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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참 많다. 특히 관동팔경 등 빼어난 명소가 즐비한 동해안을 끼고 이어지는 7번 국도는 최고의 드라이브 여행지로 꼽힌다. 최근 강원도청은 북쪽의 고성에서부터 남쪽의 삼척에 이르는 240km 해안도로에 꿈과 낭만이 흐르는 ‘낭만가도(浪漫街道·Romantic Road of Korea)’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또 낭만가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치 여덟 개를 뽑아 ‘동해안 팔경’이란 이름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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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랑호 전경. 잔잔한 호수 너머로 동해 바다의 파란 물결이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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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부터 꼽아 보자면 고성의 화진포, 속초의 영랑호,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소금강과 경포대, 동해의 무릉계곡, 삼척의 죽서루와 환선·대금굴이 그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엉덩이가 들썩거려지는 ‘동해안 팔경’. 마침 여름휴가에 여행 일정을 맞춘다면 비교적 여유롭게 여덟 군데의 명소를 모두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2박3일 일정으로 아침 일찍 떠났을 경우, 첫날은 화진포·영랑호를 둘러보고 낙산사 근처에서 하룻밤 묵는다. 이튿날은 낙산 의상대 일출을 감상하고 소금강의 계곡미를 즐긴 뒤 경포대를 한 바퀴 돌면서 예향 강릉을 만끽한 다음 무릉계곡에서 탁족하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비록 동해안 팔경에는 속하지 않지만 빼놓으면 서운한, 추암 일출을 구경한 다음 죽서루와 환선·대금굴에 들렀다가 귀갓길에 오르면 된다.
제1경 고성 화진포
서울·경기 등 중부지방에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빠지는 고갯길은 많다. 북쪽에서부터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대관령……. 그래서 동해안으로 가려면 어느 고개를 넘어야 할지 고민하게 마련인데, ‘낭만가도’의 대표 절경인 강원도 팔경을 하나의 코스로 엮어 둘러보려면 44번 국도와 46번 국도를 이용해 북쪽의 진부령을 넘은 뒤 고성 화진포를 먼저 들르는 게 가장 경제적인 동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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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 물결이 인상적인 화진포. 앞바다에 떠있는 섬은 금구도인데, 최근 광개토대왕의 능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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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는 동해안 팔경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한 명소다. 미시령을 넘어 화진포로 가는 길은 늘 가슴이 아릿하다. 아마 가장 먼 곳이라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바로 화진포가 남북 분단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호수이기 때문이다.
동해안 팔경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화진포는 20세기 중반에 남북한 최고 통치자들이 휴양지로 삼았던 곳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8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매년 여름마다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화진포를 찾았고, 전쟁이 끝난 뒤 화진포가 남한 영토에 편입되자 이번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이 여기에 별장을 짓고 여름휴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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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본 화진포. 세 개의 별장 중에서 조망이 가장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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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호수는 동해안에 즐비한 10여 개의 석호(모래가 만의 입구를 막으면서 생긴 호수)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에 오염원이 거의 없는 까닭에 비교적 양호한 자연생태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도 잦았다고 하는데, 같은 석호로서 금강산을 끼고 있는 삼일포나 설악산을 품고 있는 영랑·청초호 등에 비해 인기는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끌다가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탔고, 결국 이번에 강원도 동해안 팔경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안보역사전시관으로 꾸며진 이승만별장과 김일성별장 등 남북한 최고통치자의 휴양시설을 둘러본 다음에는 반드시 화진포 백사장을 거닐어 보자. 길이 1.7km, 폭 70m의 백사장은 모래 빛깔이 하얗기로 유명하고 밟는 감촉도 매우 부드럽다. 백사장에 피는 붉은 해당화는 ‘평사해당(平沙海棠)’이라 하여 ‘화진포 팔경’에 꼽힌다.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를 희롱하다 눈을 들면 바다 건너에 거북섬이라고도 불리는 금구도(金龜島)가 눈망울에 맺힌다. 신라시대에는 저 섬에 수군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섬 북쪽에 석축 흔적이 남아 있고 중심부에서는 와편과 주춧돌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저 금구도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이라는 이야기가 고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연구가가 발견했다는 고서적을 근거로 그리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구도가 보이는 화진포 해양박물관 앞 해변에는 ‘금구도가 광개토대왕의 능’임을 설명하는 안내 팻말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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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진포 호수 안쪽에 자리한 이승만 별장. 유족이 기증한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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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백사장 산책은 좋지만 호수 둘레는 그리 걷기 좋은 편이 아니다. 빼어난 경관임에도 군사지역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아쉽게도 산책 코스가 마땅치 않다. 2002년 화진포 호숫가에 설치된 2.9km의 자전거 도로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 강릉의 경포호나 속초의 영랑호처럼 화진포 호수 주변에도 산책 코스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주민과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관광객들은 보통 남북한 최고통치자들의 별장을 둘러본 뒤 모래 고운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를 희롱하다 승용차로 호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화진포 주변에는 화진포 해양박물관, 금강산 자연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있는데, 각각 1시간씩만 잡아도 최소 2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금강산이 보이는 통일안보공원까지 다녀오려면 역시 1~2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즉 화진포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5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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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 별장 사이의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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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
화진포해수욕장에 화진포콘도(033-682-0500)가 있지만 육군 휴양시설이라 성수기에는 일반인 이용이 불가능하다. 화진포 남쪽에 금강산화진포별장(033-682-1290), 화포리132펜션(033-682-1223), 반암콘도형민박(033-682-3558) 등이 있다.
화진포 근처에서 묵으려면 일반적으로 거진해수욕장에 있는 오션빌(010-9554-4894), 조나단모텔(033-682-5252), 바다랑우리랑(016-791-6899) 등의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또 화진포 북쪽과 붙어 있는 초도해수욕장 근처에도 만금펜션(033-682-0361), 겨울바다펜션(033-682-779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좀 더 북쪽의 통일안보공원 근처 마차진해수욕장의 금강산콘도(033-680-7800)는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