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동아일보 1946년 8월 13일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81300209203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8-13&officeId=00020&pageNo=3&printNo=7053&publishType=00020
정치자유를 요구
계급독재는 절대반대
군정청 여론국 조사
군정청여론국에서는 조선인민이 어떤 종류의 정부를 요망하는가를 관찰키 위하야 삼십항목의 설문을 열거하고 여론을 조사하였는데 설문에 반영된 민의는 다음과 같다.
문1, 일신상의 행복을 위하야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가. 생활안정을 실현할 기회 3,473명(41%)
나. 정치적 자유 4,669명(55%)
다. 모름니다 311명(4%)
문2, 귀하께서 찬성하시는 일반적 정치형태는 어느 것입니까
가. 개인독재(민의와는 무관계) 219명(3%)
나. 수인독재[귀족공화정같은걸 말하는듯](민의와는 무관계) 323명(4%)
다. 계급독재(타계급의 의지와는 무관계) 237명(3%)
라. 대중정치(대의정치) 7,221명(85%)
마. 모름니다 453명(5%)
문3, 귀하의 찬성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가. 자본주의 1,189명(14%)
나. 사회주의 6,037명(70%)
다. 공산주의 574명(7%)
라. 모름니다 653(8%)
문4, 귀하는 조선정부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 시민의 의무, 정부의 책임과 구조 등을 규정한 성문법에 의거하여야 하겟다고 생각합니까
가. 예 7,358명(87%) <'나'는 없음>
다. 아니요 242명(3%)
라. 모름니다 853명(10%)
문5, 만일 <예>라면 이 헌법작성시기는 언제야 하겟습니까
가. 지금 1,857명(27%)
나. 전조선인이 통일된 때 5,232명(71%)
다. 모름니다 269(2%)
문6, 이 헌법은 하자[어떤 사람,일본어의 なにもの와 상통]가 작성할 것임니까
가. 민선헌법회의 5,907명(70%)
나. 중요정당이 선출한 헌법위원회 1,134명(13%)
다. 미소공위[미소공동위원회]가 선출한 헌법위원회 610명(7%)
라. 미군정의 선출한 헌법위원회 159명(2%)
마. 미소공위 145명(2%)
바. 미국정부 49명(1%)
사. 모름니다 447명(5%)
문7, 조선의 최고법이 되기 전에 이 헌법은 누가 통과시켜야하겟다고 생각합니까
가. 이 헌법을 작성하는 단체 926명(11%)
나. 조선인민 6,785명(80%)
다. 미소공위 239명(3%)
라. 기타 155명(2%)
마. 모름니다 347명(4%)

1947년 7월, 조선신문기자회에서 서울시민들 상대로 여론조사
1) 6월 23일 반탁테러 사건은?
ㄱ.독립의 길이다(26%) ㄴ.아니다 (71%) ㄷ.기권(3%)
2) 미소공위와의 협의에서 제외할 정당.사회단체는?
ㄱ.있다 (71%): 한민당(1272) 한독당(922) 독촉국민회(309) 남로당(174) 민전(9) 대한노총(91) 전평(14) 건청 (19) 광청(30), 기타
ㄴ.없다(14%)
ㄷ.기권(13%)
3) 국호는?
ㄱ.대한민국(24%) ㄴ.조선인민공화국(70%) ㄷ.기타(1%) ㄹ.기권(4%)
4) 정권형태?
ㄱ.종래제도(14%) ㄴ.인민위원회(71%) ㄷ.기타(10%) ㄹ.기권(5%)
5) 토지개혁방식?
ㄱ.유상몰수유상분배(17%) ㄴ.무상몰수 무상분배(68%) ㄷ.유상몰수 무상분배(10%) ㄹ.기권(5%)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ꡔ자료대한민국사ꡕ v.5, 1973, 21-22쪽 또는 김천영, ꡔ연표 한국현대사ꡕ 한얼, 1985, 721쪽.
1947년 7월 6일자 조선일보 (국호는? 정권형태는?. 기자회서 가두여론조사)
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index.jsp?Y=1947&M=7&D=6&x=53&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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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말하는 '6.23 반탁테러 사건'은 제2차 미소공위 재개 당시 이승만-김구가 주도한 반탁,미소공위 반대운동을 말합니다.
참고로, 이 2개 매체에서 여론조사한 기관은 좌익세력이나 좌익매체에서 조사한게 아닌 미군정청에서 직접 여론조사했던 자료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 사상 선호'한다는것은 공산주의를 선호한다는 의미가 아님.
분문중에...
문2, 귀하께서 찬성하시는 일반적 정치형태는 어느 것입니까
다. 계급독재(타계급의 의지와는 무관계) 237명(3%)
라. 대중정치(대의정치) 7,221명(85%)
이거만 주목하면 됩니다.
오늘날로치면 의회민주주의를 기반한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했다는 얘기..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국의 사상적, 가치관을 완전 비틀어버리고 왜곡시키게 만든 1人 중 주범이죠.
헐 국호는 충격이네 ㅋㅋㅋ
여운형이 미군정이전에 인민위원회 세우고 내걸었던 구호니까요. 무려 45년임..
그 당시에 인민위원회는 대중들로부터 지지가 많았죠.
서울에 중앙 인민위원회는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재건파들이 주도권 장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지방 인민위원회 경우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역의 민족주의 성향 어르신 유지들이 직접 나서 자치활동했을 정도였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5638&cid=40942&categoryId=31691
저 당시만해도 '인민'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였던 단어 중 하나였죠. '이념'에 의해 지금은 '죽은 단어'가 되버렸죠..(이는 북한에서도 해당됩니다. '자유주의'같은 좋은 단어를 거기서는 '죽은 단어'로 만들어버렸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따로 분류된 점 부터 사민주의 지향이라는게 보이죠
자본주의가 곧 제국주의 체제라고 생각하던 시절의 이야기죠(20세기 전반 기준에야 뭐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고). 갓 독립한 약소국이 자본주의로 성장하기도 어렵고, 그걸 해낸 드문 케이스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었으니, 가난했던 당시에는 사회민주주의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
미소공위에서 한민당 한독당 독촉 순서로 배제해야 한다는 거야 저 세 정당이 반탁운동의 선두에 서서 그랬던 거지만, 대한민국보다 조선인민공화국을 더 선호한다는 건 생각보다 (중도)좌익이 더 강성했다는 의미이기도...
삭제된 댓글 입니다.
30년대 중후반 전후로 국내에서 항일 독립운동은 사회주의계열이 주류였다는거 부정 못하죠... (여기서 저는 그 당시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는 다르게 봅니다. 이것도 스펙트럼이 넓어서...) 사회주의계열에서 활동한 사람들 중 변절한자들도 많았지만, 끝까지 항일운동한 주류들은 사회주의계열이 많은게 사실이었습니다.
민족주의자,우파쪽은 그무렵 수양동우회 사건,흥업구락부 사건 전후로 변절자들이 엄청나게 속출해버려서 변절내지는 조용히 칩거생활 지내는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알기로 민족주의쪽에서 끝까지 변절하지않았던 분들은 안재홍 선생과 조만식 선생, 송진우 선생 정도로 알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