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상(李震相)-근독(謹獨)(홀로일 때 삼가다)(구태여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할 것 뭐 있겠나)
人知猶易獨知難(인지유역독지난) 남 알 땐 쉬워도 나만 알 땐 어려우니
雷雨雲星一念間(뇌우운성일념간) 생각 한 번 하는 사이에 별별 일들 다 일어난다
如令屋漏常無愧(여령옥루상무괴) 방에 홀로 있을 때에도 떳떳할 수 있다면
苦行何須入雪山(고행하수입설산) 구태여 설산에서 고행할 것 뭐 있겠나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한주집寒洲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조선 말기 유학자 이진상은 57세인 1874년 겨울, 책을 들고 제자들과 함께 가야산 아래 있는 만귀정(晩歸亭)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고요하게 지내면서 전에 배운 학문을 다시 익히고 여러 제자를 가르쳤다. 이 시기에 지은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나 혼자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는 다른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없으니 언뜻 보면 편안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남 앞에서 문제없기는 쉬워도 자기만 아는 데서 문제없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남 앞에서는 타인을 의식하면서 조심하게 되지만 나만 아는 곳에서는 ‘누구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무러면 어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머릿속에서 이는 생각들을 조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순간에 번개도 치고, 비도 내리고, 구름도 끼고, 별도 뜨는 것과 같은 변화무쌍한 생각들을 떨어져서 지켜보며 잘 다스려야 한다.
아무 일 없을 때 일어나는 생각을 다스리기도 쉽지 않거니와 자신의 분명한 잘못에 대한 생각을 다스리는 것 역시 쉽지는 않다. 내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남들을 원망하는 데 힘을 쓰면 자기는 자기대로 남은 남대로 괴로워진다. 이러다 보면 수많은 생각들로 뒤엉켜, 내 마음인데도 내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나만 아는 일’을 잘해 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기만 아는 일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품이 정해진다. 선인들이 항상 홀로일 때 삼가라고 했던 이유다. 저자는 누가 보든 안 보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 마음을 수행하는 도량(道場)이 될 것이라 말한다. 지금 이 자리, 내 마음을 지켜보는 곳이 도량이니, 도 닦자고 구태여 히말라야까지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이진상[李震相, 1818년~1886년, 자는 여뢰(汝雷), 호는 한주(寒洲). ]-조선 말의 유학자. 경사(經史)에 밝았고, 성력(星曆)·산수·의약·복서(卜筮)에 통달하였다. 특히 성리학에 전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심즉리(心卽理)설을 주장하여 주리설(主理說)의 완성자가 되었다.
그의 저서 《한주집(寒州集)》 《이학종요(理學宗要》에 나타난 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氣)를 인정하여, 주기(主氣)로 귀착하는 주기설, 노장(老莊), 불교, 순자(荀子), 양주(楊朱) 등은 모두 이단(異端)으로, 이(利)의 근저에 도달할 수 없다.
성(性)은 이(理)일 뿐이요, 심(心)도 역시 이이며, 정(情)도 그 근인(根因)은 역시 이니 모두가 일리(一理)에 근원한 것으로 이발(理發)만이 있고, 기발(氣發)은 있을 수 없다.
이(理)는 주인이요 기(氣)는 종(從)이니, 움직이거나 정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뿐이요, 이의 동정(動靜)에 따라 기의 동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4단은 이가 경기(經氣)를 승(乘)한 것이요, 7정은 이가 위기(緯氣)를 승한 것이니, 4단7정은 이가 승하는 기의 경위(經緯)에 따라 결정된다. 왕양명(王陽明)이 <심즉리>를 말하였으나 그것은 기(氣)를 이(理)로 오인한 데서 온 오류이니 실은 '심즉기(心卽氣)'를 주장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