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 암태도에 닿는다. 1004섬의 관문격인 곳으로 분위기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 섬을 거쳐 북쪽의 자은도나 남쪽의 팔금도, 안좌도의 네 섬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천사대교가 정식으로 개통되면 이곳은 신안군 섬 여행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암태도岩泰島라는 섬 이름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돌이 많은 섬으로, 최고봉인 승봉산升峰山(355.5m) 역시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승봉산은 다리로 연결된 이곳의 네 섬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가장 높은 것은 자은도 두봉산斗峯山(363.8m)이다. 팔금도와 안좌도에도 산이 있지만 높이가 200m에 못미치는 나지막한 것들이다. 섬 산으로 오르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승봉산이나 두봉산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어휴~ 바람이 엄청 심하네요. 천사대교가 임시 개통되지 않았으면 배가 안 떠서 못 들어왔을 수도 있겠어요.”
암태중학교 체육관 앞에 차를 세우고 뒤쪽 능선을 타며 산행이 시작됐다. 바위가 많지만 확실히 산세는 부드러웠다. 산책하듯 천천히 능선에 올라서니 북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몸이 휘청거리고 눈이 따가웠다. 하지만 한겨울 백두대간에 부는 칼바람은 아니었다. 잠깐 동안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무딘 바람이었다. 남쪽 섬은 역시 온화했다. 바위 뒤에서 바람을 피하며 햇볕을 쬐면 졸음이 몰려올 정도였다. 봄을 찾아 멀리 온 보람이 있었다.
바다 조망 좋은 쉼터가 곳곳에
고도가 높아지자 곧바로 시야가 터졌다. 발 아래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산자락 주변을 둘러싼 푸른 논밭은 생기가 넘쳤다. 암태도는 쌀보리와 마늘 농사를 많이 짓는 곳이라고 한다. 바다 속의 농촌인 것이다. 북쪽 자은도에는 백사장이 깔린 해변이 많아 제법 휴양지 분위기가 나지만, 암태도는 시골 같은 친숙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산길은 줄곧 다채로운 형태의 바위들과 함께했다. 언제 어디서나 시원한 조망을 기대해도 좋을 곳이었다. 산길 곳곳이 전망대였다. 툭 튀어나온 바위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겼다. 하룻밤 백패킹을 즐겨도 좋을 만한 장소가 무척 많았다. 널찍한 헬기장과 반듯한 바위지대가 수시로 나타나며 나그네의 발을 잡았다. 천천히 쉬어가도 정상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어 큰 부담이 없었다.
산길 주변에 부처손 군락지가 있는 309m봉 정상을 지나 10분 정도 오르면 승봉산의 명물 ‘만물상’이 나온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백 개의 바위기둥이 모여 있는 독특한 풍광이 눈길을 끈다.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만물상의 축소판 같은 앙증맞은 모습이다.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단숨에 정상을 치고 올랐다.
“널찍하고 경치가 좋아서 바람만 조용하면 백패킹하기 좋은 곳이네요.”
승봉산 정상은 말이 필요 없는 1004섬 전망대였다. 산불감시용 철탑이 세워져 있긴 하지만,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조망이 터졌다.
북쪽으로 승봉산의 형님 격인 자은도 두봉산이 솟아 있고, 그 뒤로 증도와 임자도가 가마득하게 보였다. 남쪽으로 팔금도와 안좌도, 비금도, 도초도 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풍경이 시원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텐트 치기 좋은 평평한 자리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마당바위에서 하룻밤도 좋을 듯
정상을 지나 서쪽 능선을 잠시 따르니 우뚝 솟은 기암이 연이어 나타났다. 승봉산 능선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구간이었다.
바위 사이를 지나며 보니 자은도와 암태도를 잇는 은암대교와 두봉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기념사진 한 장쯤 남기고 싶은 자리였다. 곧이어 나타나는 철제 계단을 지나니 이후 30여 분간은 흙길이 이어졌다.
울창한 잡목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수곡고개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쉼터 정자가 있어 잠시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기 좋았다. 넓고 평탄한 공간이 있어 야영도 가능한 곳이었다.
이 고갯마루에서 바로 하산할 수도 있지만, 도로 건너편의 임도를 타고 신안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노만사까지 산행을 이어갔다. 임도를 따라가면 ‘암태도 입도지’ 안내판이 나오고, 그 아래 ‘배주갱이’라고 불린 완만한 공터가 보였다. 1980년대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 황량해 보였다.
임도에서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 운동장처럼 넓은 마당바위가 있었다. 그곳은 승봉산 최고의 백패킹 포인트였다. 절벽 아래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싶었지만 준비가 부족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노만사 직전에 만난 ‘오리바위’ 또한 승봉산의 명물로 손색이 없었다. 오리의 옆모습을 닮은 커다란 바위가 흥미로웠다.
1873년에 창건된 노만사는 해남 대흥사의 말사末寺로 아담한 규모의 사찰이다. 하지만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고 서 있는 송악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대웅전 뒤편의 연중 마르지 않는 샘도 이곳의 명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암태도 승봉산은 작지만 많은 볼거리를 선사했다.
산행길잡이
암태도 승봉산은 백패킹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바위가 많지만 거칠지 않고 완만해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야영하기 좋은 장소는 정상과 마당바위다. 차량으로 접근 가능한 수곡고개에 텐트를 칠 수도 있으나, 아무래도 산 속보다는 운치가 떨어진다.
산행은 암태중학교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체육관 뒤편의 산길 입구를 통과해 감시초소~무명봉 헬리포트장~부처손 군락지~만물상~정상~수곡고개~마당바위~오리바위~노만사~수곡마을 코스가 무난하다. 총 7㎞ 거리로, 산행에만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노만사에서 수곡마을까지는 1㎞의 내리막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전화로 택시(061-271-1508) 부르면 절까지 올라온다.
교통
압해도 서쪽 끝 송공항 부근에서 천사대교를 넘어 암태도로 들어간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을 빠져나와 압해대교를 건너 우회전한 뒤, 압해읍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끝까지 가면 천사대교로 진입할 수 있다. 승봉산으로 가려면 암태면 소재지의 주유소 사거리에서 우회전. 암태중학교 체육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숙식(지역번호 061)
암태면사무소와 암태중학교가 있는 곳이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주유소, 마트, 약국, 식당, 민박이 있다. 육일관(271-6767), 영식당(271-9005), 성진식당(271-5775), 중앙식당(271-1979) 등이 있다. 숙소는 달옥민박(261-2645), 성배민박(271-676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