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라스전투는 국적은 당과 이슬람, 즉 중국문명과 이슬람문명이 부딪힌 전투지요. 가히 서양의 투르-푸와티에 전투와 맞먹는 문명사의 큰 파장을 일으킨 전투입니다. 만약 이전투에서 당이 이겼다면, 오늘날의 중앙아시아국가들은 유교문화권에 속하겠지요.
물론 부딪힌 것은 당군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당군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이 전투는 고구려인 장군 고선지가 주축이 되었고, 다른 이민족들이 많이 개입한 전투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이 전투는 고선지장군의 토번정벌과 관련하고 있고, 관리하는 사람도 고선지 자신입니다. 고선지의 토번정벌을 살펴보면 부대가 어떻게 편제되었는지 잘 알수 있습니다. 기병은 고선지가 끌어다 붙이 것이었지요. 이때 고선지의 부대는 대개가 기병이었고,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에서 패하는 그날까지 이 시스템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당군의 시스템이 아니지요.
그리고 기병이 주축이었다면,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때 전국에서 말을 왜 그렇게 끌어모으지 못하고 당은 버틸수 없었을까요? 중국은 전반적으로 기병을 좋아하는 국가도 아니고, 말을 키울만한 초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보병이 중심이었지요. 그러니 늘 기동력에서 북방오랑캐에게 밀리는 것입니다.
어쨌든 탈라스 전투라면 다시 공부해보실필요가 있으실 것 같네요. 저희 교수님이 쓰신 '고선지평전'을 한번 구해서 읽어보시죠.
첫댓글안사의 난 때, 당나라 정부가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지 못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로 ①안록산이 이끄던 군대는 만리장성 부근에서 계속되는 전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함 ②당의 고위층의 사치와 타락 입니다. 당의 주력부대가 기마부대 이라는건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 장창부대와 노부대의 활약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
당의 고위층의 사치와 타락이라는 이유만으로 보기는 당이 무너져가는 과정은 흡족히 설명하기 힘듭니다. 구당서 고선지열전, 봉상청열전을 한번 찬찬히 읽어보세요. 특히 동관전투부분 신당서는 역사를 왜곡한 감이 조금은 있지만 한번봐보세요. ^^조금 충분한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안사의 난 때, 당나라 정부가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지 못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로 ①안록산이 이끄던 군대는 만리장성 부근에서 계속되는 전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함 ②당의 고위층의 사치와 타락 입니다. 당의 주력부대가 기마부대 이라는건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 장창부대와 노부대의 활약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
당의 고위층의 사치와 타락이라는 이유만으로 보기는 당이 무너져가는 과정은 흡족히 설명하기 힘듭니다. 구당서 고선지열전, 봉상청열전을 한번 찬찬히 읽어보세요. 특히 동관전투부분 신당서는 역사를 왜곡한 감이 조금은 있지만 한번봐보세요. ^^조금 충분한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담이지만 기병 20만이라는 매소성 전투는 과장이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 당은 토번인지 어딘지에 더 큰 신경을 쓰고 있어서 정예부대 몇을 제외하면 신라에 있던 당군은 그다지 강한 병사들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탈라스 전투에서 당이 이겼더라면 중앙아시아는 유교문화권이라... 남의 나라 일이라고 함부로 말씀하시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36년동안 일제의 식민지였지만 신사참배 안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민족 못지않게 위대한 민족입니다.
글쎄요.. 몽고가 키예프 공국에 이슬람까지 지배했는데도 문화를 전파못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말씀대로라면 거기도 우리나라처럼 수라나 쪽두리같은 풍습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음.. 제생각에는 몽골이 세력을 확장하더라도 그들을 끌어모을 문화가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별로 농경에 어울리는 문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귀폭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견초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당은 당시 토번 신라 모두 신경썼구요. 이근행이 이끄는 번병20만 은 말갈군이 주축입니다. 자세한것은 나당전쟁사를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