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직접 예술 누리게…" 이게 몽블랑의 진짜 메세나
직원 누구나 10유로만 내면 오페라·미술관·콘서트 거의 무료로 볼 수 있게 지원
기업의 문화예술 활동. 수십 년 전만 해도 신선했던 이 화두는 이제 식상한 듯하다. 최고경영진이나 오너들이 문화예술 후원을 명분으로 돈을 쓰는 `값비싼 취미활동`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만년필의 대명사이자 각종 가죽제품과 시계를 만드는 명품 기업 몽블랑(Montblanc)은 다르다. 단순히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비즈니스와 경영의 일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회사가 성과를 올리는 데 문화예술 활동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몽블랑은 창의적 인재 양성에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몽블랑 직원이라면 누구나 1년에 10유로만 내면 1년 내내 오페라·콘서트·전시회 등을 거의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년 넘게 몽블랑에 몸담았고, 지난 6년간 몽블랑 최고경영자(CEO)를 지냈으며 현재는 몽블랑 문화재단 이사장(CEO)으로 일하고 있는 루츠 베트게(Lutz Bethge)는 "직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데는 문화예술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 없던, 다른 관점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이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가진 가장 큰 가치"라며 "우리 직원들에게 그 같은 힘을 불어넣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MBA팀은 몽블랑코리아 한국지사 설립과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시상차 지난달 한국을 찾은 베트게 이사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몽블랑은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문화예술 후원이 많은 편이다.
▶몽블랑 핵심 제품인 `만년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연결돼 있다. 만년필은 `쓰고 읽는 데` 쓰인다. 그리고 쓰고 읽는 것은 문화의 시작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몽블랑은 다른 명품 브랜드보다는 좀 더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브랜드와 문화를 엮는 작업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이야 이런 문화예술 후원을 이해한다 쳐도 직원들로선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1995년 우리는 레너드 버스타인과 예후디 메뉴인의 아이디어로 국립 필하모니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몽블랑 본사로 와서 직접 연주를 해주고 싶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본사나 공장 어디에도 그런 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충분치 않았고, 음향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심껏 연주를 해줬다.
우리 공장에서 일하던 한 여직원이 연주회가 끝나자 나를 찾아와서는 "항상 나는 이런 활동이 고위직들 놀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참여해 보니 정말 다르다. 이런 기회가 있어서 정말 좋고, 내가 이런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런 활동은 전 직원의 공감대 위에서 형성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1997년 우리는 몽블랑 문화예술 카드를 만들었다. 이 카드는 직원 누구나 1년에 10유로만 내면 발급받을 수 있는데,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탈리아 극장과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 공연, 함부르크 시립 미술관과 현대 미술 갤러리 전시, 국립 필하모니 모든 콘서트를 80% 할인 가격으로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 또한 각종 사내 콘서트와 공연을 무료로 볼 수있는 것은 물론 가이드 투어도 받아볼 수 있다. 실제 이런 문화를 전사적으로 확대한 후 사람들은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우리 활동에 대해서도 공감해주고 있다.
-몽블랑 CEO로 있을 때부터 문화예술이 기업에 주는 `영감(Inspiration)`에 대해 강조해왔다.
샘 테일러 우드가 몽블랑 쇼핑백을 모토로 제작한 아트백.
▶나는 몽블랑과 24년을 함께했다. 24년간 참 세상은 많이 변했다. 앞서 언급했듯 몽블랑은 쓰고 읽는, 문화의 시작을 함께하는 브랜드지만, 요즘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목표만 보고 달리며, 인터넷은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좌고우면할 틈이 없다. 하지만 나는 기업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선 기꺼이 `좌고우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건강한 좌고우면을 위해선 문화예술만 한 것이 없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여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영감을 부여한다. 매년 몽블랑이 아트컬렉션을 열고, 직원들에게 각종 공연에 갈 것을 권장하고,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는 이유다. 기존에 없던, 다른 관점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문화와 예술이 가진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도움이 됐는지 사례로 설명해줄 수 있나.
▶예전에 몽블랑 아트컬렉션을 위해 종이예술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종이를 통해 작품을 만들고 꾸미는 예술가였다. 그런데 그때 번뜩 생각난 것이 세계 최대 시계전시회 중 하나인 SIHH(스위스 국제 고급 시계 박람회)였다. 사실 이 시계박람회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다 고급 브랜드고, 매장을 꾸미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다. 각 브랜드들은 좀 더 유니크하게 매장을 꾸미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종이예술작가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멋진 전시장을 꾸밀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몽블랑이 예술에서 영감과 새로운 시각을 얻은 사례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몽블랑은 가죽 제품을 만들고 시계도 만들지만, 만년필로 유명한 브랜드다. 전임 CEO이자 현 문화재단이사장으로서 몽블랑이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앞서 언급했지만 몽블랑 브랜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성공한, 그리고 교양 있는 삶`이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또 다른 몽블랑 포인트는 `기념하고픈 순간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몽블랑 만년필이나 펜을 언제 선물하고 사는가. 대학을 졸업하거나 취업에 성공했을 때, 승진했을 때…. 모두 인생에서 기쁜, 기념하고픈 순간이다. 나는 그런 순간에 몽블랑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뭉클하다. 몽블랑이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가진 장점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는 몽블랑 핵심 제품인 만년필과 펜이 지닌 의미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디지털 시대에 모두가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을 쓰는데 몽블랑 펜이 계속 사업이 되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연코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문자메시지나 각종 메신저앱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하지만 글로 쓰인 무언가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펜으로 정성들여 쓴 편지, 만년필로 최종 사인된 문서 등은 단순한 의사소통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 편지와 문서를 보는 상대방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임을 예전보다 더 강하게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서도 몽블랑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잘되고 있는 이유다.
또 전략적·창조적 사고에는 `타이핑(Typing)`보다는 `쓰기(Writing)`가 더 중요하다.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큰 그림을 그릴 때 사람들은 흰 종이와 펜을 꺼낸다. 몽블랑 제품은 그런 면에서 시대를 초월한 문화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보고, 더욱더 문화예술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 심지어 일부에선 최고경영진이나 오너의 `값비싼 취미활동`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몽블랑은 이런 부분을 20여 년 전부터 고민해왔다. 이런 비판을 뚫고 나가려면, 기업과 문화를 하나로 물 흐르듯 연결시키는 일체감을 줘야 하는데, 그 방법이 문제였다. 또 실제로 이런 문화예술 활동이 단순 돈 쓰기가 아니라 브랜드와 연결돼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어야 했다.
-어떤 방법으로 그런 활동을 전개했나. ▶일단 몽블랑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성공, 그리고 교양 있는 삶`이다. 성공한, 교양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1차적으로는 우리 가치를 믿고, 우리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이 몽블랑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려고 했다. 1992년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제정한 것은 이런 취지에서였다. 핵심 국가에서 그 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그 나라 최고 전문가들이 선정해 격려하고, 이들 작품과 활동을 우리 고객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몽블랑은 이를 비즈니스 차원으로도 연결해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을 한정판으로 제작하고 있다.
■ who he is…
루츠 베트게 몽블랑 문화재단 이사장은 독일 하노버 출생으로 독일 EFFEM과 MARS를 거쳐 1990년 법무재무관리 이사로 몽블랑에 합류한 이후 24년간 몽블랑과 함께해 오고 있다.
1995년 몽블랑 CFO가 됐고, 2004년 몽블랑 브랜드 매니징 디렉터를 거쳐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몽블랑 인터내셔널 CEO를 지냈다. 작년부터는 몽블랑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