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4 목요일
어제는 부여에 내려왔다.
부역 고속 버스 터미날에서 약 40분 차로 이동하여 부여소년수양회관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나를 데리로 온 젊은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WOG (World of God) 이라는 단체가 주최하는 청소년.청년 컨퍼런스인데
처음 시작은 칼빈대학교 신학생들이
학교 학문만 공부할 것이 아니고 배운 것을 실천하자 하는 의도로
거리 전도를 함으로 이 단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단체 오면 보통(?) 공통점이 있는데
동기와 뜻이 순수한데 비하여 느을(?)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수양회의 재정이 어떻게 움직여 지는지..그런 것 참 궁금하다 ㅋㅋ
다 도와 주지도 못하면서...
마음은 안타까우니...
재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감당하냐고 했더니
느을 적자라고한다.
그때마다 이 단체의 모든 간사님들이 적자되는 비용을 나누어서 갚는다고 한다.
단체의 모든 간사님들은 얘기 들어보니 거의 전도사님들이다.
그러니 전도사님들 월급이 얼마가 되겠는가?
그 월급에서 수양회 하고 난 다음 적자를 나누어서 책임진다고 하니..
주여~~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짠하기도 하고..
그러는 가운데 또 하나님이 채우시는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게 된다고
그 간증도 열심히 하는 젊은 사역자를 대하면서
우리 나라의 차 세대에 진실로 소망이 있고 비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에 스 겔 47 장
6 -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He asked me, "Son of man, do you see this?" Then he led me back to the bank of the river.
"이것을 보았느냐!" 하는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을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시면서 보게 하는 것이 많다.
에스겔은 본 것을 깨닫게 되는 것도 있고 못 깨닫는 것도 있고
시간이 가고 난 다음 깨닫는 것도 있고...
"이것을 보았느냐?"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이것 저것 보여 주시는것이 많지 않을까?
보여 주시는 이유는 보는 것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려 함일텐데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는 것들을 통하여
마땅히 깨달아야 하는 것들을 깨달으면서 살고 있을까?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보여주는 것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유가 있을법하지 않은가?
왜 빤히 보면서도 그 보는 일에서 "깨달음"이 없는것일까?
어떤 일을 분별한다고 하는 것..
하나님의 것인지..
악에 속한 것인지..
그런 것에 대한 지각이 둔하다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에 들은 예화 가운데 하나인 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난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얼릉 튀어 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어 두면 물이 서서히 끓을때까지 그 안에 있다가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알라스카에서인가? 늑대를 잡으려면
얼음안에 칼을 묻어두고 그 칼에 고기피(?)를 묻혀 놓으면
늑대가 고기피를 핱아 먹다가 그 얼음속에 묻힌 칼날을 핱으면서 죽게 된다고 한 이야기..
들은 그대로는 기억 안 나지만.. 얼추? 그런 내용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마귀의 공략법 중 하나는
서서히.. 서서히.. 우리를 삼킨다고 한다.
전도할때도 가장 어려운(?) 전도 대상자는
천천히 믿으면 되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것들로 걱정하게 만든다.
노후대책..
건강..
자식 걱정..
집 걱정.. 차도 사야 하고..
남들만큼은 살아야 하고..
집은 세월 갈수록 넓혀가야 하고
이러한 세상 걱정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깨닫게 하기 위하여
보여 주시는 것들을 깨닫는 능력을
감퇴 시켜 버리는 것이다.
하루종일 스마트 폰에서 인터넷 쇼핑에 시간을 보낸다거나
비데오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다거나
연속극이나 영화 다운 받아서 그거 보는데 시간을
영적인 것 훈련화 하는 것 보다 더 많이 보낸다고 한다면
영적인 일들에 민감해 질 수 있을까?
하나님 하시는 일들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겠는가?
어제는 유툽으로 "마지막 신호" 라는 책을 쓴 저자 데이빗 차의 설교를 들었는데
마지막 날에 대한 징조 중 하나가
마귀가 우리의 눈과 손을 묶어 버리는 전략으로
스마트 폰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스마트 폰으로 많은 것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스마트 폰으로 카톡을 많이 한다.
그리고 오디오 성경을 많이 듣고
그리고 유툽을 통하여 설교나 강의를 듣는데 스마트 폰을 사용한다.
스마트 폰으로 연속극을 다운 받아보는 일은 없고
게임? 그런 것은 할 줄 몰라서도 못한다.
카톡 문자들도.. 부끄러운 문자들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스마트 폰을 쓰면 그닥지 ??나쁜데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내 손과 눈이.. 스마트폰에 묶여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스마트 폰이 사용되어 진다면?
스마트 폰을 쓰는데 절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가운데
주님의 재림 앞에서 어떠한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주시고 있으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말세라고.. 마지막 때라고..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깨닫는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하니...
우리는 매일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인식이
좀더 심각성을 띄고 우리 삶에 자리를 잡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리 버리..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도 기껏?? 올려 드리는 기도가
내 일용할 양식과 입을 옷과
좀 더 넓고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그런차원은 아니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여 주시고 들려 주시는 것들에서 더욱 더 하나님의 뜻 분간하는데 민감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은 수양회 마지막 날 저녁 설교입니다.
어제도 역사하시니 우리 성령님
오늘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감사해요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에스겔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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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깨닫지 못할까?" 에스겔 47장 - 임은미 선교사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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