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없는 20일 월요일 오후. 2대 1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졌다.
kt가 LG로부터 포수 윤요섭(31) 내야수 박용근(31)을 영입하는 대신 우완 투수 이준형(22)을 내준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20일 자로 LG맨으로 거듭난 이준형 투수
야심차게 KBO리그에 뛰어든 kt. 어느 정도 기존 구단과 전력 차는 보일 것으로 내다 봤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심각했다. 2승 15패. 승률이 1할 대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다.
초반까지만 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시소게임을 펼치는 등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발로 나서는 외국인 투수 3명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여기에 찬스 때 마다 저조한 득점권 타율을 보이는 등 공수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kt와의 3연전은 당연히 승률을 챙기는 코스로 여겨질 정도다. 당장 공격의 물꼬를 터 줄 수 있는 베테랑 야수 보강이 절실했다. 조범현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대신 젊은 선발 자원을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LG는 중복되는 포지션으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두 명의 야수에게 길을 터주면서 동시에 젊은 투수 한 명을 낙점했다.
kt는 현재를 LG는 미래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트레이드를 두고 어느 팀이 이득이고 손해인지를 따지는 분위기다. 특히 관심은 이준형에게 몰려 있다. 윤요섭.박용근에 비해 상대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는 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상문 감독은 ‘제 2의 임정우로 키울 계획’이라며 높은 기대치를 드러냈다. 야수 2명과 맞교환 됐다는 점에서 이준형은 현장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유망주임이 분명하다.
트레이드 발표 당일 이준형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침착했고 담담했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하 인터뷰 전문)
- 목소리가 밝다. 소식은 언제 들었나?
“오늘 오전 경산으로 원정을 가야 했는데 1군에 올라갈 수 도 있을 것 같다며 남으라고 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들었다. LG로 가게 됐다고(웃음). 이야기 듣고 인터넷을 뒤져 보니 기사가 쫙 올라와 있더라. 잘 하지도 못하는 내가 그런 관심을 받다니 진짜 신기했다. 친구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고 캡처를 해 보내주기도 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싶더라. 야구를 잘해서가 아니가 그 외적인 걸로 유명해 진 것 같아 너무 쑥스럽고 황당하다.”
- 당황스럽기도 할 텐데 여유만만이다. LG로 가는 게 기쁜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건 아니다. 야구야 어디서 하던지 다 같지 않나? 집(부천)이라 수원과도 멀지 않아 큰 불편함은 없었다.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수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당장 집을 빼야 할 것 같다. 아직 현실로 와 닿지 않는다. 아마 내일 kt쪽에 인사드리고 잠실야구장으로 넘어가 또 상견례를 하면 그때 비로소 실감 날 것 같다. 2년 전에도 한 번 겪어 봤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게 훨씬 수월해진 것 같다. 남들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벌써 2번째라니 이러다 저니맨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서울고 졸업 후 2012 신인지명회의에서 삼성 6라운드의 지명을 받았던 이준형은 이듬해 11얼 프로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열린 2차 드래프트로 kt로 이적했다.)
- 2차 드래프트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한꺼번에 팀을 갈아탄 것이지만 이번엔 트레이드 아닌가? 의미가 또 다르다.
“맞다. 삼성에서 kt로 올 땐 놀라긴 했어도(김)동명이 형,(신)용승이 (김)영환이랑 같이 와서 의지가 많이 됐고 또 빨리 적응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라 좀 걱정된다. 그래서 곧장 (신)동훈이에게 전화 걸어 나름 정보를 확보해 놨다(웃음)”
-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같은 우투수 아닌가? 혹시 경계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전혀 아닐 거다. 우리 그런 사이 아니다(웃음) 동훈이도 내가 LG로 가게 된 것을 기뻐하고 좋아했다.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닦아놓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동훈이 말고도 우리 또래 에 서울고 출신이 9명이나 된다고 하더라. 고교 선후배가 많다는 것도 은근 기대된다. 가서 일단 이천 2군 숙소에서 지내지 않을까 싶다. 빨리 팀에 적응해야 할 것 같다.”
- kt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도 분명 있을 텐데
“당연히 있다.1군 진입을 준비하는 전 과정을 함께 하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kt는 팀 성적은 좋지 않지만 분위기만큼은 정말 최고다. 젊은 투수가 많다 보니 활력도 넘치고 화기애애하다. 선배님들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시고 잘 챙겨 주신다. 거의 대등하게 가다가 막판에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과정이 좋다 해도 결과만 남는게 프로 아닌가? 그런 점에선 아쉽고 속상하다. 다행히 베테랑 선수들을 보강했으니 분명 좋아질 것이다.”
- 팀 동료들과 작별해야 한다. 누가 가장 서운해 하던가?
“(이)윤학이, (김)영한이가 가장 아쉬워했다. 윤학이는 2년 전 LG에서 2차 드래프트로 왔는데 내가 그 팀으로 가게 되다니 참 묘한 인연이다 싶다. 늘 붙어 다녔는데 형 없이 외로울 것 같다며 많이 서운해 하더라. 한 살 어리지만 잘 통하는 사이였다. 영한이는 삼성에 있을 때 1년 간 재활을 함께 했었다가 같이 kt로 오면서 더 친해졌는데. 너무 슬퍼하더라(웃음) 그래도 아예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사적으로 볼 수도 있고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으니 괜찮다(웃음)”
- 4년 만에 삼성 - kt - LG 으로 팀을 옮기는 거다. 흔치 않은 경험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솔직히 서울고 시절 난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런데 삼성에서 뽑아줬다. 정말 고마웠다. 그때 지명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깨부상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kt가 지명을 해줬다. 또 한 번 고마웠다. 보여준 것도 없는 내게 하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 줬다. 삼성에서부터 함께 했던 전병호 코치님과 헤어지게 된 것이 무척 아쉽다. 방금 전코치님과도 연락주고 받았다. 너무 서운해 하셔서 놀랐다. 그만큼 나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 지난해에 기대보다 많은 게임에 나서지 못했었다. 어깨 부상 때문이었나?
“아니다. 폼 교정을 하느라 많이 출장하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앞서 두 팀에서는 도움만 받은 것 같다. 삼성에서는 아픈 어깨 고치고 kt 와서는 폼을 바꾸면서 제구도 향상시키고 던지는 법배우고(잠시 머뭇거리다가) 기대만큼 보여드리지 못하고 떠나 정말 죄송하다.”
- 그렇게까지 생각할 것 까진 없지 않나 싶다. 두 팀이 LG 좋은 일 만들어 준 셈이 될 수 있도록 이제 제대로 실력 발휘 하면 된다. 그런데 삼성 입단 이후 부상을 당한 이유가 많은 연습량 때문이라고 들었다. 맞나?
“한마디로 무식하게 많이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구단에서 시킨 게 아니고 나 혼자 개인 연습을 하다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팀 훈련 끝나면 거의 밸런스를 위한 쉐도우 피칭 정도만 하는 정도인데 난 미친 듯이 공을 직접 던지며 연습을 했다. 그게 잘 할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웃음). 주변에서 무리하지 말라는 말도 무시하고 하다가 사단이 난 것이다. 그때 이후 너무 몸을 혹사하는 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은 보강훈련 정도만 하고 나름 몸 사리며 하고 있다.”
- 연습벌레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할당량의 연습을 채우지 못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건가?
“서울고 시절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에 미친 듯이 던지고 또 던졌다(웃음).물론 실전이 아닌 훈련에서(웃음) 그렇게라도 감을 익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운 좋게 삼성이라는 팀에 들어가 보니 내 부족함이 몇 배 더 크게 보였고 노력만이 살 길이다 싶어졌다. 솔직히 실전 등판의 한을 채우려는 보상 심리가 컸던 것 같다.”
- 서울고 3학년 당시 성적을 보니 28이닝(10경기)을 던져 3승 방어율 0.96으로 꽤 준수한 성적이었는데 그래도 마운드에서 많이 던지고 싶은 욕심이 컸나 보다.
“(신)동훈이가 에이스였고 난 가끔 던지는 쪽이었다. 솔직히 제구가 좋지 못해 감독님께 믿음을 드리지 못했다. 그래도 볼 끝이 지저분해 타자들이 잘 공략하지 못하는 장점 때문에 방어율이 낮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깨끗해 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나마 힘이 붙었다는 것에 위안 삼는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프로 1군에서 통하기엔 역부족이다. 앞으로 열심히 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
역동적인 피칭 동작, 긴 팔과 긴 다리도 인상적이다.
- 입단 4년 만에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첫 등판 게임 어땠나? (4월 3일 수원 KIA전 3-0으로 뒤지고 있던 8회 다섯 번째 투수로 나와 2이닝 동안 56개의 볼을 던지며 10명의 타자를 상대 ,4피안타 1홈런 2볼넷 2탈삼진 2실점 2자책을 기록했다.)
“완전 털렸다(웃음) 최희섭 선배님께 2점짜리 홈런을 맞기 전 까지만 해도 해 볼 만 하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역시 1군 타자들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 시범경기도 던져 봤기 때문에 떨리거나 긴장되진 않았는데 몸은 내 맘과 달랐던 것 같다. 솔직히 전날 선발로 나설 예정이었다가 비로 인해 취소가 되어 불펜으로 나선 거라 좀 힘이 빠진 게 사실이다.”
- 4월 2일 삼성전 선발 취소 된 걸 얘기하는 건가?
“그렇다. 개막전부터 엔트리엔 등록되지 않았지만 1군 선수단과 함께 지내고 있다가 선발 통보를 받았다. 그 상대가 삼성이라는 점에 너무 흥분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비가 오고 있는 와중에 몸을 다 풀고 게임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6시 23분 우천취소가 결정됐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고 발전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때 던졌어야 했는데......”
- 친정팀을 상대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그런데 이제 친정 팀이 늘었다. 의욕도 두 배로 넘쳐 날 듯 싶다.
“물론 시작은 퓨처스에서 하겠지만 언젠간 그런 날도 오지 않겠나? 기대된다. 솔직히 올해 2군 성적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서 기회를 잡을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 (21일 현재까지 퓨처스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2경기 7.2이닝 1패 평균자책점 5,87이다)
- kt 보다 LG 마운드가 훨씬 두텁고 유망주도 많다. 신생팀이 아닌 만큼 이전보다 1군 행의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어디서 던지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노력해서 어느 수준에 닿으면 기회는 자연스레 주어질 것이다. 1군이건 2군이건 상관없이 가능한 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 그러면서 감도 익히고 타자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단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그 다음 선발이건 중간이건 내게 주어진 임무를 잘 해내는 것이 그 다음 목표다. 물론 1군에서 뛰면 좋겠지만 실력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욕심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겠다.”
- kt와 달리 LG는 팬도 많고 인기 구단이다. 만약 기대만큼 해주지 못하면 대가를 치러야 할 수 도 있다.
“ 나 같은 선수를 주목해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닌가? 악플도 욕도 관심이다. 팬들이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일단 절반의 성공이다(웃음). 2명의 야수를 보냈지만 좋은 투수 한명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다. 지켜봐 달라.”
186cm 83kg 날렵한 체격의 미남형의 이준형. 그러나 보기와 달리 강단 있고 의지가 확고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선수다.
21일 그는 생애 세 번째 KBO리그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런데 이전 것 보다 줄무늬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예감이 스친다. 향후 LG 트윈스를 대표하는 꽃미남 선수로 자릴 잡길 바란다. 그런데 올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가 다시 열린다. '그때 다시 팀 옮기는 건 아니겠죠?' 그의 혼잣말이 자꾸 귀가를 맴돈다. 설마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