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는 날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 받는다. 요즘 10대 소녀들도 백설공주 속의 왕비처럼 요술거울을 하나씩 들고 다닌다.
그 거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동 보정으로 자신의 실제 얼굴보다 더 예뻐 보이게 만드는 셀카 앱이다. 웬만한 젊은 여성들은 사진이 잘 받는 쪽의 얼굴에서부터 날씬해 보이는 각도, 팔과 다리 포즈까지 아마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현대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를 매달 모아 분석하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2013년 ‘올해의 단어’로 셀피(Selfie)를 선정했다. 셀피는 스스로 찍은 사진을 뜻하는 단어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셀카와 같은 말이다. 2002년에 처음 등장한 셀피는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2012년부터 널리 사용하는 단어가 됐다.
사진 보정 효과를 가진 셀카 앱과 사진공유 플랫폼이 불필요한 성형수술을 부추기고 신체변형장애라고 불리는 정신적 질환 위험까지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
셀카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때문에 셀카가 자존감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자신의 기분상태와 경험 등을 공유하기에 좋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제시된다.
그런데 최근에 사진 보정 효과를 가진 셀카 앱과 사진공유 플랫폼이 불필요한 성형수술을 부추기고 신체변형장애라고 불리는 정신적 질환 위험까지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를 진행한 미국 보스턴의대 닐암 바쉬 박사팀은 예쁘게 필터링 된 셀카 사진을 계속 보다 보면 진짜 그 얼굴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불필요한 성형수술을 받거나 심하면 신체변형장애를 앓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신체변형장애란 외모에 결점이 없거나 그리 크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는 정신 질환이다. 실제로 미국 안면성형외과학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해 성형수술을 받은 이들 중 55%가 셀카처럼 보이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셀카 패러독스 속에 숨은 나르시시즘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조사결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15년 한 성형외과병원에서 홈페이지 방문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SNS 이용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성형수술 욕구를 느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성형수술 욕구를 느낀다고 대답한 이들 중 13.3%는 SNS에 올린 셀카와 실물의 갭을 줄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요즘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이들의 손에 들린 것은 예전처럼 연예인 사진이 아니라 SNS에 떠도는 일반인 얼짱 사진이 많아진 게 특징이다. 또한 그중에는 자신의 보정된 셀카 사진을 들고 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백설공주’ 속의 요술 거울은 그나마 정직했다. 백설공주가 성장한 어느 날 왕비가 물었을 때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다고 대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셀카나 SNS의 사진 보정 앱은 어쩐지 자꾸만 당신이 제일 예쁘다고 부추기는 것만 같다.
그런데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다른 이들이 올린 셀카는 보기 싫어한다. 이는 독일 뮌헨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셀카 패러독스’라고 명명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셀카의 진짜 목적을 엿볼 수 있다. SNS에 자신의 셀카를 올리는 이들은 온라인 상에 노출되는 자신 및 타인의 모습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셀카 밑에 달리는 ‘좋아요’와 댓글의 수를 기대할 뿐이다. 그들은 더 많은 좋아요를 자신에 대한 사회적 인정으로 해석한다. 즉, 셀카 문화는 나르시시즘에 뿌리는 두고 있는 셈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스냅챗 등 사진 위주의 SNS는 나르시시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다. 실제 자기 모습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얼굴로 자신을 포장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법한 많은 관심을 타인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자아 무시하고 가능 자아만을 부각시켜
심리학자 헤이젤 마커스 등은 인간에게 ‘현 자아(now self)’와 ‘가능 자아(possible self)’라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 자아란 현재 자신의 실제 모습이고, 가능 자아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으로 보면 된다. 2010년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능 자아가 현 자아로 묘사되는 현상은 익명성이 보장된 SNS 공간에서 가장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30년간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연구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브래드 부시먼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게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내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옳다거나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들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과시욕과 특권의식이 강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현실 세계 속의 현 자아에 걸맞는 상식적인 대우를 받을 경우 모욕감을 느끼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강한 자존감은 취업을 할 때나 새로운 이성을 만날 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아도취적인 나르시시즘은 자신에게는 물론 사회에도 도움이 안 된다. 자존감은 타인의 칭찬에 의존하지 않으니 자아도취처럼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같은 요소가 스며들 수 없다.
사실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시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에 도취된 이가 아니었다. 에코라는 요정이 나르시스를 사랑했다가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에코의 동료 요정들은 율법의 여신 네메시스를 찾아가 나르시스를 벌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해서 나르시스에게 내려진 것이 바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벌이었다.
셀카족들이 성형수술과 신체변형장애에 빠져드는 현상은 어쩌면 현 자아를 무시하고 가능 자아만을 부각시키는 세태에 내려진 또 다른 형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