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터디 전시에 붙여서
포토그래피와 에스노그래피, 또는 사진가이든 인류학자이든
김양주(배재대학교 교수, 문화인류학자)
나 인류학자는 그 사진가와 접속했다.
그리고 사진과 민족지(ethnography)의 접속. 이는 인류학자에 의한 ‘민족지과정’과 사진가에 의한 ‘사진과정’이 접속됨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사진스터디 그룹과의 계열화와 그 과정에서의 경험과 사유는 다양한 접속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과 모색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여러분 앞에 새로이 생성되고 있는 내가 있다.
인류학자의 존재이유 중 하나인 다른 문화의 이해 작업. 이를 위해 자문화를 떠나 이문화 속으로 들어가 행하는 필드워크. 현지연구로서의 필드워크는 인류학자가 이문화란 현실을 필드노트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해석이자 결과물로서의 민족지와 그 작성과정은 ‘사진찍기’, 즉 사진의 재현과정과 유사하다.
사진과정에는 대상과 나, 달리는 사물(혹은 현실)과 주체, 그 사이에 카메라가 존재한다. 민족지 과정에는 나와 타자, 즉 자문화와 이문화 사이에 필드워크가 있다. 그래서 필드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필드노트의 기록과 작성은 카메라로 대상을 찍는 과정과 결코 다른 모습이 아니게 된다.
사진과정에서의 ‘공부하기-걷기-찔림당하기-찍기-리뷰’라는 일련의 행위는 민족지과정에서의 ‘데스크워크-필드워크-발견하기-기록하기-비교하기’라는 과정과 대단히 유사하다. 특히 필드에서의 걷기, 보기, 발견, 선택, 기록의 민족지과정은 사진 과정을 반복하는 셈이다. ‘차이와 반복’.
촬영은 대상을 사진가가 카메라로 찍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사진이 있다. 사진은 주로 특수적인 사용으로 이루어진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 보도용, 선전용, 상업광고용 등등으로 말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고 선전물이 되면서 하나의 전체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다른 흐름으로 바꿀 수 있다. 눈-기계가 카메라-기계와 접속되었을 때, 사진과정은 우리들과 우리의 시각문화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진을 부분적이며 비특정적인 사용으로 가져갈 수 있다. 카메라는 바로 우리 삶의 한 부분을 낯설게 하여 부분적이며 비평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비특정적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진과정이 나의 민족지과정과 접속되면서 생기는 새로운 질문과 과제들. 내 민족지는 무엇을 재현하고 있는가? 내 눈앞에 전개되는 이문화 속의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이문화 속의 무엇을 어떻게 프레이밍할 것인가? 무엇을 비판하고 성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무엇을 새로이 생성할 것인가? ‘흐름으로서의 통접’. (00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