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목요일이다. 요며칠 늦가을 추위를 보이더니 오늘은 쾌정에다 날씨도 따뜻하여 산행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모이는 장소인 성판악휴게소에는 예상대로 한라산 등반객이 타고 온 차로 만원이다. 가까스로 버스 뒤에 임시로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반갑다. 1주일 만에 만남이지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차림새가 붉은 색 일색이다. 앞장의 차림이 돋보인다. 오늘 불참신고를 했었던 완산이 뒤늦게 도착했다. 이런 좋은 날씨에 감기로 누워있기엔 너무 아깝지. 따끈따끈한 찐빵까지 한 상자 사서 아침을 걸른 햇살을 기쁘게 했다. 맛이 기막히다.
앞장의 오늘 산행계획과 주의사항을 듣고 출발!
성판악 휴게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물오름을 오르는 길이다. 정상에 항공무선표지소가 있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오름이다. 그러나 우리의 앞장이 누구인가. 이미 거기 있는 친구들을 사귀어 미리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다. 시멘트 포장 길이지만 양쪽에 우거진 가을 숲이 운치가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고운 단풍 사이로 참빗살나무가 빨간 열매를 가득 달고 우리를 반긴다.
물오름 정상에는 항공 표지소 건물과 널찍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바닥에도 친환경적으로 녹색칠을 하여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거기서 보이는 전망은 말이 필요없다. 동북쪽으로는 궤펭이오름과 물찻오름, 멀리 큰사슴이, 물영아리까지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고, 한라산쪽으로는 성널오름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하늘을 나는 새와 한라산을 넘어오는 구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물오름을 내려오는 길이다. 억새 속에 묻인 秋女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오르고 내리는데 2km가 넘는 길이지만 조금도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다. 가는 가을이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나보다. 힘이 남으니 오름 하나를 더 오를 수 밖에.
이 길이 어디인가? 우리가 5.16도로를 차로 넘나들면서 정말 아름다운 길이라고 감탄하는 수악교 못 미쳐 숲터널 길이다. 차로는 숱하게 넘나들건만 이 아름다운 길을 걸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단풍이 고운 이 좋은 계절에 우리가 이 길을 걷고 있다.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열일곱명의 산남산녀가.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 거기다 또 이런 행운이. 은하수가 직녀를 만난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길에서. 잠깐의 상봉이지만 운명적인 만남이다.
동물오름 일명 동수악이다. 물오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형굼부리에는 물이 고였던 흔적이 뚜렷하다. 지금은 물이 없는 상태지만 장마철이나 여름철에는 물이 고였던 흔적이다. 물이 고이면 지금보다 장관일 것이 분명하다. 운동장처럼 판판한 굼부리 바닥은 축구장을 방불케하다. 여기서 보는 한라산과 성널오름의 모습도 장관이다.
간식시간을 마치고 노래시간을 갖고 있다. 마침 솔로로 참석한 세 남녀가 나와서 '행복이란' 노래를 부르는데 두 남녀의 입모양이 압권이다. 확실히 노래교실을 열심히 다닌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민요 "닐리리야"를 불렀다. 가사가 "백옥같이 곱던 얼굴 어느 시절에 백발인가, 어제 청춘 오늘 백발 가는 세월을 어이하리" 하고 좀 슬픈 느낌이 드는 노래지만 신나게 입모아 부르니 속이 후련하다.
오늘, 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두 오름을 올랐다. 정말 좋다. 물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전망과 가을빛이 가득한 숲길을 걷는 낭만, 참 행복하다.
첫댓글 늦가을 고운 단풍속에 아이들처럼 즐거운 하루였다. 햇살님요, 노래라카는건 입모양이 요로코롬 돼야 하는거 아닌기요? 근데 은하수는 우째? 샌님요, 음악점수는 입벌린 순서로 줘야 함네다.
하모하모! 노래는 입을 잘 벌려야 되고 말고. 노래 안들어봐도 앞장과 남산짝은 A+, 은하수는 F를 못 면하겠구먼.
산행보고에 사진만 올려 놓고, 이거 새로운 형식인가 했죠. 이렇게 먼저 사진을 올려 놓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수정해서 글을 쓴답니다.
그럼 그렇지, 난 또 이게 어인 일인고 했지. 수고했네.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못 가본 동수악, 참 좋았다.
은하수가 직녀를 만났다고, 오작교에서? 아뿔사, 난 못봤네, 그 운명적인 만남을..... 얼매나 좋았을꼬? 차창에 어리는 님을 보내려니 은하수 맴이 또 얼매나 서운했을꼬....눈물이 다 나올라쿤다.ㅎㅎㅎㅎ
수악도 처음, 동수악도 처음. 그런데 가 보니, 가는 곳 마다 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