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은 미국의 어두운 면입니다. 솔직히 미국 서부, 그것도 원래 동양과의 교류가 많았던데다 철도 노동자들로 이곳에서 뿌리내리며 살았던 중국인들의 목숨을 건 거주 권리 투쟁 등을 통해 유색인종들의 권리가 비교적 일찍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고 확립됐던 시애틀에서야 인종차별이 있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지만, 미국의 중부, 남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 인종 차별이 공공연하게까진 아니더라도 눈에 띄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찰조차도 이른바 '인종 프로파일'이란 걸 가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겉으로는 이것이 인권법에 저촉되는 사항이어서 완전히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히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자 일을 하면서 경찰에 뜻을 두어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전공하고 그걸로 학교를 졸업한 저는 재학시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현직 경찰들의 강의를 통해 들은 바 있고, 경찰 스스로도 이것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인종차별에 의해 벌어지는 폭력의 오남용은 시민들의 목숨마저도 위협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 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벌어진 경찰의 시민 총격 사건이 지금 미국 전체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찰이 밴츠 차를 몰고 가던 흑인을 세웁니다. 그런데 이 차를 몰던 흑인이 차에서 내려 도망을 갔습니다. 경찰이 쫓아갔고 총격을 가했습니다. 이 경관은 자신의 테이저를 용의자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정당방위로 총격했다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한 행인이 이 장면을 자기의 전화기로 촬영했습니다. 여기엔 경찰이 총격을 가할 때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마이클 슬래거 경관은 달아나던 월터 스캇의 등 뒤에서 탄창 하나를 다 비우는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테이저 건을 쓰러진 스캇의 옆에 슬며시 놓아 두었습니다. 그의 범죄를 은폐하려 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달아나다 총격을 받은 스캇은 가족 부양비를 제대로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체포의 빌미가 될 것 같아서 달아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봐야 할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검찰은 진실이 CNN을 통해 드러나자 가해 경관 슬래거를 즉각 중범죄로 기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뉴스에서는 만일 대배심(기소 여부를 따지는, 일종의 구속적부심 같은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에서는 분명히 기소가 될 것이고, 유죄 판결이 날 경우에 이 경관에 대해 '최소 무기징역, 그리고 주법에 의거 사형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법의 잣대는 어디에나 공평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법권을 행사하는 자들의 범죄는 더욱 철저하게 단죄돼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주어진 공권력을 과잉 행사하는 폭력의 행사자들에게 어떤 단죄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 가담했던 경찰들, 그리고 그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가 사건 자체를 축소하려고 했던 것은 범죄로 볼 수 없는 것인지도 아울러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법관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바른 나라인가 다시 궁금증을 가집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생긴 이후 국가에 의해,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범죄들이 제대로 처벌된 경우가 과연 몇 건이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나라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권력이 저지른 범죄 행위들에 대해 국가 수호 행위라며 면죄부를 주어 온 시스템, 그리고 이런 것들의 반복 속에서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료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회에서,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자기의 경험을 대입하게 된다는 것이 정신의학자 정혜신 박사의 지적입니다. 세월호 유족들을 보면서 "뭐, 그정도 가지고 그래. 우리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죽었어. 애들 놀러가다 죽은 걸 갖고 뭘 그래"라는 식의 감정까지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이 공권력의 임무입니다. 그것은 사회를 위해서도, 그리고 당연히 그 피해자 개인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아직 진실을 밝히지 못한 권력의 폭력들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조속히 밝혀 치료하려는 노력들이 가장 필요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사법권이 필요할 겁니다.
요즘 미국에서 떠들썩한 사건을 들여다보는데도, 자꾸 한국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제 병증일까요?
시애틀에서...
첫댓글 열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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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와 그일당들이 마니해놧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