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휴(李用休)-「서하로 부임하는 홍광국을 전송하며送洪光國晟令公之任西河송홍광국성령동임서하]」(벼슬하는 자 백성 위에 있지 않네)
人與人相等(인여인상등) 사람과 사람 사이 차등이 없으니
官何居民上(관하거민사) 벼슬하는 자라고 어찌 백성 위에 있겠는가
爲其仁且明(위기인차명) 어진 마음으로 명철히 판단해야
能副衆所望(능부중소망)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탄만집𢾡𢿜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이용휴가 풍천 부사로 떠나는 홍성(洪晟)을 전송하며 써준 시로 전체 5수 가운데 첫 수이다. 『승정원일기』 영조 42년(1766) 6월 30일 기사에 홍성이 풍천 부사로 떠나며 하직(下直)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는 이 즈음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방관은 왕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중대한 일을 맡은 사람이기 때문에 왕은 이들이 부임하기 전에 만나서 수령으로서 해야 할 바를 묻고 선정(善政)을 베풀어 줄 것을 당부했다. 『경국대전』 이전(吏典) 고과조(考課條)에 보면, 수령칠사(守令七事)라 하여 지방관이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일이 실려 있는데, 왕은 지방관이 하직하는 자리에서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 수령칠사는 지방관에 대한 인사 고과를 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임무를 띠고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이용휴는 이 시를 지어 주며 백성의 고충을 잘 헤아려 선정을 베푸는 목민관이 되어 달라고 당부한다. 둘째 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한 톨의 곡식 백성의 피땀이요 一粒民之血(일립민지혈)
한 올의 실 백성의 근골이라네 一絲民之筋(일사민지근)
이를 항상 마음에 새겨야 於此常存心(어차상존심)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게 되리 方不負吾君(방불부오군)
셋째 수부터는 선정을 하여 부모님에게 영광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몸을 사사로이 여기지 말라는 내용, 바닷가 백성도 먼저 젓갈을 맛볼 수 있도록 관가읭 상차림이 부실하다 하여 화를 내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 역사 속 훌륭한 지방관을 본받으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홍성이 부임하는 서하(西河)는 황해도 풍천으로 바닷가 고을이다. 그러니 상 위에 해산물이 많이 오를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 같으면 ‘그곳에서 해산물이 많이 나니, 맛있는 것을 실컷 먹을 수 있겠구나. 언제 나도 좀 불러다오.’ 할 것 같은 상황인데, 친구는 맛있는 음식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백성이 애쓴 노고를 떠올리게 하고, 그들이 애쓴 만큼 그들도 맛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하라고 말한다. 평소 두 사람이 인간의 평등함에 대해, 관리의 책무에 대해 진지하게 나누던 대화가 이별하는 시 속에도 그대로 담긴 것이리라.”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이용휴[李用休, 1708년(숙종 34)∼1782(정조 6),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조선 후기의 문인.
아버지는 이침(李沉)이다.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남인 실학파의 중심이었던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는 작은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세속의 일에서 벗어나 옛 성현들의 책에 모범을 두고 옛사람의 문장을 몸으로 익히는 데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음보(蔭補)로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실학의 학맥을 따라 천문·지리·병농 등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사상에 입각한 것이 많다. 특히 하층민 입장에서 그들에 관한 전(傳)을 썼다. 「해서개자(海西丐者)」라는 한문소설에서 거지[丐乞개걸]와의 묻고 답하는 내용을 통해 그 거지가 순진하고 거짓 없는 마음씨를 가졌다고 한데 이어서, 거친 들판, 옛 산협에 숨은 선비 또는 농촌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정통의 전 양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해서개자」 통해 그의 문학관은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문학 그 자체의 진실을 추구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주자학적 권위와 구속을 부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상적 고민이 깊지 않은 한계를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문인의 사명과 창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30여년을 문장가로서 남인계의 문권을 잡았다.
작품으로는 신광수(申光洙)가 연천고을에 사또로 부임할 때 지어 준 「송신사군광수지임연천(送申使君光洙之任漣川)」등이 있고, 저서로는 『탄만집』·『혜환시초(惠寰詩抄)』와 『혜환잡저(惠寰雜著)』가 있다.
첫댓글 작금의 정치인이 새겨야 할 내용인 듯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정치인이 그립습니다~~~~~
네, 회장님 말씀처럼 국민에 대한 사랑을 품은
정치인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