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같은 장소, 같은 길을 여행하는 데도 누구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언제 여행하느냐에 따라 여행자에게 비춰지는 세상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여행에서 느껴지는 감흥은 크게 달라지곤 한다. 나는 좀 느리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좀 많이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도보여행은 자동차로 씽-- 지나가면 볼 수 없는 여러가지들을 알게 해준다.
자동차로 지나가면 알기 힘든 것들... 숨겨져 있는 소소한 문화재, 자연과 바람, 나무냄새, 흙냄새, 음식냄새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과 삶들이 그것이다.
약 두달 전에 아들녀석과 이른 아침 백운호수를 한바퀴 돌며 추석 때 할아버지 댁에 걸어서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집이 안양 평촌이고 아버지 댁이 용인 수지... 약 20km가 조금 넘는 거리이다. 가는 길들이 도심지의 큰 도로라 자연과 가깝지 않아서 좀 안타깝기는 했지만, 추석때 조금 힘들게 어른들을 뵈러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아이도 흔쾌하게 가고 싶다고 해서 가기로 하고 어제(9월17일)안양평촌에서 용인수지까지 20여km의 도보여행을 하게 되었다.
■ 안양 평촌에서 용인수지까지 22km의 도보여행 여정
1. 우리집 출발(안양시 평촌동 꿈마을 라이프 아파트)
졸린 눈을 부벼뜨며 집을 출발하는 재환(06시 10분)
2. 샘마을 지나 1번국도가 보이기 시작
비가 조금 오긴 하지만 쌩쌩하게 1번국도와 만납니다. 이제부터 1번국도로 남하...(07시)
3. 2시간 걸었더니 꼬로록...
씩씩하게 해장국으로 아침식사(8시)
해장국을 씩씩하게 시켜놓고 매워서 국은 못 먹었지만 워낙 배가 고팠는지 밥 한공기를 뚝딱 해 치운다.
4. 의왕시에 입성(1번국도)
드디어 안양을 벗어나 의왕시 입성(아직 멀쩡)
5. 도로공사하는거 구경도 하고....
아스콘 포장하는거 구경하기
건설회사 다니는 토목기술자 아들 아니랄까봐 아스콘 포장하는 장비와 아스콘 포장을 하는데 주변에서 왜 수증기가 올라오는지 알려달라고 한다...(아빠가 꼭 아는걸 물어봐주는 훌륭한 아들 ^^)
6. 북수원IC찍고....
신기한 신호등이 있었던 북수원IC
북수원 IC 입구도로를 사람이 횡단하기 위해서는 신호를 바뀌게 하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유럽 쪽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시스템을 우리나라에서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동이 적어서 적용해 놓은 시스템으로 보인다. 이 녀석 어찌나 신기해 하는지...
7. 드디어 수원시 입성.
드디어 수원시 아직 팔팔... 쌩쌩...
수원시의 경계는 지지대고개라는 언덕 위에 있고 이 언덕위에는 지지대라는 지방문화재가 있다. 호기심이 일어 가파른 계단(사진우측 경사 계단)을 올라가 보니 비석이 있었고 이 비석의 이름이 지지대이며, 이 비석은 조선 정조가 어머니를 능에 모시고 이 고개를 넘어가면서 어머니의 능이 보이지 않을거 같아 행차를 늦췄던 곳이라 하여 늦을지 자를 두번써서 지지대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유적이야 말로 이런 도보여행이 아니면 절대 찿을 수 없는 유적이 아닐까 싶다. 지지대에 올라가는 계단의 경사가 급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조금 아쉽다.
8. 지나가다가 황소(?)랑 사진도 한방...
9. 아름다운 길 수원 노송지대
여기서 부터 조금 힘들어 했는데 웃어보라는 아빠의 강요(?)에 웃음이 좀 어색하다.
지지대고개를 내려오면 1번국도 옛길이 나오는데 이 옛길 양측으로 노송을 비롯한 소나무 군락지가 있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지만 옛 정취가 물씬 나는 아름다운 길이다.(일부 노송은 조선조 정조가 내탕금을 내려 심게 하였다고 한다.) 재환이와 이 소나무의 정취를 따라 1번국도를 벗어나 걷다가 길을 잘 못 들어 2km 가까이 돌아가야만 했다.(이 녀석 이 이후로 문화재가 있어도 돌아가는 길은 사양이란다.)
10. 비가 와서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
닌텐도의 파워 : 다리도 아프고 비가 와서 짜증날만도 한데...(11시 30분)
아침부터 오던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기 시작해 전진할 수가 없었다. 다리가 아프고 힘들다고 하던 녀석이 여기서 30분정도 쉬고 닌텐도를 하더니 기운차리고 씩씩하게 다시 시작한다. 30분 쉬고 나서 하는 말 "아빠! 이제 출발해도 될 거 같은데 빨리 가자" (참! 여기서 아이에게 닌텐도게임에 져서 벌칙으로 매 정각마다 길가에서 큰소리로 "00시"라고 큰소리로 외쳐야 했다. ㅎㅎ)
11. 수원종합운동장 찍고 드디어 창룡문.
드디어 창룡문! 약 2/3지점에 도착(1번국도 안녕, 이제부터는 43번국도)
원래의 계획은 여기서 길 건너 보이는 수원화성을 견학하고 일정을 계속하기로 했으나, 배도 고프고 날씨도 궂은 관계로 건너뛰고 고고씽--
12. 드디어 꿀맛같은 점심식사(재환이 원기 회복하다.)
이녀석 돼지갈비 1인분, 냉면 1그릇, 공기밥 1/3공기를 먹은 상태다.(13시20분)
원래 밥을 잘 먹는 녀석이지만, 너무 너무 잘 먹는다. 사실 점심식사 바로 전까지는 조금 많이 힘들어 해서 버스를 타야하는건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점심식사를 한 이후로는 버스를 타는게 어떠냐는 나의 제의에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말로 나를 감동케 만들었다.
13. 다시 비가 많이 와서 휴식(경기지방경찰청 앞)
역시 버스정류장, 역시 닌텐도에 빠져 정신이 없다. 가끔 비가 와줘서 너무 좋단다.(14시30분)
14. 무화과 파는 아줌머니와 한 컷.
국도변에서 무화과를 팔던 아주머니, 안양에서 걸어왔다고 했더니 놀라시며 무화과 하나를 덤으로...
15. 드디어 수지대로... 끝이 보인다.
오늘 도보여행 한 도로 중 유일하게 인도가 없었던 용인시 수지대로! 다음에 아이와 함께 여행하게 되면 이런 도로가 있는지 답사를 한번 해야 할 것같다. 아이와 같이 걷기에는 너무 위험한 도로여서 힘든 길이었다.
16. 드디어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용인상떼빌(재환이 할아버지댁)
연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뿌듯해 하는 녀석!(15시 50분)
드디어 할아버지 품안에...
식사시간과 비로 인한 휴식 시간 3시간 30분, 도보 시간 6시간 20분,
걸은 거리 약 22km, 걸음 수 33,500걸음(나의 만보기 결과)의 대장정(?)을 마친 재환이는 실실 농담까지 건네며, 즐거워 했다. 녀석의 얼굴에는 22km를 걸어온 피로감 보다는 무엇인가 성취했다는 성취감과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여행 전 집사람이나 부모님이 말했던 것처럼 9살 재환이에게는 너무 무모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녀석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판단은 재환이의 의사를 따르기로 했는데, 재미있을거 같다는 대답에 출발을 결정했다. 물론, 힘들어 하면 무리하지 말고 꼭 버스를 타라는 집사람의 다짐을 뒤로 하고 출발했었는데 다행히도 잘 마치게 되어서 너무 기뻤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모든 여행과정 대부분을 재미있게 받아들여 주어서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다음 번에는 북한산 둘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자연의 길을 여행하자는 약속과 함께 여행을 마무리했다.
"환아!! 아빠는 오늘 환이가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웠단다. 아들아 사랑한다."
ps. 다음날 아침 재환이는 멀쩡하게 뛰어놀았고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운동 좀 해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나에게 무리인 일들이 많아질 듯...ㅎㅎ
첫댓글 우와~~~정말 멋지네요!!! 아드님 화이팅입니다!!! 걷기에 좋은 도로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을텐데요..ㅋ
멋진 아빠와 아들! 방학때 섬진강변 걷기 추천합니다 *^^*
감사합니다. 현재 목표는 북한산 둘레길과 지리산둘레길 도보여행을 거쳐 2012년에는 국토순례에 일주일 정도 참여해보는 것으로 아이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섬진강변길도 알아봐야겠네요. 사실 최종목표는 2013년 아이와 함께 1년간의 세계일주여행을 하려고 준비중입니다. 모두 이루어 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멋지답니다 저희는 낙동강 한번 걷고 저 한3년 저희아들한데 계모라는 소리듣고있는데 이제 고딩이되는 아들 엄마랑 국토순례하자고할까봐 기숙학교로간다고합니다 재환이 화이팅
아 좋은내요 조카들이랑 북한산 둘레길 한번 하기도 지쳐들해서 힘든데. 화이팅
넘 멋지네요 ... 전 조카만 있는데 ... 조카랑 해보고 싶어요~
넘 멋지십니다!! 저도 딸과 함께 계획해야겠어요 이번 겨울방학에..^^
앗!! 우리 언니가 사는 성원상떼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