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徐敬德)-유물(有物)(존재에 대하여)
有物來來不盡來(유물내래부진래) 존재가 나고 또 나도 다함이 없어
來纔盡處又從來(내재진처우종래) 다하였나 싶은 때에 어디선가 또 나오네
來來本自來無始(내래본자래무시) 시작도 없이 나고 또 나거늘
爲問君初何所來(위문군초하소래) 그대는 아는가, 애초에 어디에서 오는지를?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화담집花潭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화담 서경덕이 우주 만물을 형성하는 본원에 대해 탐구한 시이다.
화담은 사물을 관찰하고 이치를 궁구하기를 좋아했는데, 이와 관련한 어린 시절의 일화가 있다. 한번은 부모가 나물을 캐오라고 하였는데, 매일같이 늦게 돌아오면서도 광주리를 다 못 채운 채로 돌아왔다. 이를 이상히 여겨 아들에게 묻자, ‘나물을 캐러 갔을 적에 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하루는 땅에서 한 치, 다음 날엔 땅에서 두 치, 또 그 다음날엔 땅에서 세 치 뜨더니, 점차 위로 날아갔습니다. 제가 이 새가 나는 것을 보고 그 이치를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늦게 돌아오게 되었고, 광주리도 채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18세 ‘대학’을 읽고, ‘아는 것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달려 있다致知在格物’라는 대목에 이르러 마음에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에 화담은 ‘학문을 하면서 먼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지 못한다면 독서를 한들 무엇하겠는가?’라고 하고, 천지 만물의 명칭을 벽에 써 붙여 두고, 날마다 온통 여기에만 정신을 쏟으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였다.
화담이 후에 이러한 공부 방법을 두고 어려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 못해 헛된 노력을 했노라며, 이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긴 했지만 이러한 일화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데 치중했던 그의 학문 성향을 알 수 있다.
위의 시에 이어 한 수가 더 있다.
존재가 가고 또 가도 다함이 없어 有物歸歸不盡歸(유물귀귀부진귀)
다하였나 싶은 때에도 다 간 적이 없어라 歸纔盡處未曾歸(귀재진처미증귀)
끝도 없이 가고 또 가거늘 歸歸到底歸無了(귀귀도저귀무료)
그대는 아는가, 어디로 가는지를? 爲問君從何所歸(위문군종하소귀)
첫 번째 수가 존재가 생겨나는 곳에 대한 것이라면, 두 번째 수는 존재가 돌아가는 곳에 대한 것이다.
시작도 없이 나고 또 나는 곳은 어디일까?
끝도 없이 가고 또 가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곳과 가는 곳은 같은 곳일까, 다른 곳일까?
그곳과 지금 여기 이곳은 같은 곳일까, 다른 곳일까?
어디서부터를 삶이라 하고 어디서부터를 죽음이라 할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16세기 조선의 철학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서경덕[徐敬德, 1489년(성종 20) ~ 1546년(명종 1),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화담(花潭), 복재(復齋). 시호는 문강(文康).]-조선 중기의 주기론 유학자.
1489년 경기도 개성부에서 아버지 수의부위(修義副尉) 서호번(徐好蕃)과 어머니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집안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13세에 처음으로 글을 읽었고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18세에 <대학>을 읽고 격물치지에 뜻을 두었다고 하며 종달새 울음소리를 듣고 하루종일 이를 탐구했다는 일화도 있다. 1519년 현량과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이후 어머니의 요청으로 1531년(중종 26) 식년 생원시에 응시하여 2등 7위로 입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했다. 그의 호 화담은 그가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의 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후 1575년(선조 8) 우의정에 추증(追贈) 되었다.
그의 철학은 철저한 주기론이며 태허설(太虛說)이라고도 한다. 그는 기가 모이면 물질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태허가 된다고 보았다. 이 때 태허(太虛)라는 것은 기가 띄엄띄엄 흩어져 지각되지 않는 상태이며 소멸한 무(無)의 상태가 아니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은 지극히 현세 지향적인 성격을 띠며 그가 불교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것과 태허로 돌아가는 것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순행하는데 어떻게 뭉치고 흩어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이(理)이다. 하지만 그가 이를 언급하는 것은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칠 뿐이며, 그 이외의 부분은 대개 기에 대한 설명으로 전개된다. 종달새를 하루 종일 탐구했다든가 하는 일화들 또한 기를 탐구해 그 속에 숨은 이를 찾으려 하는 서경덕 철학을 잘 반영한 일화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정작 성리학의 중심이 되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때문에 성리학에서 제시한 방대한 이에 대한 설명을 그의 철학 체계 안에 넣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기의 순환을 통해 우주론을 설명했다 하더라도 이를 인륜에 적용시켜야 하는 유학의 기본 입장상 이가 단순히 자연 이치로 머문다면 이는 바람직한 철학이라고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생전의 서경덕은 이황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이와 기를 포괄적으로 설명한 주기론자 이이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조선 주기론은 이이 철학 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제자가 "지금 심정은 어떠신지요?"라 물어보니 "살고 죽는 이치는 깨달은지 오래니 편안할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화담집(花潭集)』이 있으며, 그의 사상적인 면모를 밝혀 주는 「원이기(原理氣)」 · 「이기설(理氣說)」 · 「태허설」 · 「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 등의 대표적인 글을 수록하고 있다
*纔(재) : 겨우 재, 잿빛 삼, 1. (겨우 재), 2.겨우, 3.조금
첫댓글 송도삼절로 일컬어 지는 화담 서경덕의 철학적인 시 인듯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알고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격물치지의 근본이 아닌지.....
ㅎ, 회장님의 멋진 해석이네요.
나이들수록 공부하면 치매도 안 걸린다 하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