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잠적이다싶을 만큼 두문불출 상태가 길게 이어졌었다.
통신상에서 한 사람의 부재쯤 기억에 담을 이 별로 없겠지만
나 또한 그간 많은 것들을 염두에 두지 못했음은 죄스러움일뿐이다.
그렇기에 늘어놓을 변명 서두에 먼저 적게 되는 느낌은
우선 여러분을 이렇게라도 대하는 반가움이다.
1.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어느 날 아침의 출근길에 뒷차의 고약한 실수로 접한 그 상황 탓에
내 차를 수리하는데만 꼬박 6일이나 걸렸고 내 신체를 수리하는데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병원에서의 길고 지루한 체류는
언제든 달갑지 않은 법이다.
2.
서른 여덟 젊음이 만나는 ‘위중한 병세’를 지켜보는 건 몹시도 안스
러운 일이다. 아홉 살과 일곱 살 남매를 두고 악화로 치닫는 그의 병
세는 환자 스스로나 생전에 계신 환자 부모나 지켜보는 가족 모두에
게서 웃음과 의욕과 활기를 온통 빼앗고 만다.
노부모의 수족까지 보듬어 감쌀 만큼 사내답지 않은 섬세한 애정과
극진한 효심의 그였다. 그런데 이 절망적 위기를 그가 만나고 있다.
쉽게 보이지 않을 희망임에도 무작정 난 무모해 보일지도 모를 투쟁
에 함께 뛰어들기로 했다. ‘화목’과 ‘단란’을 가정으로 되돌리기
위한 내 숙명적 임무라 여기면서.
한달 이상 그의 일에 매달렸고 서서히 지쳐감도 느껴지지만 기적을
만들 그 날까지 난 이 길을 멈출 수가 없다. 간암이 한참이나 진행된
그는 6남매중 다섯째-66년생 사랑스런 내 동생이기 때문이다.
3.
지금 상황같아서야 심정상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수개월전부터 진행
되어온 터라 부득이하게 결론까지 이르게 한 사안이 하나 있다.
아내가 운영하던 ‘봉추찜닭’ 공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새로운 프랜차
이즈 가맹점을 우여곡절끝에 그 나머지 공간에 들이는 일이었다.
시험적 운영 차원에서 얼마전 가오픈을 한 그 공간은 이틀 후 18일(수)
이면 본사가 정한 공식 오픈일을 맞는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그간의
시간 속에서 할 짓 못할 짓 정말 힘든 일 많이도 해봤다. 새로 산 오
토바이의 총주행거리 3km에서 넘어져 차체와 신체의 동시 손상도 있
었거니와 배달 인력 미충원으로 인해 처음 타는 오토바이로 위험천만
의 우중배달까지 감행했었으니까.
그렇게 마련된, 퇴근 후의 내 아르바이트 공간은 ‘교촌치킨 구산역점’
이라 일컬어진다. 벌써부터 힘들고 후회스러움 없진 않지만 발전적 흐
름에 그 공간이 머물기를 소망함과 아울러 아내의 파이팅을 기원한다.
4.
얼마전 내 생일이 있었다.
그 하루전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 아내를 홉족한 시선으로 바라봤었는
데 정작 생일 당일엔 그 느낌을 거둬야 했다.
아내의 배려없는 생일 아침을 의아함으로 굶고 출근했었는데 급하게
아내를 도와야 할 일이 생겨 점심까지도 연속으로 걸렀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편의 생일임을 까맣게 잊고 있는 아내.
저녁쯤 아내와의 전화통화 말미에 얘기 하나를 덧붙였다.
“그런데 나 서운한게 하나 있어. 오늘 내 생일인 거 알아?”
그 다음의 상황전개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전날 끓인 미역국은 유난히 그걸 좋아하는 어린 딸 유진을 위한 엄
마의 배려가 요행히도 내 생일 시기와 만났던 것이다. 끼니 둘을 거
르는 것쯤이야 별 것 아니지만 그 하루가 내 생일임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단지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유독 서글픔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가족 모두가 경황없이 지낼 수 밖에 없던 현실.
많은 현안들이 복잡하게 얽혀들어 친구도, 모임도, 취미도 미처 가슴
에 담아두지 못했던 시간들이 내 곁에 오래도록 있었다.
5.
변명이 길어졌다.
요즘 난 혹사하듯 애써 바쁨 속에 있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난 몸살 끝의 여름감기에 시달리며 동시에 내게 발령된 건강
주의보에 의해 여러모로 제약까지 받고 있다.
어서 빨리 나도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일상을 맞았으면 좋겠다.
두서없이 이렇게 전하는 안부로서 다소나마 그간의 내 부실에 여러분
의 용서가 녹아들기를 소망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느껴야 할 공통 감정은 ‘미안함’이다.
6월도 벌써 반이 지났다.
---------- 인호아빠
카페 게시글
재 잘 재 잘
<잠적의 변>
인호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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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7
03.06.16 16:57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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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힘내세요~~ 아자아자 화이팅!!!
생일도 챙겨드리러 가서는 그렇게...너무너무 죄송합니다.그렇게 힘든일들이 한꺼번에 겹쳐서 뭐라 말씀을 드려야할지..힘내시라는 말씀밖에 드릴수 없는게 너무 죄송하네요..ㅜ,ㅜ 용기잃지마시고 힘내세요~
2년전..휘닉스 정모에가는 버스안에서 뵌적이 있지요.. 씩씩하시고..아주 밝은모습이셨어요..힘내셔셔 얼른 훌훌털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형님 힘네시고 빠른 시일내에 모든일이 잘풀려서 밝은 모습으로 뵙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으셨군요... 다른 것들은 이제 훌훌 털고, 또는 새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지만 동생분의 병환은..... 모쪼록 기적같은 일이 이루어져, 인호아빠님의 환하고 인자하신 모습을 빨리, 그리고 많이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프리스타일 카페 모든 회원들의 사랑과 관심은 분명 큰 힘을 발휘하고도 남음을 확인했습니다. 마음의 기력을 회복하시어 부디 모든 일이 잘 해결되길 기원합니다. 힘내십시요,,,
행님 잘될겁니다.. 힘내세요.. 화이팅~~~
서른 여덟... 한창 일할 나이인데 말입니다... 동생분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니... 몸에 이상이 없는 듯해도 분명 몸 어딘가에 어혈이 있을 겁니다. 아직 약 안 드셨다면 가까운 한의원 가셔서 어혈약 한재 해서 드세요. 나중에 고생 안 하시려면... 건강하시길, 몸도 마음도...
힘내세요...생일 못챙겨드린게 못내 걸리네요...
그런일이 있으셨군요...항상멋진 모습만 봐왔엇는데... 힘내시구요...하루빨리 뵐수잇는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네여... 힘내시구여.. 저희 프뎅이들의 맘 그대루 전해져.. 분명 좋은일들만 일어날꺼라 믿어여... 곧... 편안해지신... 인호아빠님 모습.... 뵙으면 함니당...
힘내시구여 밝은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당^^
힘내세요..~~~~아자!!아자!! 터널을 지나구 있으니 곧 밝은 세상이 다가올꺼에요...동생분의 빠른 쾌유빕니다... 그리구 새로 시작하시는 "교촌치킨"사업...성공하시리라 봅니다... 대구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안그래두 서울엔 최근에 생겨 기뻐했어요.... 꼭 성공하실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