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앙~가압~스음네다~! 반갑스음네다~!"
이것은 돌아오는 마지막 날 저녁에 단동에 있는 북한 식당 '평양 청류관'에서 흥겹게 북한 여성들이 부른 노래 가사다.
북한 식당이라고 해서 그냥 북한 출신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식당 자체를 북한이 운영하는 국영 식당이었다.
식당은 크고 넓고 깨끗했다.
직원들은 북한에서 엄선된 당성이 강한 사람들이고.
그리고 이곳 단동이 북한과 붙어 있는 지역이기도 해서 북한의 영향력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말이라도 잘 못 해서 붙잡혀 가면 커다란 낭패라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모두는 맨 처음에는 겁을 먹고 있었다.
음식 맛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 똑 같았다.
정갈했고, 깔끔했고, 먹음직스러웠다.
긴 시간 버스를 달려왔으므로 모두들 허겁지겁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밥이나 반찬이 떨어지면 밥을 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보통 중국에서는 반찬은 돈을 더 받아도 밥은 얼마든지 추가해서 먹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테이블에 앉은 어떤 이는 이곳에서는 밥값도 따로 받으니까 그렇게 알고 밥을 주문하라고 했다.
하지만 테이블 주위로 왔다 갔다 하는 이 식당 종업원한테 밥 달라고 누가 먼저 말을 거느냐가 관건이었다.
모두들 몸조심, 말조심 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혹시나 말을 잘못 붙였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뭇머뭇하다가 내가 먼저 용기를 내었다.
지나가는 종업원을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내 손짓을 보고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로 정장을 한 여종업원 한 명이 다가왔다.
"저, 밥 좀 더 주세요."
"아알갔습네다!"
그 종업원은 톡톡 튀는 북한 평양의 독특한 말투로 또릿또릿하면서도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웃으면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어 이제는 조금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용기를 더 내었다.
"밥 더 먹어도 공짜예요? 계산 따로 해야 되요?"
"아닙네다. 무료입네다."
여전히 북한 평양 말투다.
이 말이 참 재미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있는 자리에서 북한말로 장난을 한 적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했다.
"그렇습네까? 무료입네까?"
하고 나는 북한 평양 말투로 장난을 걸어봤다.
나의 이런 장난에 우리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든 일행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종업원은 내가 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몰랐는지는 지금까지도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농을 걸고 있는 순간 바로 옆 자리에서 다소곳하게 밥을 먹고 있던 우리 아들 바다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다 인상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나한테 눈치를 줬다.
'아니, 아부지, 그렇게 북한 여성을 놀리면 어떻게 합니까?' 라는 눈치 말이다.
우리 바다는 워낙에 소심한 성격이라서 내가 농담을 하거나 우스갯소리를 하면 항상 마음을 졸이며 조마조마해 한다.
혹시나 내가 남들 앞에서 실수를 해서 남들 기분을 나쁘게 할까봐서다.
그래도 나는 그 종업원의 분위기를 살피며 북한 말로 계속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이러는 사이에 주위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북한 종업원이 쌀쌀하지도 않았고 웃으면서 응대를 잘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쪽 테이블에서 '여성 동무!'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모두들 크게 또 한바탕 웃고 말았다.
이쯤 되니 이제는 분위기가 점점 화기애애해지고 조심스럽던 몸가짐은 하나하나 풀리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에는 모두들 농담들이 잘도 오고 갔다.
"이름이 뭡네까?"
"애인은 있습네까?"
"나이는 몇 살입네까?"
하고 평양 말투로 북한 종업원한테 질문하기에 바빴다.
북한 여성들은 농담도 잘도 받아 넘겼다.
아마 남한 사람들이 왔을 때 어떻게 응대하라는 교육을 잘 받은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나는 또 평양 말투로 마지막 농담을 걸어 봤다.
"여기 냅킨 좀 주시라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종업원은 냅킨을 가지고 오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입종입네다."
나는 바로 알아듣지를 못 했다.
"예? 뭐라고요? 입 정리하라고요?"
"아닙네다. 이것은 입종이란 말입네다."
몇 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냅킨을 ‘입종이’라고 한다는 것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그럼, 이 맥주컵은 뭡네까?"
"호호호, 그것은 맥주잔이지 뭐야요?"
"그럼, 이 물컵은 뭡네까?"
"그것은 물잔입네다."
"하하하, 아, 그럼 이것은 뭡네까?"
"놀리지 마시라요. 그것은 접시지 뭐야요?"
북한 아가씨와 이런저런 유치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농담을 하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었다.
사상이 철두철미한 북한 종업원과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식사 후에는 이 글 모두에 적어 놓은 것처럼 본격적인 유흥의 시간을 가졌다.
종업원들이 어느새 한복이나 공연복장으로 갈아입고 '반갑습니다', '밀양 아리랑', '새타령' 등을 부르며 같이 춤을 추며 손잡고 신나게 놀았다.
특히 내가 이 분위기를 참지 못 하고 무대 앞으로 나가서 북한 여성과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한 것은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유흥을 즐기면서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이 사라질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지금은 냅킨과 ‘입종이’ 만큼이나 서로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큰일은 큰일이니 말이다.
2007년 8월 9일
멋진욱 김지욱 서.
첫댓글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당. 건강하시와용. 히히.
노래에 맞춘 춤이 어쩜 이리 한마리 새처럼 팔락거리는지요...헤헤 역시 분위기 대장!! 수고했어요~
얼씨구~~~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캄보디아 시엠립에도 "평양 랭면 식당"에서 이런 공연을 합니다. 식사 가격이 옵선으로 3만원이나 하기 때문에 아주 고급 한정식으로 나오고, 평양 아가씨의 공연도 한시간 정도로 볼만합니다.
정말이죠? 이날따라 춤이 잘 되더라니깐요. 아마 핑양여성동무가 너무 예뻤나봅니다.ㅋㅋ
많은 사람들이 같이 있었는데도 제 혼자만 즐기고 온 것 같아 쬐께 죄송합니다. 히히.
어쩌면 그리 상세히도 기억하실까 감탄사가 절로절로 나오네요 새삼스럽네요. 행복하셨죠. 덕분에 모두 행복에 겨워했지요. 화창한 날에 다시 한번 가고픈데 버스타는게 좀
저는요.. 이제 버스 2시간 타는것은 아~조금 가는구나.이렇게 생각합니다.훈련이 잘되어있어서..4시간까지는 거뜬합니다.게다가 우리나라 휴게실 화장실 얼마나 좋습니까?..
남남북녀 이라지라요.
저도 남자로 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히히.
대장님, 전생은 틀림없는 핑양 사람입네다.
제 춤 추는 것 보면 부럽죠? 예쁜 아가씨와 신나게 놀았으니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히히.
멋진욱과 윤 단우님 그리고 바다와 다래 백두산 여행 자알 하시고 건강하게 무사히 귀국 하셨다니 축하합니다. 반갑습네다 ! 내가 마치 백두산을 함게 여행하는듯 실감 나게 써 주신 기행문 즐겁고 고마운 마음으로 자알 읽었소이다. 춤 사위가 멋집니다.
아이고야! 대장님 춤사위가 엔간하지 않습니다. 이참에 우리춤 한번 배워보시와요. 근디 진짜 추억에 남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