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의 초대장
12월 21일, 동짓날 창문 너머로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내 어릴 적 이렇게 눈 내려 쌓인 날은
방 윗목에 있던 물고구마를 눈 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저녁에 깎아 먹곤 했습니다.
얼기 직전의 고구마는 요즘 우리가 접하는 어느 과일이
그렇게 맛이 있을까? 싶을 만큼 다디달았는데
할머니는 침침한 석유등잔 밑에서 삼을 삼고
눈 부비며 책을 읽다가 방문을 열면
마당 앞에 하얗게 쌓인 눈,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는 눈이 내리는 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종이 이불 차갑고 불 등은 침침한데
어린 종은 새도록 종을 울리지 않네
문을 일찍 연다고 그는 투덜거리겠지만
뜰 앞의 눈 덮인 솔을 나는 봐야겠네.“
또한 백거이는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에
“눈이 오는 날의 술이 초대장“ 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술이 익어 부글부글 괴어오르고
화로에 숯불이 벌겋네
해질 녘 눈이 올 것 같은 날씨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것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가 봅니다.
조선 선조 때의 빼어난 문인이자 실패한 정치가의 표상인 송강 정철은
눈에 대한 시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가지 꺾어내어 임 계신 곳 보내고자
임께서 보시 온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창문을 열면 하얗게 빛나는 저 눈을
어이 할까요
원하신다면 손수건처럼 곱게 접어 보내고 싶습니다.
2024년 12월 22일,
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