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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7: 2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 암 7: 3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암 7: 2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
여기에서 풀이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본시 이 말은 식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초목, 즉 풀과 나무를 다 일컫는 말이다.
메뚜기가 풀과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등 모든 식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다. 그러니까 작은 사건이 아니라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아모스는 환상을 통하여 메뚜기 떼가 모든 풀을 다 먹어 치워 온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을 보고 나서,
이런 환상에 버금가는 일이 이스라엘에 일어날 것임을 알아차린 것 같다.
2]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1) 내가 이르되
아모스는 여호와께 용서를 구한다.
이처럼 무서운 사건을 이상으로 보았을 때 선지자 아모스는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내가 이르되"라고 나서면서 중재하기 시작했다.
선지자의 사명이 바로 중재하는 역할이다.
* 창 20: 17 -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 출 32: 11 -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2) 주 여호와여
"주 여호와여!"라고 부르짖었다.
메뚜기를 지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또 메뚜기를 보내어 식물을 먹게 해서 땅을 황폐하게 하신 분도 누구십니까? 바로 주 여호와이십니다.
따라서 주 여호와 바로 그분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주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는 길밖에 없다.
아모스가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3) 청하건대 사하소서
"청하건대 사하소서." 청하건대라는 말은 영어의 please라는 말이다.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지만 다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더 이상 이스라엘에 기대할 방법이 없었다.
단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의지할 뿐이다.
하나님은 속성상 어떠한 분입니까?
* 출 34: 6-7 –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 민 14: 18 -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시 145: 8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 욘 4: 2 -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구약 성경에 보면 매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특히 시편 기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울부짖음이 두 가지가 있다.
* 시 13: 1-2 –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 시 42: 5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시 42: 11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시 79: 5 -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첫째, "왜", "어찌하여"이고 둘째, "언제까지"라는 것이다.
아모스는 여기서 "왜,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는 울부짖음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가지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모스는 계속해서 자기가 그렇게 간청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나님은 약한 자의 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았다.
* 출 22: 22 -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 신 10: 18 -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 신 24: 17-22 –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 신 26: 12 -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 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 시 146: 9 -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 도다.
* 사 1: 17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 렘 7: 6 -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 슥 7: 10 -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3]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미약하오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 카톤 후'(*)는 '매우 작으므로'라는 의미로 이런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이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대단한 번영을 이루고 있었던 정황에 비추어 보면, 그리 어울리는 표현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모스가 이런 식으로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아모스가 여호와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고 나서 그렇게 크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지극히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T. E. McComiskey).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야곱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당시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이스라엘은 절대 미약하지 않았다.
6:1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안일하고 마음이 든든하고 자신 있어 했다.
열국 중 우승, 즉 싸움에 나가면 승리할 정도로 강한 나라였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야곱이란 이스라엘 중에서 평민들, 즉 억압받고 학대받는 피지배 계급을 가리킨다.
그들은 절망적이었다.
왕이 풀을 벤 후 이제는 일반 평민이 풀을 차지할 차례인데 무서운 메뚜기 떼가 나타나서 다 먹어 버리면 참으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누가 그들을 도와주겠는가? 강한 자들이 도와줄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멸망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저히 그럴 가능성이 없는 족속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지 아니하시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암 7: 3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3절은 아모스의 간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1]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는 즉각적으로 아모스의 기도에 대해 반응을 보이신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다.
'뜻을 돌이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함'(*)은 근본적으로 '남몰래 괴로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항상 뭔가에 대해 후회하거나 회개하는 것을 가리킨다(J. Niehaus).
하나님께서 비록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시긴 했지만, 사람이 알 수 없는 신중한 고려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때때로 뜻을 돌이키시기도 하는데, 반드시 일어나기로 예언된 일조차도 신실한 사람의 중보 기도나 회개로 하나님의 심판이 보류되거나 그런 뜻이 철회되기도 한다.
* 출 32: 32 -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 대상 21: 15 –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 대하 7: 14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 렘 18: 8 -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 욜 2: 13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욘 3: 10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2]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변덕스럽다든지, 이랬다 저랬다하는 우유부단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뜻하는 바는 첫째,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냉혈적인 존재로 움직일 줄 모르는 융통성 없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말이다.
둘째, 선지자의 중재 역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셨다.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비록 거룩하신 하나님, 인간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든지,
하나님이 화를 내신다든지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것을 신인동성동형론(神人同性同形論)이라고 한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의 간청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뜻을 돌이키셨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확인해 주셨다.
참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이상이라고 해서 꼭 시각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라는 시각적인 요소를 언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청각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약한 자를 잊지 않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셨다.
우리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더욱더 힘 있게 의지하면서 오늘도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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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간은 세상을 홀로 살아 갈수 없기에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나보다 먼저 남을 배려할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가는 길에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바람이 불면 사랑하게 된다는데
오늘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요?
행복한 시간 속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빵긋 웃으며 행복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잠 21: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