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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바뀌어도 두번은 변하고도 남았을 스물한살 평생 동안 겪어왔던 고통은 그렇게도 간단하게 바뀌어버렸다.
마취, 그리고 몰려오는 졸음. 깨어나고나자 내 인생은 달라져있었다.
병원 침대에 널브러져있다시피 누워있는 나를 붙잡고 우는 가족들에게서 떨어지는 눈물이 내 병원복을 적실때쯤에서야 그들을 낚아채듯 붙들어 내보내는 얼룩진 하얀색 옷의 간호사를 멍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
성공. 성공이었다. 심장이식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건강한 심장이 내 가슴 속에서 세차게 박동했다. 새로운 심장이 펌프질해내는 강물같은 핏방울들이 내 몸 속을 구석구석 돌아 나를 다른 몸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제 건강이란것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심장, 남의 심장.
꺼림칙하게 느껴져 거부만 해온 심장이식 수술이지만, 더 이상은 미룰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 온 연락에 이것이야말로 단 한번밖에 없는 기회라는 말에 차마 부정할수 없음을 알고, 서둘러 돌팔이 의사에게 나를 맡겼다.
한창 추억 아닌 기억에 빠져있을무렵 내 심장이 다시 한번 세차게 박동했다.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듯, 집중하라는듯.
심장은 조용히 내 뇌의 명령에 따라 순응했다. 몇일이 지나고 또 흘러 어느덧 퇴원할 무렵이 되었을때의 내 몸은 평생 느껴본적 없는 활기참으로 가득했다.
씨밀레
“오빠!”
반갑게 달려오는 내 애인, 천일이 넘도록 줄기차게 학창시절부터 사귀어온 그녀.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약한 주제에 그녀를 보기만 하면 나름 할 수 있는만큼 뛰던 심장, 나의 것이었던 심장. 그러나 내 새로운 심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당황하는 나와, 억지로라도 다시 어느 정도라도 평소처럼 두근거리게 만드려는 내 뇌의 노력을 비웃는듯, 새로운 심장은 보란듯이 정기적으로 뛰어 내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당연하게 키스를 하고, 팔짱을 껴오는 그녀 옆에서 어색한 맞장구를 치며 데이트했지만, 원래라면 조금은 기쁘고 반가웠어야할 만남에서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나를 그토록 오래 알아온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리 없었다.
“오빠, 왜그래?”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갑작스레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설레임과 사랑의 박동이 아니었다.
의지. 심장만의 의지였다. 바램. 나와는 다른 바램.
“우리 헤어져.”
“뭐?”
아! 무슨 소리를 한걸까! 나도 몰래 튀어나온 말에 입을 막아보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되담을수 없었다. 심장이 잠시나마 뇌를 조종했다. 분명히 그랬다.
카오스같은 한시간이 뒤따르고, 심장이 다시 잠들듯 조용해질때에는, 결국 그것이 원하는 일을 하고 난 후였다. 분명 보기엔 내가 찬 것이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데이트는 어떻게 됐냐는 동생의 장난스런 말을 들리는둥 마는둥 스쳐 지나가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푹신한 침대도, 그 무엇도 생각을 방해할순 없었다. 복잡하다. 정말 너무나 복잡하다. 실연의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 심장..이게 가능하긴 한걸까? 한 몸에서 두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생각도 할수 없어야하는 주제에, 고작 장기일뿐인 주제에 나를 일순간이지만 완벽하게 조종해냈다.
“대체 넌 바라는게 뭐길래..”
한숨쉬듯 낮게 뱉어낸 말에, 마치 이해라도 했다는것마냥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이제서야 진정한 박동이었다. 열정을 담은, 사랑을 담은 두근거림. 자신을 위할수 있는 설레임.
당황할 틈새도 없이 혼란스러웠던 날로 인한 피곤이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아플 정도로 빠르고 강렬하게 뛰던 심장 소리였다.
그날 밤, 심장 이식 수술이 끝난 후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나의 꿈이 아닌 꿈을.
꿈 속의 나는 알 수 없는 초록색의 벽에 둘러쌓여있었다. 원래의 나라면 당황할 법도 했지만, 꿈 속의 나는 나 자신이 아니었다. ‘나’는 식물로 뒤덮인, 어쩌면 식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그 괴이한 초록색 벽을 흥미롭다는듯 한 손으로 쓸며, 당연스러운 동작으로 계속 앞으로 뛰어나갔다.
미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미로 정원이었다. 보통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높아서 미로의 다른 부분은 볼수도 없도록 만들어진.
“라온!”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가 노래를 부르듯 경쾌하게 외쳤다. 그것이 내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깨닫는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여자. 여자의 목소리였다. 성인여자의, 그러나 어떻게 들으면 아직 채 고등학생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의 울림이 섞인듯한 오묘한 목소리.
“끼이”
하늘에서 난데없이 새의 울음소리가 대답했다.
“라온!”
‘나’가 다시 한번 흥얼거렸다. 라온..라온. 즐거움을 뜻하는 단어. 저 날카로운 소리를 낸 새의 이름일까?
내가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이상하게도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토시 같은 것이 맨 팔에 씌여져 있었다. 여성인지 소녀인지 알수 없는 ‘나’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건강미가 느껴질 정도로 예쁘게 타있는 얇은 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끼이”
이번엔 더욱 가까워진 소리와 함께, 라온이라 불린 새가 당당하게 그 토시 위에 착지했다. 매! 매였다. 미끄러운 몸을 당당하게 자랑이라도 하듯, 매혹한 눈을 가진 그 매가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애정이 담겨있다고 생각되었다.
“라온, 언니는 어디있어?”
내가 즐겁게 물었다. 미로에 갇혀있는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놀이라는듯, 나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매가 무섭지도 않은지 매에게 얼굴을 잔뜩 들이댄채로.
“끼이!”
매 역시 재미있다는듯, 절대 굽히지 않을것 같이 위엄있게 쳐들고 있던 고개를 숙여 내 볼에 고양이처럼 부볐다.
“언니한테 데려다줘, 라온. 티타임이 거의 다됐어!”
내가 다시 한번 듣기 좋은 소리로 크게 웃더니, 매를 하늘 위로 다시금 날려보냈다.
매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내 위에서 잠시 날갯짓을 하더니, 미로의 길을 따라 앞장서서 날았다. 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또 한번 웃으면서 뛰는건지 춤을 추는건지 알수 없는 몸짓으로 매를 따라가고 있었다.
원피스. 뛰면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파스텔톤의 연분홍 원피스였다. 무릎에 채 미치지 못하는 미니원피스의 넓은 자락들이 뛸 때마다 주변으로 흩날렸다. 끝에 무엇을 디자인 해놓은건지, 햇살을 받을때마다 끝 쪽이 기분좋을 정도로 조금씩 빛났다. 뛸 때마다 목에 걸려있는 은빛의 정교한 목걸이가 함께 튕겨올랐다.
“언니!”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반갑게 손까지 붕붕 흔들어가며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한 여자를 반겼다. 아직 멀리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자는, 하얀색 리본까지 큼지막하게 달린 원피스를 입고있는 ‘나’와는 달리 세련되게 물이 빠진 청바지와 청록색의 시원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공터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공터였다. 미로의 한가운데쯤이라고 예상되는 곳에 둥글게 위치한 아담한 이 곳엔, 가운데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있는 분수와 역시 새하얗고 구불구불한 디자인이 되어있는 벤치들이 있었다. 이 주변 모든 것은 미로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동그랗고 질서정연하게 둘러싸고 있는 초록 벽들이 진짜 미로와의 경계선이었다.
“왈!”
언니라고 불린 여자의 옆에 있던, 개보다는 늑대에 훨씬 더 가까워보이는 거대한 시베리안 허스키가 속력을 내서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꺄아, 가리온!”
나 역시 전속력으로 하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섞여있는 푸른 눈의 개에게로 뛰었다.
“왈!”
“아아, 가리온, 무거워, 무거워!”
공격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온 개는 나를 무너뜨리듯 바닥에 눕히고, 웃으면서 손으로 가려버린 얼굴 중 핥을 곳은 없나 빈 틈을 찾고 있었다. 부드러운 잔디에 누워서 한참 웃고 있는 나와 꼬리가 떨어질것마냥 흔들고 있는 그 늑대같은 개 위로 그림자가 졌다.
“가리온이 계속 너 보고싶은지 자기 혼자 뛰어가려고 하는거 있지? 다음엔 내가 라온 데려가야겠어!”
뾰로통한척, 장난기 어린 목소리. 역시 성인 여자의 목소리였고, ‘나’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높고 가늘었지만, 성숙했고, 그와 맞는 힘이 담겨있었다. 가리온이라고 불린 개에 의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헤헤, 가리온, 내가 그렇게 보고싶었어? 이제 가자, 가리온이랑 라온이한테도 간식 줄게!”
그녀들에게 이것은 놀이인것 같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미로에서 매와 개를 이용해 지정된 랑데뷰 장소인 이 정원에서 만나는 놀이.
꿈이 점점 흐려졌다. 꿈 속의 나는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이 행복을 계속 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손으로 공기를 잡을수 없듯이, 그렇게 그렇게 흘러만 갔다.
“아아악!”
내 의지로 지른 것이 아닌, 왠지 모르게 가녀린 비명.
쿵.쿵.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것은 행복이 사라진것에 대한 아쉬움과, 금방이라도 몸 밖으로 뛰쳐나올것만 같이 불규칙하게 쿵쾅대는 심장이었다.
찢어지는듯한 아픔. 천일을 넘게 사귄 그녀, 내가 그토록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그녀와 헤어진 후에 온전히 내 것인 뇌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정도의 아픔이 엄습해 왔다. 숨…숨을 쉴수가 없다! 물 아래에서 잠겨 죽어가는듯한 느낌이었다.
심장. 내 몸 안에 있음에도 내 것이 아닌 심장이 죽어가고 있었다. 순전히 그 꿈이 끝난 것에 대한 고통만으로도 죽어가고 있었다.
“흐읍…흐윽…”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잠옷을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세게 가슴께를 움켜쥐며 숨을 깊게 깊게 들이마셨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자 눈 앞이 흐려지고, 죽어간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마지막 숨으로, 분노했다. 이 빌어먹을 심장. 내 몸에 들어왔으면 내 의지대로 하란 말이야!
“씨발..넌 이제 죽었잖아! 죽었으면 죽은 값을 하란 말이야. 왜 내 몸에 들어와서 지랄이야!”
순간 괘씸하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고 가쁘게 내뱉었다. 심장의 사연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내 심장을 포기하고 남의 심장을 넣은 것은 이런 빌어먹을 상황을 겪자고 한게 아니었다. 내 인생, 내 삶을 더 잘 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니가 뭐길래!
이기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 몸에 들어왔으면 내 심장인것이다. 이 심장을 원래 가지고 있던 주인은 죽었다. 그리고 내 몸에 들어왔다. 그러면 이제 내 것인 것이다. 내 명령을 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서, 내가 약한 심장을 가지고 있을땐 할수 없었던 것을 해달란 말이다!
쿵쿵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 쿵쿵. 쿵. 쿵. 쿵.
마치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듯, 아니, 내 명령을 인식했다는듯, 발광하던 심장이 점점 잠잠해졌다. 그래, 그렇게 해. 잠자코 있으란 말이야. 넌 내 심장이니까.
뿌듯해졌다. 순간 그렇게 분노했다는게 조금은 믿기지 않았지만, 내 목숨이 달린 일이었으니 그래도 됐다고 합리화하고, 아직도 어두운 자취방 안을 둘러보았다.
세시 반. 아직 남들은 한창 잘 시각이었다. 심장은 언제 반항했냐는듯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지금 자지 않으면 알바에 늦을게 분명했으므로 조금 찝찝하더라도 자기로 했다.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나른해졌고, 일시적으로 다시 그런 종류의 꿈을 꾸면 어쩌나 겁이 났지만, 심장이 잠자코 있는것으로 봐서 그럴것 같지는 않았다.
대체 이 심장의 주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꿈을 꾸고 이렇게도 반응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 꿈은 사실일 뿐만 아니라 이 심장의 원래 주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일부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지만, 그런 신기한 공간이 한국에 존재한다는 소리는 들어본적이 없었다. 아니면, 한국이 아닌걸까?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바보야!”
핸드폰 알람이 어김없이 울렸다. 내 애인, 아니 이젠 전 애인이 되어버린 그녀가 녹음해서 남겨두었던 것이다. 뇌는 뭔가 슬프고 씁쓸해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지만, 심장은 조용하기만 할뿐 반응이 없었다.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래도 뭐..이젠 날 죽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지, 어?”
심장부근을 집게 손가락으로 꾹, 찌르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는데도, 심장은 주제에 삐진것마냥 역시나 조용했다. 어제 내가 소리를 지른것에 대한 반응일까?
하, 참. 심장이 생각도 한다고 생각하다니, 상황은 사람을 이렇게도 바꿀수 있구나.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껴 입었다. 일단 첫번째 알바인 편의점에서 일하고, 그 다음엔 피씨방 알바를 하러 가야한다. 오늘도 바쁜 하루,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심장 때문에 숨쉬기도 힘겨운 하루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겠지. 아직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심장이 내 안에서 뛴다는게 꺼림칙하긴 해도, 강한 심장이 필요했다는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삼천 오백원입니다.”
심부름을 왔는지 아이스크림과 캔커피만 잔뜩 산 앳된 꼬마아이가 나가고 나서야 교대할 시간이 되었다. 안 그래도 어젯밤 꿈 때문에 온 몸이 뻑적지근한데 그날따라 피곤한 손님들이 많이 와서 탈진 직전이었다. 피씨방 야간알바를 뛸 자신이 없었지만, 생계줄이라 어쩔수 없었다. 백수처럼 터덜터덜 다시 부모님 집에 기어들어가기엔 자존심이 너무 셌으므로.
딸랑.
외투를 껴입고 편의점을 나오며 질리도록 들은 그 종이 또 한번 딸랑거리는것을 들었다.
터벅터벅.
가기 싫어 발을 질질 끌어가며 피씨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도록 시린 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갈라놓았다. 문득 로션이라도 더 바르고 나올걸, 하고 후회했다.
“어?”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좀 더 감싸기 위해 외투를 잡아끄는데, 눈앞에 왠 늑대같은 개가 우뚝 서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하얗고 까만털을 개 주제에 멋드러지게 흩날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개 한마리. 시베리안 허스키였다.
“어라..”
“…”
꿈에 나온 그 개와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 개는 자신 역시도 내가 신기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두근.
심장이 미약하게 뛰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벗어난, 조금은 빠른 박동.
젠장! 꿈에 나온 개가 맞았다. 심장이 다시 내 조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다시 어젯밤처럼 죽을맛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심장처럼 컨트롤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건강한 삶을, 내 삶만을 살고 싶었다. 이렇게 다시 주도권을 뺏길순 없다!
그 늑대같은 녀석은 이상해진 내 심장을 느낀것인지, 개답지 않게 매우 인간다운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관찰당하는 느낌이 굉장히 재수없었다. 개새끼 주제에, 내 삶을 이렇게 앗아가려고하는거야? 그럴 자격없어. 이 심장은 이제 내꺼라고!
“꺼져!”
다른 개들을 쫓을때처럼 땅을 굴렀지만, 늑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내가 더 수상쩍다는듯, 내 심장께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마치 내 심장의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한다는듯이..
행인들이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이 늑대같은 허스키들은 도로에서 보기 힘든데, 거기에 나까지 인도 가운데에 우뚝 서서 이 늑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신기해보였을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따갑도록 느껴지는 시선. 인적이 그나마 드문 인도의 한참 저쪽에서, 밤하늘처럼 신기한 흑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꺼지라고!”
개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면 지는것이라는걸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돌아서지 못했다. 예전에 읽은 신문기사에서 허스키에게 단 한번 머리를 물렸는데도 즉사했다고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소름이 끼쳤다.
두근.두근.
저쪽에서 여자가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흑단의 머리카락 때문에 더 강조되는 하얀 피부에 시원스런 이목구비, 단호한 인상을 풍길 정도로 알맞게 치켜올라간 눈 때문에 날카롭도록 생겼고, 긴 머리에도 불구하고 예쁘다고 하기에는 좀 더 멋있게 생긴것에 가까운 여자. 아무리 쳐줘봤자 이십대 초중반쯤 되어보였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옛날 같았다면 첫눈에 반해도 남을 외모였지만, 그것이 아니란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심장의 옛날 주인이 알아보는 것이다.
늑대는 아직도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심장 부근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볼 리가 없는데..?
여자는 더욱 더 다가왔다. 사실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약하게 타고 태어난 심장을 보상하려는듯 2.0, 2.0의 시력을 가지고 있어서 뚜렷하게 보였다. 여자는 내 앞에 우뚝 서있는 개를 바라보다가, 나를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관찰하며 걸어왔다.
칙칙하던 날씨에, 구름이 조금 걷혔다. 그와 동시에 그 틈을 타고 기다렸다는듯 햇살이 파고들어왔고, 여자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일순간 반짝 빛났다.
쿵.쿵쿵.쿵쿵쿵.
두근거리다 못해 심장이 터질듯 뛰기 시작했다. 어제 꿈에서 깨어났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더 두면 그렇게 될것 같았다. 아프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인간인것마냥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하던 늑대가 순간 눈을 번쩍 떴다. 그 놈의 성대가 인간의 것이었다면 유레카!라고 외치기라도 할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놈은 나에게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 여자에게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
“가리온?”
칼바람을 타고, 당황한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무려 저만치에서부터 내 귀까지 흘러들어왔다.
그 목소리! 꿈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저 산더미만한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여자의 목소리. 꿈에 나오는것만으로도 지금쯤은 완연히 내 것이 되었어야 하는 심장을 부서질 정도로 아프게 만들었던 여자. 그 여자의 목소리!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쉴 박자도 없이 심장이 발작했다. 본능적으로 저 여자가 나에게까지 오면, 내 애인과 깨지게 만들었던 그 순간적인 조절은 영원한 조절로 바뀔 것이라는걸 눈치챘다.
내가 심장을 조절하는것이 아니라, 심장이 나를 조절하게 된다!
있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르르..왈!”
뒤에서 개의 짖음이라기보다는 늑대의 포효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녀석이 날 쫓아오고 있다는것쯤은 느낄수 있었다.
“가리온! 왜 그래?”
이어 늑대가 뛰는것처럼 죽여진 소리가 아닌, 사람의 둔탁한 뛰는 소리가 울렸다. 여자까지 따라 뛰고 있구나.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안 그래도 여자를 보고나서 찢어질듯 뛰던 심장이 지나친 전속력의 달리기로 인해 가위로 난도질 당한것마냥 너덜거렸다. 곧 터질것만 같았다.
“택시!”
끼익.
“얼른 출발해주세요!”
부우웅.
채 문을 닫기도 전에 쏜살같이 앞으로 박음질친 택시와, 의아한 눈초리의 여자, 그리고 그 발치에 우뚝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늑대같은 개새끼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로 갈까요?”
택시기사가 그제서야 물어왔다. 백미러를 통해 그는 나를 흥미롭다는듯이 훑어보았다. 하기사,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미친듯이 뛰어와 자기 택시에 탔으니 재밌기도 하겠지.
피씨방 알바하는 곳 주소를 대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 택시비면 알바 몇시간 비용이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목숨이냐, 돈이냐 선택하라 한다면 누가 돈을 망설임없이 선택할까?
쿵쿵쿵.쿵쿵.
심장은 거세게 저항하는듯 야생동물처럼 날뛰었지만, 알바장소에 도착했을때쯤엔 제풀에 지쳤는지, 떼쓰다 눈물이 말라버려 포기한 아이처럼 잠잠했다.
피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해봤자 이제 자기는 몸을 잃어버린 심장일 뿐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좀 있으라고. 내가 잘 해줄게. 어?”
쿵!
아플 정도로 한번 맥박한 심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비웃음이 비져나오면서도, 우스웠다. 이 정도라면 조절하는데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려나? 이식 수술이 끝나고나서 가끔은 씁쓸한 심정으로 내 약했던 심장을 그리워했지만, 이대로라면 역시 이 심장이 더 쓸모있는것 같았다.
그래, 역시 그렇게 돈을 주길 잘했어.
싱글벙글, 알바를 했다.
“뭐, 좋은 일 있어?”
아침께가 되어서야 교대하러 온 사장님이 수상쩍다는듯 훑어보았다.
“아아, 뭐 좋은 일은 무슨, 아무일도 없어요 사장님!”
“근데 왜 그러나?”
“그냥 컨디션이 좋은가봐요. 하하.”
“그래? 그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튼 그 학생이랑 헤어졌다고 해서 청승만 떨줄 알았더니 다행이구만 그래. 그래, 수고했어, 이제 가보라고.”
“예 사장님!”
콧노래까지 부르며 나오는 그 뒤로 사장님이 혀를 끌끌 차대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컸지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약한 심장으로 인해 남자라면 누구나 해본다는 스포츠도 해본적 없고, 하물며 달리지도 못했다. 덕분에 학교를 다닐때엔 이놈저놈에게 돈도 많이 뜯겼고, 저항이라도 해볼라치면 두들겨맞기 일쑤였다. 나는 찌질한 놈으로 낙인찍혔고, 그런 나와 사귀어준 여자는 그녀가 전부였다. 그때부터 줄곧 사귀어왔다.
왠지 웃음이 나왔다. 예전엔 그녀가 그토록 고맙고 예뻐보일수가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사실 뭐 얼굴이나 몸매나 능력이나 별거 없는 여자였다. 얼굴만 보더라도 내가 한참 더 잘할수 있다는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사랑이라기보다는 습관에 더 가깝게 사귀어온 그녀였다. 그녀도 사실 대부분은 나 자체가 좋아서, 나에게 온기를 주려고, 나를 사랑해서 사귀는게 아니라, 이 이유인걸 알고 있었다.
이제 심장도 고쳐졌으니, 새로운 인생이다. 안 그래도 잘됐다. 깨지기까지 했으니, 이젠 더 예쁜 여자도 사귀어볼 것이고, 하고 싶었던 다른 쓸데없는, 남들은 다 하는 일들도 모조리 골라서 해볼것이다. 번지 점프도 해볼까? 괜시리 심장이 예뻐보이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와 깨지게 해준것도 이 녀석인것이다.
“뭐, 임마,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바뀔수 있을지는 나도 아직 실감을 못했었는데, 넌 알았던거냐? 도움된다 은근히?”
잠잠한 심장.
“그래, 뭐 맘대로 해라. 아, 피곤하다! 가서 자야지.”
두근.
“어?”
잠깐 두근거리는 느낌에, 혹시나 그 여자나 개가 주위에 있나 경계하며 둘러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깜짝이야..왜 갑자기 뛰고 지랄이냐. 미쳤어?”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혼자 대화하는 나에게 잠시 이상한 눈길을 주다가,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그저 관심이 없었던건지 그저 그렇게 스쳐지나갔다.
집에 오자 싸늘해서 보일러를 틀었다. 난방비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인생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사, 새로운 심장까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암..졸리다. 아까 그 개새끼한테 쫓기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한것 같아, 그렇지?”
심장은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내 말을 아예 듣기로 작정한걸까? 그것에 힘입어 나는 다시 놀렸다.
“그거 니 개새끼지? 이야, 너 근데 살아있을땐 좀 많이 잘 살았나보다? 그런 개 키울 능력도 되고.”
역시 별 반응이 없다.
“아아, 졸리다. 자자, 심장아. 내일도 날 위해 충성해야지.”
킬킬대며 아직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덜덜 떨었다. 지정 온도를 맞춰놓은 보일러를 믿고 점점 체온으로 이불을 데워가며 꼼지락거리다가, 서서히 따뜻해지자 기다렸다는듯 잠이 밀려왔다.
“아악! 언니! 거기다가 그걸 넣으면 어떡해!”
벽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져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빛의 호수가 내다보이는, 집이라기엔 너무 잘 꾸며져 카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장일수밖에 없어보이는 곳. 바(Bar)처럼 보이는 벽의 한쪽에서 허리까지 굴곡치며 내려오는 긴 갈색머리를 가진 여자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내 위치에서는 그녀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목소리, 그 목소리다. 지난번 꿈에서 ‘나’였던 그 목소리. 연륜과 어리광이 섞여 나이를 짐작할수 없는 울림이 있는 그 목소리. 이번 꿈은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에서 관찰할수 있구나.
“어? 왜, 그거 넣으면 더 센스있잖아.”
그리고, 길거리에서 봤던 그 여자가 의아하다는듯 갈색머리의 여자를 보며 말한다. 코가 굉장히 오똑하고 눈매가 날카롭지만, 입은 웃는듯 자연스럽게 살짝 위로 올라가있는데다, 갈색머리 여자를 보는 눈길 하나는 따스한 여자. 갈색머리 여자의 목소리보다 더 높지만 성숙한 목소리를 가진 검은 머리의여자. 내 새 심장의 주인이 그렇게 소중해하는 언니라는 여자.
“알콜이잖아! 아악!”
검은머리의 여자가 갈색머리의 여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니, 그럼 바인데 알콜이 있지 뭐가 있어?”
“잔이 바꼈잖아! 이건 내꺼고, 저건 언니꺼란 말이야! 나 알콜섭취 못하는데! 안돼, 내 알콜없는 White Russian! (작가: 술이 들어가지 않은 White Russian은 클래식하게는 크림과 커피 등으로만 이루어져있음) 안돼에!”
갈색머리의 여자는 검은머리의 여자를 굉장히 편하게 생각하는듯, 마음껏 어리광을 부렸다. 검은머리의 여자는 그것을 아는듯 그저 웃었다.
“그럼 그거 줘, 내가 마시고 딴거 또 만들어줄게.”
“오오, 진짜진짜? 언니 최고! 그럼 나 저거랑 저거 섞어서 분홍색으로 만들어줘!”
“아, 그래그래.”
꺅꺅거리며 폴짝거리는 갈색머리의 여자. 손까지 번쩍 들어 좋아하면서 뒤를 돌아 검은머리의 여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그 여자의 얼굴을 본다.
내 심장의 주인을.
하도 둘이 우애가 있어보여서 친자매라고 생각했는데, 검은머리 여자와 알수 없게 분위기가 비슷하긴 해도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여자. 검은머리 여자가 차갑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고 하면 이 여자는 왠지 아메바들마저 귀엽다며 안아줄것 같은 재밌는 느낌이었다.
동글동글해서는 땡글하게 뜬 눈에 한없이 높아보이는 코를 가진 검은머리 여자와는 달리 적당히 올라온 코는 끝이 자신의 눈처럼, 검은머리 여자의 코보다 조금 더 동글거리는데다, 굳게 다문 검은머리 여자의 입과는 달리 한없이 헤-하고 벌린듯한 굉장히 조그만 입술. 한없이 굽이치는 웨이브 머리까지 겹쳐져서 이 갈색머리의 여자는 뭔가 굉장히 통통 튀어보였다. 이십대 초반쯤 정도밖에 되어보이지 않았다. ‘그 날’의 한참 전인가?
“아아, 그리구 그리구! 하트모양 얼음도! 큐브는 센스없어!”
갈색머리 여자는 내가 보이지 않는지 그저 이리저리 정신사납게 뛰어다니며 좋아하고 있다.
“당연하지!”
검은머리의 여자가 맞장구친다. 굉장히 행복해보인다, 둘은. 저번에 꿨던 꿈과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훼방해서는 안될것같은 굉장한 행복감이다.
쿵.쿵.
심장이 반응하고, 뛴다. 아려하고 있다, 이 기억에. 그러자 괜히 이 장면이 싫어졌다. 이 기억이 싫다. 내 인생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이 기억이. 이 여자들의 행복이. 내가 약한 심장으로 고생했던 시간과는 정반대로 서로 따스하게 웃어주는 이 여자들의 행복을 유리처럼 산산조각 내고 싶다.
쿵쿵쿵쿵쿵. 쿵쿵쿵..
욱신욱신거리는게 심상찮다. 두 여자들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끊임없이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점점 흐려지고, 내 심장박동수가 이 카페인지 별장인지를 가득 메우는 유일한 소리가 될 정도로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갈색머리의 여자가 둘로 나뉜다. 원래 검은머리 여자와 대화하던 여자는 그대로 있고, 또다른 분신이 튀어나와 나를 돌아본다.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심장의 주인이 자신의 심장을 빼앗아간 나를 찾는다.
뚝.
꿈이 정지된다. 꿈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눈 앞의 장면이 지지직거릴듯 멈춰버린다. 누군가가 영화를 상영하다 중지버튼을 누른것처럼.
그리고 갈색머리의 여자가 그 귀염성있게 동글거리던 눈을 독사처럼 가늘게 뜨며 나를 향해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움찔해버렸다. 항상 내 꿈을 통해 보여지는 그녀의 꿈 안에서 그녀는 더할나위 없이 여리고 행복해보이기만 했기 때문에 그녀는 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살기가 몰아친다. 한없이 따뜻한 이미지만 가능할거라 생각해서인지, 자꾸만 뒷걸음을 치고 싶어진다.
“너.”
그녀가 나를 차갑게 부른다. 어린아이같던 울림은 어느샌가 사라져버리고, 카페 밖의 호수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다.
“왜..왜?”
나도 모르게 바보같이 말을 더듬어버렸다. 내가 싸움을 못한다고 해서 나를 괴롭히던 그 녀석들에게 더듬었듯, 그렇게 더듬어버렸다. 병신같이. 이런 아픈 기억을 불러오게 하는 그녀가 싫다!
“왜 오늘 도망쳤어? 언니를 만날수 있었는데!”
그녀가 절규한다. 공격하기 직전의 고양이처럼 자기도 모르게 송곳니를 드러낼듯 말듯 입술을 말아올리는 그녀의 목에서 낮은 울림이 공기를 타고 증폭되어 들린다.
“가리온은 분명히 날 알아봤어. 너도 알고 있지? 언니와, 언니와 말할수 있었는데, 넌 어째서..그 여자와 깨지게 해서 그런거야?”
“뭐?”
“뭐야, 벌써 그 여자를 잊었어? 내가 주도권을 잠깐 잡고 깨지게 했던 그 여자 말이야. 그 여자 일 때문에 분해서 이러는거냐고. 너, 웃기다? 그 여자한테 관심이라곤 없었으면서, 습관 때문에 그 여자 붙잡는거, 다 느꼈어. 그 여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할거야? 아니잖아. 그래서 그 사람 위해서 보내준건데, 너 그 여자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래? 그 복수야?”
“아니야.”
여자의 말에 피식 웃었다. 재밌는 발상이었다.
“뭐? 그럼?”
“뭐 사실 걔랑 깨지게 해준건 오히려 내쪽에서 감사하는바야. 내가 학창시절엔 심장이 약해서 싸움도 뭣도 못하고 되게 찌질하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걘 연민인지 뭔지 나랑 놀아주더라고. 그래서 사겨줬지. 솔직히 걔 얼굴에 나 정도면 싸움 좀 못해도 땡 잡은거 아니야?”
여자가 기가 막힌지 허, 하고 허탈하게 조소를 흘려낸다.
“야, 너 진짜 쓰레기다?”
“뭐? 말 조심해라.”
“맞잖아. 너 내 심장 가져가려고 나 죽인거 누가 모를줄 알았어? 니가 강제로 남의 심장 때문에 사람을 죽이니까 내가 이렇게 주도권을 잠깐씩이라도 잡을수 있었던거야, 몰라? 넌 심장이식 수술 합법적으로 받고 이런 일 있는 사람들 본적이나 있어? 없잖아.”
그녀의 말이 맞다. 약한 심장이, 이렇게 비굴하게 강육약식의 세계에서 쩔쩔매야 하는 내가 질려서, 그래서 대학을 위해 모아뒀던 학비를 털어 심장을 위해 거금을 지불했고, 돌팔이 의사와 더러운 복장을 한 간호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불법적인 이식수술을 한것이다.
희생자가 누구인지 얼핏 알고 있기는 했다. 그녀의 시체를 본적도 없고, 그녀가 살아있을때의 모습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녀의 지갑에서 빼온 신분증을 봤었던 의사와 간호사가 대화하는것을 엿들어 알고 있었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기 일보직전의 여자. 내가 예상했던대로 납치당해 심장을 빼앗겼다. 입고 있던 옷으로 봐서 굉장히 잘사는것 같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뭔가 더 속닥거렸지만, 문에서 멀어져 잘 들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더러운 병실문에 귀를 대면서 듣기엔 별 관심도 없었다. 이제 내 심장인데 뭘 과거에 집착해야 하나.
“그래, 너 죽인건 미안하다. 근데 니가 뭘 알아? 너같이 강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몰라,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야했는지!”
여자가 이젠 아예 고개까지 젖히고 웃기 시작했다.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할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여자가 이미 나 때문에 죽지만 않았다면, 내가 가서 손수 목이라도 졸라버리고 싶었다. 내 인생을 알고도 저렇게 웃을수 있어? 남의 인생을!
“하..야. 너 잘 들어. 사람 죽이고 미안하다고 하기만 하면 다야? 나참, 사람 죽여가면서까지 심장을 구할 정도면 그럴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왠만하면 공존하려고 크게 맘 썼는데, 너 진짜 인간성이 안됐다? 너 자꾸 니 인생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그럼 내 인생은? 너 때문에 준비도 없이 마감된 내 인생은 어쩔래?”
뭐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여자가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그리고, 그래, 너 인생 참 불쌍했겠다, 응? 근데 그게 다 변명거리고, 핑계거리일 뿐이지, 그게 어떻게 타당한 이유가 될수있어? 니 인생이 힘들면 그거 그렇게 동정 얻어서, 남 죽이고 싶어? 니가 너 어렸을때 또래 애들한테 맞고 컸다고 징징짜면 내가 그래, 그렇구나, 참 불쌍해, 그래 나 참 잘 죽였네 다 이해해, 이렇게 말해주기라도 할줄 알았어? 지금 니 주위를 봐. 언니를 보라구. 나 정말 행복했어. 근데 니가 뭔데 그걸 망치고도 이렇게 당당해?”
“그래, 그러니까 넌 왜 이렇게 행복하냐고! 넌 나같은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다고!”
아직도 정지모션으로 홀로 서있는 검은머리의 여자를 돌아다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활짝 웃고있었다. 더없이 행복하다는, 나를 더없이 역겹게 하는 그 표정으로.
“왜 너만 저렇게 행복해야하는데? 연민? 동정? 그래, 뭐 맘대로 해. 여자친구도 천일 넘게 그런 감정으로 붙잡아두고 사겼는데 내가 지금 니 이말에 흔들리기라도 할것 같아? 난 내가 행복하길 원해. 솔직히 내가 까놓고 말해볼까? 너 죽은거, 난 별로 관심없었어, 처음부터. 본적도 없고 볼일도 없는 사람이니까. 알아? 그리고 너, 왜 지금에 와서도 날 괴롭히는거야? 이젠 내 심장이야. 내 인생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좀 꺼져.”
여자도 검은머리 여자를 돌아다보았다. 나에게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며 곧 침이라도 뱉을 태세로 쏘아붙였던 그 모습은 어디가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언니를 두고, 내가 어딜 가.”
“보니까 친언니도 아닌것 같던데, 뭐 어때?”
여자가 나를 제법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나도 모르게 움찔해버렸다.
“가족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는 연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그게 다 뭐야? 정이잖아. 태어나자마자 가족이니까 죽도록 사랑해야된다고 느끼는 사람 있어? 없잖아. 다 서로 항상 옆에 있어준다는 마음에서, 그 안정감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거잖아. 친구라는건 자기가 만드는 가족이야. 아플때 감싸주고, 기쁠때 같이 웃을수 있고, 행복을 만들어주는거라고. 내게 언니는 가족이야. 조금 늦게 만났지만, 그래도 가족 못지않게 사랑했어. 너 이 카페 이름이 뭔지 알아? 씨밀레야. 씨밀레.”
“아, 그리고 말이야.”
여자가 덧붙였다.
“너 자꾸 심장이 아파서 뭘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찌질하게 살아서 힘들었다하고 푸념하는데, 너, 니 일만 관심있어서 내 심장만 쏙 빼가고 폐는 안봤나 보구나? 나, 후천적이긴 하지만 거의 선천적이라고 해도 될만큼 어렸을때부터 폐가 안 좋았어. 니 약한 심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한만큼이 아니었다고. 나도 몇분 뛰어본적도 없고, 너처럼 가끔 숨쉬기 힘든때도 있었어. 그래도 너처럼 질질 짜고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어.”
“넌 부잣집이잖아? 죽을때 꼴 보아하니 꽤나 잘사는 집 같다던데, 30대 초반이면 스스로 번 돈도 별로 없을거고, 부잣집 딸내미겠지. 우리집은 잘 살지도 못했어, 난 심장이식 받기 위해서 대학도 무한정 미루기만 했다고! 부잣집 딸이니까 넌 니가 원하는거 다 가졌을거 아니야. 그 짧은 인생이긴 했어도 나보다 더 많은걸 가졌을거 아니야!”
분했다. 내 눈앞에 있는 여자가 내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다는게. 내 심장이 약해서 인생을 잘 살지 못했다고 말하는게 그렇게 얄미울수 없었다.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 눈초리가, 너무나 역겨웠다.
“부잣집 딸? 그런건 또 어디서 들었어. 내가 니 몸 속에 심장으로 들어가있으면서 다 봤는데 말이야, 너네 집, 우리집보다 더 잘 살았거든? 돈 번거, 다 내 힘으로 한거야. 이 카페 말이야, 언니랑 내가 20대때부터 번 돈으로 지은거라구.”
할말이 없었다. 이 여자가 점점 싫어졌다. 그래, 너 잘났다! 난 그래, 아무것도 못하고 동정만 먹어오면서 남 죽이기나 한 놈이다, 그래서 어쩔거냐? 하고 외치기라도 하고 싶었다. 마음과는 달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한채 그녀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뭐, 그렇게 잘난 몸이시면 뭐해. 어차피 이제 죽었는데, 그치? 니가 일순간 일순간 조절할수 있다고 해도 그건 다 순간들일 뿐이야. 결국 이 심장은 내가 조종하는 거라고. 이 심장의 주인은 이제, 나야. 아, 어쩜 좋냐. 그렇게 소중한 언니를 이젠 다시 못 보겠는데?”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잔뜩 타오르던 그녀의 눈이 죽었다. 깊이,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포기했다는 눈빛이다. 내가 승리했다고, 그렇다고 웃어야하는데, 맘처럼 되지 않았다. 뭔가 찝찝했다.
“난 단지, 언니와는 가까이서, 언니 자주 볼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한것 뿐인데, 내 심장 가져갔다는 원망따위 하지 않고, 그렇게 정중히 부탁하려고 하기만 했는데, 같이 서로 도우면서 살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넌 어째서..언니와 나를..”
여자의 눈빛이 탁해지고, 그녀의 조절이 풀림과 동시에 꿈의 멈춰있던 배경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아까 남아있던 둘 중의 하나인 갈색머리 여자와, 검은머리 여자가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지 계속 대화를 나눈다.
“아, 근데 아무리 봐도봐도 이 카페 너무 이뻐! 역시 우리가 대학 들어가기 전부터 다 디자인해놓은 보람이 있었다니깐?”
검은머리 여자가 와인잔에 담긴 투명한 액체를 휘휘 잔 안에서 돌려가며 호수를 내다본다. 갈색머리 여자는 상반되게, 잔뜩 꼬이고 꼬여 어떻게 액체가 통할지 궁금하기까지 한 분홍색의 거대한 빨대를 역시나 분홍색인 액체에 꽂아넣고 맛있다는듯 쪽쪽 빨아대고 있었지만, 역시나 눈은 같은 곳을 향했다.
“맞아, 우리 그땐 이거 지을수 있는 돈 벌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그리고 이름도 진짜 맘에 들어.”
“내 말이! 씨밀레. 완전 죽여줘!”
“카페 이름처럼 계속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우리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이렇게 지내는것처럼만 행복하게, 계속 이렇게만 지낼수 있으면 좋겠다.”
“우우, 언니 오늘 영화찍어? 헤헤, 분위기 엄청 잡네!”
“아, 그냥 뭐.”
“아 언니두 참! 걱정마. 우리가 서로 두고 어딜 가겠어? 씨밀레 뜻이 뭔데! 계속 같은 모양으로 이어서, 영원히 변함없는 우정으로.”
“맞아, 우린 텔레파시도 통하니까. 우린 서로 끌어당기잖아.”
“응, 우린 처음 만날때부터 이렇게 자매가 될줄 알고 있었으니까.”
둘의 어쩌면 젖어있을지도 모르는 목소리에서 둘 모두 서로에게 느끼는 애정과 사랑을 전부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한다는걸 알수 있었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보고있자면 소름끼치도록 비슷했다. 콕 찝어낼순 없었지만, 그 둘의 대화는 왠지 서로의 문장까지 끝내주는것 같았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텔레파시가 자연스럽게 통하기라도 하는것처럼.
“우리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변함없을거야.”
“우리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항상 변함없을거야.”
둘이 동시에 말한다. 그리곤 서로를 보며 재미있다는듯이 웃는다.
“우와, 또야!”
“그러게.”
탄성을 내지르는 갈색머리의 여자를 보며 검은머리의 여자가 미소짓는다. 둘은 다시 각자의 잔에 담긴것을 마시며 호수를 내다본다.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흐른다. 편안한 잔잔함, 가장 서로를 아끼는 이들의 관계에서만 나올수 있는 그 순간.
그리고, 그것을 배시시 웃으며 깨는 갈색머리 여자의 애교가 섞였다면 섞였다고도 할수있는 어린아이같은 말.
“근데, 언니꺼도 맛있어보인다, 나도 쪼끔만 줘!”
“그럼 나도 한 모금!”
일상이라는듯 다시 행복하게 웃는, 절대 진지할수 없지만, 그래서 좋은 그녀들.
“재수없어.”
저절로 그 한마디가 튀어나갔다. 무의식 중에서지만, 그 둘의 모습이 거북스러웠다. 나는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왜 저 둘은 저렇게 서로의 곁을 지키는게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것마냥 평안스러운 모습으로 당연하게 있는거지?
불공평하다. 저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운명이든간에, 결과적으론 둘은 행복했다. 지금 이어지는 행복이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짜증이 확 치밀었다.
“죽었으면 그만해. 저 언니인지 나부랭인지따위 나랑 관심없어. 내가 잔인해보여? 아니면 내가 불쌍해보여? 관심없어, 니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다시 저 여자랑 만나게 해줄것같아? 웃기지마. 이건 이제 내 심장이야. 어떻게 얻었든 내 심장이라고! 넌 니가 행복할만큼 행복했으니까 이제 나한테 양보해.”
“내 심장을 주고도, 내가 너한테 해되는짓을 언제 한적이라도 있어? 언니만 만나게 해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게 가장 안돼.”
“어째서!”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너무 많아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다 멈추었다. 이 여자에게 내 비참함을 더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이젠.
“그냥, 내 맘이니까. 내가 너한테서 심장을 뺏는것보다는 저 여자를 통해서 널 괴롭히는게 더 빨라보이니까. 저번에 저 여자보니까 아주 심장 터질듯이 괴로워하더라? 조심해야지, 그러면 안돼. 이젠 니 몸에서 남은 부분은 심장밖에 없는데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쓰나. 안그래? 심장 빼내고 남은 니 몸은 분명 어디 쓰레기더미에 조각내서 버렸을텐데.”
웃자, 그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내 꿈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지진이 일어난 곳의 땅 위에 서있는 집들의 벽마냥 시나브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후회할거야, 너. 내게 한건 봐줄수 있어도, 지금 날 그리워하고, 어디갔을지 불안해하고 있을 언니에게 비수를 꽂은것.”
“큭큭, 뭐 맘대로 해봐. 니가 아무리 발악해도 장기적으론 내 심장이야. 이미 뒈진 니가 어디까지 할수 있나 보자고.”
바야흐로 이젠 이미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잘하게, 미세한 부분까지 다 깨어져버린 꿈의 조각들, 그리고.
쨍그랑!
깨졌다. 그와 함께 나는 더 이상 꿈이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달콤하지 않도록, 찝찝하고 씁쓸한 잠에 실렸다.
‘네가 그렇게도 소중해하는 네 목숨, 앗아가줄게.’
울리는 심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린 말이 있었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그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난 항상 혼자였는데, 사람들의 바다 속에서도 외로웠는데, 왜 너희 둘만 그렇게 행복해보여, 나도 행복하고 싶은데..’
띠띠띠, 띠띠띠!
이젠 바꿔버린 알람소리에 번쩍 눈이 뜨인다. 잠이 많아 항상 부시시한데, 이상하다. 왜 이러지?
‘준비됐어?’
귀가 아니라 영혼으로 듣는 심장의 울림.
“뭐?”
답한다. 드디어 내가 미쳐간다는 생각을 하며. 심장에게 목소리라니, 원체 당치도 않은 말씀을. 꿈이라면 또 모를까..
‘뭐,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때 넌 내 목숨을 가져갔으니, 물어보나 마나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검은머리 여자를 봤을때의 찢어질듯한 아픔의 두근거림이 아니다. 처음 내 여자친구가 내게 이용당하다시피 만나는것을 느끼곤 나와 헤어지게 만들었던 바로 그때, 처음으로 나를 조종해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어냈던 바로 그때의 두근거림.
의지. 심장만의 의지였다. 바램. 나와는 다른 바램.
쿵.쿵.쿵쿵쿵.
“뭐하는거야!”
‘잘가. 네가 그렇게 남들을 죽여가면서까지 유지하고 싶었던 네 목숨, 잘가.’
뭐야, 심장이 정말 내게 말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처음으로 느꼈다. 뭔가 사람의 온도보다 조금 더 차가운 것이 내 심장께로 들어오는것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사람의 손만한 크기였다.
그제서야 실감했다. 내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심장을 가져가서 그녀의 영혼이 잠들지 못한 자신의 심장을 따라, 자신의 사랑을 담은 자신의 심장을 따라 나에게로 왔다는것을.
심장은 스스로 멈추거나 다시 재활할수 있는 힘을 가진 근육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저절로 뛰어야만 하는 심장인것이다. 그런 심장을, 그녀가 조종하고 있다. 영혼의 손을 뻗어서.
“뭐하는거야! 그 손 빼!”
쿵쿵쿵쿵쿵. 쿵쿵쿵. 쿵.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점점 잠잠해져간다. 그녀가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는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박동하지 못하도록. 혈액을 뿜어내는 심장이 움직임을 멈추자 점점 사지에 감각이 없어져가고, 왠지 푸르르게 변하는게 보일 지경이다.
“멈춰!”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영혼이 보인다. 분명히 죽었을땐 30대 중반 직전이었음에도 20대 초반으로밖엔 보이지 않게 만드는 동글한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들.
울어? 왜 울어. 니가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을 죽이는데, 나처럼 웃어.
‘미안해. 니가 싫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내야하는건 어쩌면 미안해. 하지만, 난 언니와의 약속을 지켜야해, 난 언니 곁에 있기로 했으니까. 나중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이렇게 슬프게 크진 말아줘, 어떻게 태어나게 되더라도 널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거야, 언니와 나처럼, 그렇게 서로를 위해 살수 있는 사람이 네게도 나타날거야.’
여자가 정말 미안한듯 말한다. 정말 미안할까? 왠지 욱신거린다. 그러나 그녀의 심장에 의해 아픈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아프다. 그녀의 심장을 뽑아내고 나면 어차피 텅 비어있을 자리가, 왠지 벌써부터 허전하고, 아프다.
이젠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하얘지고 있는 손을 간신히 뻗어 119를 누른다. 다이얼이 잠깐 가는 순간에도, 그 짧은 순간동안에도 내가 보고있는 손은 이미 색깔이 다시 한번 바뀌고 있다.
사자(死者), 죽은 자의 색으로.
“네, 119입니다.”
“여..여기는..”
그리고 놓쳐버렸다. 무슨 말을 더 하고 기절했던건지, 119가 와주긴 할지, 의문인 상황에서도 의식은 사라지고, 언젠가 시골에서 봤던 밤하늘보다도 더 암흑색이 짙은 배경에서, 울면서도 자신의 심장을 멈추고 있는 여자만이 보인다.
그제서야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정이네 연민이네 사랑이네 뭐네 하면서도 내게 그 누구도 보여준적 없던 눈물을, 진심어린 눈물을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되게 굴었던 여자가 흘려줌으로 그제서야 느낀다.
‘이번 생에서는 우리가 이런 연으로 만나서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서로 나쁜 말도 나쁜 짓도 많이 했고, 하고 있지만.. 너, 원래는 나쁜 사람 아니었을거란거 알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딨어, 환경에 의해 바뀌어가고, 그러는거지. 우리 조금만 더 일찍 만날걸, 싶지. 꼭 다음엔, 다음 생에는 너만의 씨밀레를 만나길 바래.’
자길 죽인 내가 죽는데 뭐가 그리 슬픈지 넋놓아 흐느끼는 여자. 온통 따스한 커피 다갈색 느낌의 여자. 왠지 안타깝다. 안쓰럽다. 뭔가 그 여자에게 해줘야 할 말이 있는데, 죽어가고 있는 몸인지라 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답답해, 답답해! 어서 말해줘야하는데, 시간이 없는데. 그 중요한 말이 뭘까?
‘잘가, 잘가. 나중엔 꼭 웃어.’
아! 생각났다. 힘겹게 지금쯤은 보라색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입술을 떼어 말해주었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 내가 한 모든것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나를 미워하지 못하는 이 여자를 위해 해주어야 할 말을.
“미안해, 고마워, 행복해.”
‘너도, 너도 행복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잡고있는 자신의 심장, 내 몸속에 들어와있는 차가운 그녀의 영혼의 손. 그 순간만큼은 모든 생물학과 영혼학에 반대되게도, 그녀의 손이 따뜻하다고 여겼다.
유일하게 따스함을 느꼈다.
‘아..’
추욱, 하고 남자의 몸이 늘어지고 곧이어 중요한 수십초가 흐른 후에야 앰뷸런스가 도착한다.
그들이 도착했을때 이미 그는 어떤 조치를 취해도 다시 살아나지 않는 위치, 그러나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서둘러 옮기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그 집에서 함께 나온것은 그 남자 하나만이 아니라는것을.
병원에 도착한 갈색머리의 여자는 남자의 얼굴 위로 하얀천이 덮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무너지듯 운다. 자기 자신도 왜 이 사람을 위해 우는 것인지 모른다. 불쌍해서, 그래서 우는것만은 아니다. 이해해서, 그래서 우는 것이다. 그가 자신들에게 품었던 증오를, 외로움을 이해하기 때문에.
“아씨..이제 언니한테 어떻게 돌아가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터덜터덜 병원의 미치도록 하얀 복도를 서성거리는 여자. 그 여자에게 고등학생쯤으로 되어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다가간다. 그녀를 볼수 있는것으로 보아하니 그 학생 역시 살아있는 자는 아닌것임에 분명하다.
“저기요.”
“아..네?”
“나 언니 누군지 알아요.”
“네?”
“언니 여기 환자들이랑 영혼들 사이에서 되게 유명해요. 그 까만머리 언니가 언니 찾는다고 언니 사진 들고 계속 돌아다녔거든요. 하도 간절해보여서 난 언니 하나도 모르지만 언니가 살아있길 바랬는데, 안됐네요.”
“아……언니.”
없어진 자신을 찾으러 온 곳을 돌아다녔을 언니를 생각하니 이젠 정말이지 주저앉고 싶어지는 그녀였다. 이젠 자신의 심장이 깃들 몸도 없는데, 어떻게 돌아가야하나 막막했다.
“저기요..언니.”
“네에.”
그녀가 힘없이 대답하자, 여자아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지금 언니가 찾는 그 까만머리 언니요, 그 언니 로비에서 또 언니 찾고 있는데..”
“네?”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든다. 언니가 여기 있다? 그런데 언니를 보지도 못한다니..
“언니….이제 어떡해. 흐흑..”
이제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구슬피 우는 그녀를 여자아이가 입술을 깨물고 바라본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눈초리다.
“언니..제가 도와드릴게요.”
“어..훌쩍..어떻게요?”
“저 자살했어요. 죽은지 아직 몇시간 안됐거든요? 아직 몸이 꽤 쓸만할거예요. 혹시 그거 어떻게 쓸모 있으면, 쓰시라구요..난 삶에 미련 없으니까. 나, 죽은지 몇시간 안됐어도 언니 얘기 다 알고 있는거 보면, 언니는 좋겠어요. 언니를 그렇게 그리워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여자아이를 보며 혼란스러워한다.
“아 언니! 저 맘 바뀌기 전에 빨리 안 가면 취소합니다? 영안실에 있는것도 한계가 있단 말이예요! 빨리 가요!”
여자아이가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자신의 성격대로 털털하게 그녀를 떠민다.
“어어? 고..고마워! 진짜 고마워! 너도 행복해!”
제대로 감사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언니가 혹시나 그 새 병원을 나가버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달음박질을 친다.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다시 심장을 옮길 셈인것이다.
뒤에 남은 여자아이는 한숨을 푹 쉰다.
“진짜 좋겠다, 언니는. 에이씨, 난 이제 이게 뭐냐! 젊은 나이에 자살했으니 또 환생해야되네. 아이씨, 이럴줄 알았으면 자살 안하는건데! 아! 다시 공부해야돼!”
자살한 영혼답지 않게 밝은 모습으로 절규하는 그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또다른 영혼이 있다. 그녀 못지 않게 외로웠던, 자기 대신에 갈색머리의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해준 고마운 그 여자아이를.
쿵.쿵.
얼마 후, 영안실에서는 온갖 소동이 일어난다. 그것도 그런것이, 방금 들어온 남자 시체에서는 심장이 없어져있고, 몇시간 전 자살건으로 수면제를 먹고 고이고이 죽은줄만 알았던 여자 시체가 가슴에 피칠갑을 한채 벌떡 일어났으니.
확실히 별로 고운 장면은 아니었다. 그것을 보고 기절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 여자시체는 신경쓸바 아니라는듯 힘차게 영안실을 뛰쳐나와 로비로 달렸다.
“정말 이렇게 생긴 여자 안 들어왔어요? 갈색 웨이브진 머리에 키 작고, 눈 땡그란 애 못 봤냐구요! 아나 진짜!”
멀리서 봐도 온갖 횡포란 횡포는 다 부리면서 난동을 피우는 자신의 언니를 보고 그녀는 피식 웃는다.
“으휴..하여간 언니도.”
검은머리 여자를 향해 뛰어가는 그 ‘시체’ 뒤로 인턴들이며 의사 등 간이 큰 사람들이 그녀를 잡으러 함께 뛰어오고 있다. 기적이야! 잡아! 저대로 두면 다시 쓰러져 죽을지도 몰라! 심장이 없어졌어! 등을 외치며.
“어머, 저게 뭐야! 피 아냐, 왠일이래! 쟤 방금 자살건으로 들어온 애 아니었어?”
가슴께에서 아직도 누구것인지 알수도 없는 피를 뚝뚝 떨구며 미친듯이 달리는, 원래는 갈색머리 여자인 그녀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경악한다. 개중에는 역시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 병원에서 피를 많이 봐서 익숙해질법도 하건만, 이미 죽은 두 사람을 데리고 살아있는 심장을 만들어내려니 영적인 부스트가 필요해서 병원에 냉장되어있는 수술용 헌혈피를 냅다 들이부은 그녀의 모습엔 누구나 기겁할만 했다.
사람들의 소동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까만머리의 여자 역시 피를 뒤집어쓰고 흉측한 몰골로 뛰어오고 있는 그녀의 방향을 본다.
“언니!”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녀. 그리고 놀랍게도.
까만머리의 여자가 몇초동안 벙찐듯 서있다가, 무엇을 깨달은듯 흠칫 놀란다. 그리고는 눈물을 잔뜩 쏟아내며, 더 이상 자신의 동생의 모습과는 닮지 않은, 어린 고등학생의 모습을 한 자신의 동생에게로 역시나 마주 달려간다.
“왜 이제야 와!”
모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알아볼수 있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영혼의 울림, 역시나 영혼의 이음새, 운명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다.
“아씨, 언니, 쟤들이 따라와, 튀어!”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까만머리 여자의 손을 낚아채고 병원직원들의 외침을 뒤로 한채 병원 밖으로 무작정 뛰어가는 그녀. 절대 진지할수 없는 그녀들은 그 상황에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또 웃고있다.
“시체도 못잡냐!”
“맞아맞아!”
다시 만나서 행복하기만 한 그들. 씨밀레, 계속 같은 모양으로 이어서, 영원히 변함없는 우정으로.
- 몇십년 후 -
강산이 바뀌어도 두번은 변하고도 남았을 스물한살 평생 동안 겪어왔던 고통은 그렇게도 간단하게 바뀌어버렸다.
외로움, 이것이야말로 몸의 어떤 장애와는 달리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던 증상.
“꺄악! 아나, 이건 또 뭐야!”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소동. 자살하려고 했던건지, 옥상 맨 가장자리에 위태로운 자세로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던 여자와, 그녀가 정말 죽을까봐 무서웠던건지 반사적으로 그녀를 향해 돌진, 온 몸으로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아버린 남자 하나.
“아코..허리야.”
“아 쫌 죽을라 하니깐!”
“아 이게 구해주니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당당하게 버럭 고함치는 그녀가 어이없어서 남자는 허, 하고 기가 차다는듯 실소를 흘려낸다.
“야! 누가 구해달래?”
“누군 구해주고 싶어서 구해줬대?”
“아나 그럼 왜 구해줬는데!”
“아..그거야..”
남자가 말을 흐린다. 사실 왜 자기가 그녀를 구했는지 정작 본인도 모르는 그였다. 평소 잔인하기로 소문난 그라면 혹여나 구해줬었더라도 관심없이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친채, 다시 죽으러 올라가든말든 내려가버렸을 그였다. 그런데, 왠지 이 여자는 달랐다.
“뭐야, 어벙한게.”
재밌다는 듯 아직도 바닥에 자빠져있는 그의 옆으로 그녀가 옷을 툭툭 털며 주저앉는다. 세상에서 차갑다, 잔인하다, 그래도 머리 하나 좋은건 알아줘야한다, 생긴 건 멀쩡해서 성격은 왜 저러느냐, 등등 별의별 말을 다 듣고 살아본 그였지만 어벙하다는 종류의 말은 또 처음이었다.
“야! 내가 왜 어벙하냐?”
정말이지 그녀의 말에 벙쪄서 어버버거리고 있는 그의 눈을 그녀가 빤히 쳐다본다. 누가 자살시도를 했고, 누가 구해줬는지 모를 정도로 그녀는 오히려 그보다 슬픈 빛이 덜하다.
“야, 그만 거기 자빠져있고 일로 앉아봐.”
여자가 털털한 말투로, 자신의 옆 자리를 툭툭 친다. 남자가 어이없다는듯 여자를 바라보지만, 곧 포기했다는듯 고개를 내저으며 함께 주저앉는다.
잠깐 침묵이 흐르지만, 처음 만난 사이답지 않게 그 침묵이 어색한것은 아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라도 된것처럼. 마치 이래야하는 운명이었던것처럼.
남자는 속으로 조금 조마조마하다. 여자가 이 상황에서 진지히 너, 왜 나 구해줬어? 따위의 말을 하면 사교성없이 퉁명스러운 자신이 뭐라고 멍청한 말을 뱉을지 몰랐기 때문에, 나름대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자신은 처음에 누군가 죽으려고 하니까 구해줬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이 여자는 느낌이 틀렸다.
그렇게 한참 긴장하고 있는데, 여자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와, 오늘 별 많다. 이쁘네!”
남자가 재밌다는듯 여자를 힐끔 쳐다본다.
“야, 넌 방금 자살시도한게 그런 소리가 나오냐?”
“어, 나오는데? 아, 나 이제 가서 레포트 써야돼. 아악! 어떻게 해! 데드라인 임박이다!”
머리를 싸매고 굉장히 코믹하게 몸부림치는 그녀를 남자가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아니 뭐 이런, 방금까지만 해도 죽겠다고 옥상에 올라온 여자가 레포트 마감기한 때문에 고민해? 별별 웃긴 여자를 다 본다고 그는 생각하면서도,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뭐..너 이제 안 죽을거지? 나 간다.”
가고싶은 맘은 없지만, 남자는 왠지 자기도 모르게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빈말을 꺼낸다. 처음 있는 일이다, 가까운 친구 하나 변변치 않은 그에게 있어서.
“야, 가긴 어딜가? 날 구해준것도 운명이야 임마.”
“그게 무슨 운명이냐? 그냥 바람 좀 쐬러 나왔다가 너 발견한걸.”
여자는 이게 까분다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사실, 자살생각을 해야 하는건 내가 아니라 너인것 같아, 네 눈이 너무 슬퍼서 안아주고 싶어, 라는 소리가 비집고 흘러나오려 하지만, 그녀는 털털하게 그것을 감춘다. 이런 소리를 해봤자 처음 보는 사이에 자길 불쌍하게 본다고 서로 감정만 상할게 뻔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저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저 남자의 입장이었다면, 뭘 원할지 알기 때문에.
“야, 그래도 좀 고맙다? 내 목숨 구해줘서. 나 이번 레포트 제대로 안 쓰면 교수님이 F랬거든.”
“뭐..?”
남자가 결국 폭소한다. 그때만은 남자의 눈에 박혀있도록 지긋지긋하게 붙어있던 외로움이 사라진다.
“다 웃었냐.”
퉁명스러운척, 여자가 웃자 남자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다 눈물을 훔쳐내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의 의미에서, 보아하니 너 왕따일거 같은데, 나랑 친구하자.”
여자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시비를 거는척 말한다. 남자는 그녀의 눈을 보며, 그 말 아래에 내포된 진심을 본다.
그리고, 다시 웃는다. 슬픈 빛이 사라지도록, 비록 그녀를 제외한 남들이 보기에는 피식거리는 조소일지라도, 둘 사이에서는 진정한 웃음인것을 아는 그런 미소를 짓는다.
“그래.”
그리고 다시 편안한 침묵이 흐른다. 그 둘은 그날따라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본다.
“야, 우리 별 세기 할까?”
문득 여자가 생각났는지, 별들을 가리키며 남자의 팔을 나름 꽤나 세게 팔꿈치로 팍 친다.
“아악! 야, 아파. 미쳤냐? 저 많은걸 언제 다 세!”
언제 분위기 잡았냐는듯, 친구하기로 하자마자 또 다투는 그들. 티격태격하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 다시는 그 여자는 자살을 꿈꾸지도, 남자는 외로움에 죽어가며 잔인하게 바뀌지도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로써 병원의 하얀 복도를 혼자 쓸쓸히 거닐던 소녀 영혼과, 심장을 잃었던 남자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앞으로 그들의 심장은 같은 박동으로 두근거리고, 뛸 것이다.
“다 서로 항상 옆에 있어준다는 마음에서, 그 안정감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거잖아.
친구라는건 자기가 만드는 가족이야. 아플때 감싸주고, 기쁠때 같이 웃을수 있고, 행복을 만들어주는거라고.
씨밀레, 계속 같은 모양으로 이어서, 영원히 변함없는 우정으로.”
첫댓글 하아...내가 슈퍼 문 닫기전에 담배를 사러가야되서 빨리 빨리 읽어보려고 했으나 너무 길어서 중간에 읽다 말았다;; 내일 출근해서 다시 중간부터 읽을께;; 근데 이정도 분량이면 끊으면 5~6편은 나오겠구만...이렇게 한번에 올리면 난 어쩌란거냐-0-;; 나 올릴려다가 취소 눌렀어 ㅠㅠ 분량이 그냥 후덜덜;; 귀찮아도 좀 나눠서 올리지 ㅠㅠ
귀찮아서가 아니라 이 정도면 단편이어도 괜찮을것 같아서 그냥 한번에 올렸어요. 워드로 얼마 나오지도 않는데요 뭐 ㅋㅋ
"아메바들마저 귀엽다며 안아줄것 같은"에서 뿜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는 이미지죠? ㅋㅋ Deathrasher님 오랜만이예요 *_*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ㅇ^ 이번 글은 개인적인 이유로 애착이 가는 녀석이네요 .
와우..
감사합니다 , 꺄오꺄오님 *ㅁ*
아 감동적입니다. 글이 마치 파스텔풍의 풍경화를 보는듯이 아름답군요
감사합니다, 괴상망측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