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진나루터의 뱃사공
곽 흥 렬
오랜만에 화원유원지를 찾았다. 낙향하고 난 뒤로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성싶다.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지게 되다 보니 자연히 걸음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난날 대구에 살 때는 틈만 나면 산책 삼아 자주 오던 곳이다. 우리들 사람살이에서는 마음에서 멀어지면 교분도 성겨진다고 했지만, 자연의 대상은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따라 멀어지는가 보다.
모래사장을 밟으며 강변을 거닐어 본다. 흘러간 시간들이 아련히 눈에 잡힌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외가 가는 길에 이따금 드나들곤 했었던 지난날의 정경이 흑백필름처럼 펼쳐진다. 아내와 약혼식을 올린 뒤 추억을 만들려고 찾았던 곳도 바로 이곳 화원유원지이다. 그러다 보니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는 공간이다. 사문진나루터와 뱃사공의 모습이 상금도 기억 속에서 가물거린다.
이십여 년 전,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숙원사업이던 사문진교가 놓였다. 달성군 화원花園과 고령군 다산茶山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두 지역을 왕래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나룻배였다. 이곳에 오면 비록 공간은 같지 않다 해도 흘러간 옛 노래 ‘목포의 눈물’이 흥얼거려진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사문진교가 들어서기 전만 하여도 나루터에 뱃사공이 있었다. 그 때 다산면 송곡松谷의 외갓집을 갈 때면 부모님과 함께 이곳 사문진나루터에서 조각배를 타고 건너다니곤 했었다. 허연 무명옷 자락을 강바람에 날리며 세월을 저어 나르던 사공의 모습이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월의 힘 앞에 그 무엇이 영원할 수 있을 것인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직업도 부침이 심한 것 같다. 새로 생겨난 직업도 부지기수이지만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직업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력거꾼, 전화교환수, 시내버스 여차장, 극장 간판 미술사……. 뱃사공도 그런 직업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직업들은 이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박제된 채 머물러 있다.
오늘날은 속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다리가 놓임으로써 정말 너무도 편리해졌다. 나룻배로 건너면 빨라야 몇 십 분이나 걸리던 것이 자동차를 타고 가면 일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나 편리해졌건만 어쩐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함이 밀려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 하나같이 참 살기가 좋아졌다고 말들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과는 다르게 사람살이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그래서인지 호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듯 지난날을 자꾸 되새김질해 보게 된다. 놓친 열차가 아름답다고 한 것처럼 아마도 흘러간 시간이 그리워서일 게다.
이제 사공도 떠나고 사문진나루터마저 세월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이 모습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건만, 내 추억의 곳간에는 그 날의 영상이 아직껏 조금도 바래지 않은 빛깔로 고이 개켜져 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나만의 소중한 재산이다.
이따금 지난시절이 그리울 때면 그 때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보곤 한다. 그 영화 속 장면 같은 정경은 내게 풍파 심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어 준다.
첫댓글 나루터 이름이 너무 생경하여 지도를 찾아 봤더니,
제가 자주 지나 댕기던 대구-창원 고속도로 낙동강 옆에 있었군요.
나루, 다리 가 지리적, 물리적 마음적 으로 한 단계 건너가는~
구포.남지.하반. 현대로 와서, 영등포. ^^
나루터 조각배 하면,
그런 곳에 살지 않았어도
마치 나의 기억 저 편에 있는
그리운 곳,
나를 기다려 주는 곳으로
착각에 빠져들어요.
강물위의 느림과
여백이 있는 곳,
마냥 평화로운 곳입니다.
옛 생각에 잠시 거닐었습니다. 저의 고장에도 빤히 보이는 곳에 배가 교통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다라가 놓여 편리 해졌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추억이라 그럴까요
글이 잔잔하니 참 좋습니다.
나룻배와 다리가 대비되는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군요.
화원이면 지난날 교도소가 있는 곳이었죠..
김대중이도 그곳에서 수감생활 한적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