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기 둘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습니다. 달서구에 있는 작은 시장, 조그만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술과 밑반찬, 채소 등 기본재료는 가게에 있지만, 안주는 주문하면 시장 내 어물전, 육소간 등에서 사 와서 조리를 하니 신선도도 좋고, 조미료를 쓰지 않고 짜지도 않게 간을 하니 유명식당보다 낫습니다. 물론 함께 하는 이들이 좋으니 맛도 더 낫게 느껴지겠지만요. 만나면 살아온 얘기는 별로 않습니다. 정치 얘기도, 종교 얘기도 않습니다. 살아가는 얘기, 살아갈 얘기를 주로 나누지요. 그래서 더욱 편합니다.
한 친구는 제가 함진아비를 했었습니다. 인물도 좋아 회사 다닐 때 회사 사보 표지모델도 했었던 친구인데 축구도 선수급으로 잘 했었습니다. 그도 다 지난 일이지요. 이젠 종합병원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건강이 제일 소중한 거라고 얘기합니다. 이 친구는 만나면 꼭 자기가 돈을 냅니다. 구미에서 만나면 자기가 출장비를 받았으니 내야하고, 대구서 만나면 자기 구역이니 내야 한답니다. 3차까지 가도 꼭 자기가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친구입니다. 어제 술자리 계산도 이 친구가 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 없으면 못할 일입니다. 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다른 친구는 학창시절, 단골식당에서 술 마시며, 읽던 책 중 마음에 드는 문구를 함께 읽기도 하고 시를 같이 쓰기도 썼었습니다. 같이 술 마시다가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도 두 번이나 같이 잡혀가기도 했었습니다. 오랜 타지생활을 접고 최근 대구에 정착하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워낙 오랜 세월을 술과 문학, 삶의 근간을 함께 천착해 왔던 친구였기에 가까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합니다. 선친께서 교직을 명예퇴직하시고 잠시 서적 외판을 하셨을 때 자청하여 백과사전을 한 질 사주었던, 마음 씀이 고운 친구입니다. 어제 술집에서 멍게 먹으러 2차 가자기에 그냥 1차로 마치자고 했더니 다른 식당에 가서 멍게를 주문해 왔더군요. 맛있게 먹었습니다. 2차의 유혹을 물리치고 일어서려는데 횟집주인이 다시 와서 멍게 한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이 친구가 제 어머니 좋아하시는 걸 잊지 않고 미리 주문해 둔 것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네 집에 자기도 많이 자고 어머니께 해장국도 자주, 맛있게 얻어먹었었는데...” 하며 건너는데 불현듯 옛 생각이 나며 오랜 벗의 마음자리가 더욱 고마워졌습니다.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오며 친구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았습니다. 이 친구들 둘 말고 참으로 많은 벗들의 면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만남의 빈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끈을 놓지 않고 지내는 것 같아 기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고, 소식이, 연락하는 방법마저 끊긴 친구도 여럿 있었습니다. 먼저 세상 벼린 친구는 어찌할 수 없지만, 살아있으되 연락이 끊긴 친구는 틈틈이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게을리 말아야겠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새로운 만남을 자제하고 만남 자체를 줄이라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만남도 즐거이 할 것이지만, 오랜 벗들과 교류를 지속하고, 연락 끊긴 친구를 다시 잇는 노력도 계속할 것입니다. 친구.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당분간 그 설렘을 이어갈 친구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즐거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제 블로그에 올린 글 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이 어머니, 아내, 그리고 친구입니다. 친구와 관련된 블로그 글들도 차근차근 다시 읽어 보며 깊은 의미를 다시 느끼고 인연의 끈을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잔잔하게 번지는 파문처럼 마음속에 즐거움이 퍼져나갑니다. 그들 각각이 내게는 아래, 모셔온 글 속의 ’소중한 단 한 사람‘입니다.
낙동강체육공원에 있는 구미캠핑장에서 주말 오후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요즘 캠퍼들은 기본에 충실하더이다. 고스톱 치는 이도 없고, 고성방가 하는 이도, 담배 피는 이도 없고... 우리 금오문화연구소 회우들도 벌써 10년 가까이 된 벗들입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228565963
촌집 갔다 귀가하는 길에 만난 불타는 노을, 그리고 못의 추상화에 빠졌습니다. 자연도 소중한 벗입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226702911
봄비가 내리던 날, 고찰에서 물소리를 듣고 보았습니다.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도 계속 함께 가야할 도반입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231106488
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지요(모셔온 글)======================
어느 날
문득 그리움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가령, 길거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을 들었을 때.
“아, 저 노래…. 그때는 참 좋아했던 노래인데.”
그리움 하나가 톡 터지니 뒤이어 연달아 톡톡톡 터집니다.
옛사랑이 떠오르고 철 지난 음악이 떠오르고
친구가 떠오르고 그때 일이 떠오릅니다.
이런 날, 칵테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그 생각나는 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과 웃고 사람과 사랑하고
사람과 얘기하고 사람과 어울려 노래하고 싶어집니다.
휴대폰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저장되어 있다 해도,
SNS의 ‘친구’ 숫자가 나날이 늘어난다 해도,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졌다 해도
그러한 기술들이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의 온기를 대신할 순 없죠.
텅 빈 가슴을 그것들로는 채울 수 없지요.
그리움은 전선을 타고 날아드는 소식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체온을 느껴가며
아름답고 부드러운 대화로 채워져야 하는 거죠.
사람은 많지만
내 맘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내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한 사람이 그리운 날입니다.
단 한 사람.
-----김이율의「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