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대게가 날아 갔다. 날씨 탓이다. 아니, 바람 탓이라고 해야겠다. 센 바람은 높은 파도를 일으키고…. 그러면 고기잡이 배가 출항(出航)하지 못한다. 자연히 해산물이 공급되지 않아 횟값은 껑충 뛸 수밖에 없다. 영덕을 상징하는 대게도 여기에 속한다.
어제 저녁때부터 우리 김천구미교역자회 일정으로 인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것을 크게 이분하면 '강행하자'와 '연기하자'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임원들이 순발력을 발휘해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대신 장소를 바꾸었다. 대전 베스타프리미엄뷔페로.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우리 김천감찰의 참석 숫자는 12명. 약 64 %의 참석률이다. 참석 예정자들에게 급히 문자를 돌렸다. 오전 9시 30분 남산교회에서 만나 출발하자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흔쾌히 수용해 주어 고마웠다. 소풍 전야의 학동(學童)처럼 마음이 들떴다.
오전 9시 30분. 남산교회로 사람들이 모였다. 함께 나눌 먹거리도 분담해서 준비했다. 신안교회에서 따뜻한 보이차, 조마교회에서 생수와 바카스, 향천제일교회에서 귤 그리고 덕천교회에서 친환경 사과를 준비했다. 또 선약으로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남산교회진 목사님이 천연 즙을 차에 실어 주었다.
신일교회 윤 사모님은 공동 간식을 알뜰하게 준비해 주어 행차를 넉넉하게 만들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열두 가지가 넘는 것 같았다. 우리의 하루를 책임질 차량은 천덕교회 이주헌 목사님과 신일교회 육종섭 목사님이 맡기로 했다. 운전의 베테랑이 운전대를 잡는 자체는 하루의 일정을 평안으로 인도한다.
9시 40분, 이두성 목사님의 기도로 출발의 경적을 울렸다. 시간에 너무 큰 여유가 있는게 도리어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달리다간 10시 30분이면 약속한 음식점에 도착할 수 있겠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대안(代案)으로 떠 오른 것이 중간 옥천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속했다.
우린 차량 두 대에 나누어 탔다. 이주헌 목사님 차에는 목사님들이 그리고 육종섭 목사님 차에는 사모님들이 탔다. 모처럼의 나들이는 참가자들을 즐겁게 한다. 또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듯 이야기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少)가 없다. 우리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일이! 앗차! 이야기에 몰입한 탓에 옥천휴게소를 지나치고 말았다.
순간 한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옥천 톨게이트를 나가 정지용 시인 생가를 들리는 것이었다. 함께 탄 목사님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휴게소에서 쉬고 있을 사모님들 차량으로 급전(急電)을 쳤다. 옥천 구읍에 있는 정지용 생가로 오라고. 그곳을 둘러보고 대전으로 간다면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질 것 같았다.
정지용 시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 현대시의 출발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용이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40 여 년 간 흑암(黑暗) 속에 묶여 있어야 했다. 1988년에야 그의 이름을 활자로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대표 시 '향수'는 지금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모더니즘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 정지용이었고,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을 등단시킨 사람도 정지용이었다. 1939년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을 때였다. 12세 때(초등학교 6학년 나이?) 결혼을 한 시인, 문인 중에 그 흔해 빠진 아호(雅號)를 갖지 않은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옥천군은 지용의 생가를 복원하고 그 옆에 문학관을 세워 그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한명숙 문화 해설사로부터 지용에 대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대 시인이 휘문고보 영어 교사였다는 것, 그는 일본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했다. 지용의 첫 작품은 시가 아니라 고등학교 재학 때 쓴 소설('三人')이었다는 것, 지용의 아들 한 명은 북한에 있는데 소문에 의하면 월북한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가 그곳에 눌러 앉게 되었다는 것도 문화 해설사를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다.
문학관의 지용은 젊어져 있었다. 몇 해 전 왔을 때는 40대 중반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30대 초반쯤으로 변해 있었다. 이른바 회춘(回春)이다. 방문객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 둔 지용의 밀랍 상(像)이다. 40대의 지용 상은 사람들의 손 때를 너무 많이 타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과감하게 30대 초반으로 회춘시킨 것 같다.
우리는 짝을 지어 지용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비록 밀랍 인형이지만 지용과 1세기를 뛰어 넘어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러 있었다. 마당 지용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대전으로 향했다. 매년 5월 열리는 지용문학제에 꼭 오라며 때 이른 초청을 받아 두었다.
정각 11시 30분.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베스타프리미엄 뷔페, 규모와 내용 면에서 우리를 압도하려 했다. 교역자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배중훈 목사님의 일정 소개가 있었다. 그리고 장소가 바뀌었는데도 이해하고 따라 준 데 대한 감사 인사말도 뒤따랐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신안교회 조양금 사모님에 대한 축하 이벤트(부부 '뽀뽀하기'), 금년 초 은퇴를 하게 된 예원교회 백영길 목사님을 축복하는 시간도 있었다.
광천교회 박임상 목사님의 식사 기도 후 우리의 먹거리 마름질이 시작되었다. 음식의 가지 수가 많으면 젓가락이 갈팡질팡하게 된다. 나는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회(膾) 등의 해산물을 먼저 먹고 다른 것으로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기로. 뷔페가 흑자 운영될 수 있는 것이 무한정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적정 양을 먹으면 그것 이상을 섭취하기란 불가능하다. 한 테이블에 앉은 옥승영 김규효 이두성 이주헌 목사님들도 유효적절하게 음식들을 갖다 날랐다.
점심 식사 이후 시간은 감찰별로 움직이면 되었다. 우리 감찰의 일정은 몇 번 엎치락뒤치락했다. 처음엔 계룡산 밑에 있는 카페 촌에 가서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그런데 한 쪽에선 이왕지사(已往之事) 나온 김에 충남 보령시로 가서 바닷바람을 쐬고 오자고 했다. 그런 뒤 저녁 식사까지 하고 귀가한다면 오늘 우리 감찰은 풍성한 단합대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긴급 제안이 들어 왔다. 인근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하늘물빛정원을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거리와 시간적인 면 그리고 모처럼 힐링(healing)까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급히 의견을 거기로 모았다. 몇 구비의 길을 거쳐 하늘물빛정원에 도착했다. 채 가시지 않은 겨울 끝인데도 사람들이 꽤 붐볐다. 우린 식물원에 들어 가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곳에 오면 꼭 들려야 할 곳이 족욕카페(FOOT BEATH CAFE)다. '제2의 심장 발'이라며 입구에서부터 홍보가 요란하다. 입장료 1인당 1만원, 30분 동안 족욕(足浴)…. '족욕7가지의 효과'라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1.족욕 효능의 가장 으뜸은 역시 혈액순환 촉진 2.머리를 맑게 해주어 두통 불면증 신경쇠약에 도움 3.체내 노폐물을 배출하여 피부의 탄력에 도움 4.뭉친 근육을 풀어주어 근육통과 신경통에 도움 5.통통 부은 발이나 종아리 붓기를 빼주는데 도움 6.신진대사 촉진으로 비만 예방 및 다이어트에 도움 7.감기를 예방해주고 피로 회복에 도움 등.
30분이 금세 지나갔다.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 몸이 가뿐해진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된 듯했다. 처음이라 망설였는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은 안 해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풍성한 점심 식사 덕분에 그때까지 배가 든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곳 채담에서 저녁 식사를 했을 것이다. 선(先) 경험자인 윤 사모님이 적극 권했으니까. 채식 뷔페로 정말 먹을 만 하다고….
돌아오는 길도 갈 때만큼 유쾌했다. 황간 올뱅이 아니면 직지통닭칼국수로 저녁 식사를하고 헤어지려 했다. 그러나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No!', 출발지 남산교회로 와서 교역자회 단합 모임을 마무리했다. 향천제일교회 김규효 목사님의 마침 기도는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2월을 잡았다. 할렐루야, 임마누엘이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