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극영화들은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서조차
그걸 결국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극중 시스템의 수혜자인 가해자들은 인간적으로도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어서
체제를 모의할 때든 합의를 종용할 때든 시위를 진압할 때든 철저히 '개인적으로' 악합니다.
반면에 피해자들은 인간미의 화신이며 거의 성자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그럴 때 극에서 다루는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그저 싸가지 없고 오만한 개인들의 문제로 축소되어버립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이 오류를 또 다시 반복했다.
국가부도가 왜 발생했냐고? 나쁜놈 때문에요!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윤정학이 말한 것처럼 "무능과 무지"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풀어나갔다면 영화는 훨씬 괜찮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메이드 인 코리아 아니랄까봐 또 나쁜놈 소환이다. 비열한 웃음을 흘리면서 재벌만 챙겨주는 못된~ 악당... 재정부 차관같은 관료가 있어서 나라 망했져요~ 하는 식이다.
덕분에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시시한 영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하 스포일러를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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