대로 나가게 두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정말 아까운 선수였다면 kt가 지금쯤 1군에서 요긴하게 활용했을 거다. 하지만, 올 시즌 이준형은 1경기에 등판해 2이닝을 던진 게 전부다.
되레 144경기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LG 입장에서 내야 백업요원 박용근, 포수 자원 윤요섭을 내준 게 아까울지 모른다. 특히나 트레이드 되기 전 퓨처스게임에서 박용근이 홈런을 친 것으로 안다. 박용근은 발도 빠른 선수라, 팀 기동력에도 큰 도움이 되는 선수다.
그런데도 LG가 두 선수를 ‘언제 가능성이 터질지 모르는’ 이준형과 맞바꿨다는 건 실익을 뛰어넘은 결단으로 봐야할 거다. 여기엔 '신생구단보다 우리가 더 선수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테고, KBO 구본능 총재의 존재감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kt의 연착륙으로 리그 발전을 바라는 구 총재로선 어느 팀이든 kt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기 바랐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LG가 kt의 트레이드 파트너 상대가 돼줬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리그 발전과 상생을 고민한 LG
kt에서 LG로 유니폼을 갈아 입은 투수 이준형. 지난해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이준형은 LG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해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 그날 직접 이준형의 투구를 확인했던 LG 코칭스태프는 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신생팀에선 성장하는데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LG에선 그 시간이 더 짧아질 수 있다는 게 야구계의 시각이다.
2013년부터 항간엔 “LG가 ‘LG가(家) 출신’의 구 총재 덕을 많이 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일부 야구인은 “심판 판정이 왠지 모르게 LG에 우호적”이란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야구인과 기자는 되레 LG가 여러 면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다.
최근 2년간 스토브리그 때도 LG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탬퍼링(사전 접촉)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구 총재의 일성이 들린 뒤 기자가 확인한 팀들 가운데 ‘탬퍼링에 나서지 않은 정말 몇 안되는 팀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다른 팀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kt가 지금처럼 기존 9개 구단의 '승수 쌓기 희생양'이 된다면 리그 질 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 흥행마저 떨어질 수 있다"며 "기존 구단들이 전력이 좋아 kt에 이기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이젠 리그 발전과 공생 차원에서 kt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도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위원은 "이번 LG-kt 트레이드는 매우 바람직한 트레이드였다"고 평하고서 "LG처럼 대체 가능한 1.5군 내지 2군 자원 가운데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아니라면 다른 팀들도 리그 상생 차원에서 kt와 활발한 트레이드를 진행했으면 좋겠다"며 "LG가 그 물꼬를 터준 것 같아 무척 반갑다"고 말했다.
이 위원의 말처럼 승패가 뻔한 경기를 비싼 돈을 주고 관전할 이는 적다. 스포츠의 생명은 예측 불가능한 결과다. 지금처럼 kt가 연전연패한다면 야구팬은 kt전을 외면할 것이고, 한발 나아가 프로야구 전체에 대한 흥미도 반감될 것이다.
이번 트레이드의 성격을 종합한다면 kt는 기민하게 움직여 취약 포지션을 보강했고, LG는 당장의 실익을 떠나 리그 발전 차원에서 ‘통 큰 결단’을 내렸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번 트레이드를 계산기로 두들기듯 실익을 계산하는 건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시각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무쪼록 향후 두 팀의 이번 트레이드가 향후 야구사에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