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있는 언덕
고 영옥
오랜만에 옛집에 들어서니 앞마당에 느티나무가 회색 잔가지를 흔들며 반겨준다. 집을 짓고 회초리 같은 것을 심었는데 어느새 온 마당을 다 점령할 기세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은 먼~ 기억의 저편으로 내 마음을 싣고 달려간다.
볼거리가 별로 없던 어린 시절 ‘느티나무 있는 언덕’이란 영화가 가설극장을 찾아왔다.
‘엄마가 집을 나간 6학년 용문 이는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 엄마가 타고 갔을 기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친구들의 놀림은 용문 이를 괴롭혔지만, 담임이신 계 선생님은 따뜻하게 지도한다. 한편, 계 선생님은 석 선생님과 사랑하게 되지만 동료의 질투와 모함으로 학교를 사직하고 용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에 사는 엄마가 몰래 용문 이를 도와주려 하는데 이를 오해한 의붓아버지는 만취상태가 되어 추락사하게 되고 그 일로 엄마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때 계 선생님마저 입대하게 되자 혼자가 된 용문은 꿋꿋하게 신문배달을 하며 야학에 다닌다. 어느 날 계 선생님이 휴가를 나오고 석 선생님도 상경하여 세 사람은 그 꿈의 느티나무 있는 언덕을 찾아간다.‘ 라는 내용이다. 안쓰럽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고 끝날 무렵에는 엉엉 울어버린 이도 있었다.
어느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느티나무 있는 언덕’ 극본을 배역을 정해서 읽히셨다. 나는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목이 메었고 상대역을 맡은 남학생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신 선생님께서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다고 칭찬해 주셨다. 남, 여가 같이 공부하다 보니 남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는데 그 친구는 달랐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굴이 붉어져서 얼른 외면하곤 하였다. 유난히 키가 크고 얼굴이 흰 그는 어디 가나 얼른 눈에 띄었지만, 짐짓 모른 체해야 되는 줄 알았다. 아마도 그건 그 시절 우리가 가진 정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끝내 다정한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중학교를 졸업하고 말았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했던가? 난 그 시절을 거의 잊고 살았다.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대부분 주일날 동창회를 하기 때문에 거의 참석하지 못해 동창모임에서 실상 제외된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휴전선 근처 중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는 중3 때 담임선생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나니 갑자기 그리움이 추억의 언어들을 싣고 밀려온다.
고속버스로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나를 기다리는 훤칠한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모습이 많이 변하기는 했어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하던 그 친구였다. “오랜만 이~예요.” 반말도 존칭도 아닌 말로 어정쩡하게 인사가 오갔다.
창 밖에는 봄기운이 감돌았다. 저 멀리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언덕에는 나무들이 녹두 빛 안개를 두르고 서 있었다. 언뜻 노란 개나리 꽃길도 스쳐 지나갔다.
그때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다음 지점에서 함께 타기로 한 두 친구가 다른 차를 타게 되었다는 전갈이다. 차 속의 분위기는 순간 어색해졌다. 그렇지만, 우리의 연륜은 어색함을 풀고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 맞아!” “그랬었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야기 끝에 그는 말했다. “생각나는지 몰라? 국어 시간 느티나무 있는 언덕!” 먼~ 기억의 저편인데도 너무 선명해서 나도 모르게 윤색을 하지 않았나? 스스로 혐의를 걸 지경이었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처럼 응수했다. “응 생각나” 그러자 그는 시선을 창밖에 둔 채. “그때 나, 무지 떨었어. 난 말이야 너에게 남다른 감정이었거든. 끝내 용기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이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독백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그러나 난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넘겨야 했다. “어머~ 그대는 자신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랐단 말이야! 그렇담 그것이 유죄로다.” 그건 농담 같은 진담이었다. “여기 바보들의 행진이요~ 하하하” 그도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물결처럼 파장을 만들며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저만치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 다 왔구나!
친구들, 옛 은사님들, 반가운 얼굴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오랜만에 옛 은사님들을 모시고 즐거웠다. 우리를 까까머리 단발머리의 그 시절에 머물게 하는 하루였다. <석별의 정>을 합창하고 학교교문을 나올 때, 은사님 사모님이 손을 흔드시는 어깨너머에서 커다란 느티나무도 무수한 잔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친구들은 이제 좀 자주 보자고 성화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다시 우리 집 붙박이가 되었다. 얼마 후 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애써 쌓아온 사회적인 모든 기반을 내려놓고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안수를 받고 늦은 나이에 중국선교사로 떠났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그런데 그 후에 더 놀라운 소식이 왔다. 원대한 사랑을 가슴에 안고 부부가 나란히 환송을 받으면서 고국을 떠났는데 일 년이 채 안 되어 심장마비로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오늘 빛바랜 추억의 갈피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 친구를 만났다.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년으로, 성숙한 장년의 모습으로 다가와 내 마음을 향기롭게 하여 주었다. 정령 아쉬운 것은 인생의 무계가 내려앉은 황혼 길에서 넉넉하고 따뜻한 미소로 마주할 기회가 없어졌음이요,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와의 추억만으로도 얼마쯤은 정겹다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올 것이다. 섬세한 느티나무 잔가지마다 물이 오르고 연록의 잎이 피어나면 싱그런 잎사귀 사이로 내 친구의 환한 미소가 언뜻언뜻 보일 것만 같다.
첫댓글 빛바랜 추억의 갈피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 친구를 만났다.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년으로, 성숙한 장년의 모습으로 다가와 내 마음을 향기롭게 하여 주었다. 정령 아쉬운 것은 인생의 무계가 내려앉은 황혼 길에서 넉넉하고 따뜻한 미소로 마주할 기회가 없어졌음이요,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와의 추억만으로도 얼마쯤은 정겹다는 것이다.
오늘 빛바랜 추억의 갈피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 친구를 만났다.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년으로, 성숙한 장년의 모습으로 다가와 내 마음을 향기롭게 하여 주었다. 정령 아쉬운 것은 인생의 무계가 내려앉은 황혼 길에서 넉넉하고 따뜻한 미소로 마주할 기회가 없어졌음이요,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와의 추억만으로도 얼마쯤은 정겹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