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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가랑비 내리는 밤, 대여섯의 청년이 여관촌 뒷골목을 질주하고 있다. 그들의 필사의 발놀림은 갑자기 멈춰버린다. 마치 영사기가 멈춘 듯이 뚝!하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렸다. 그들 중 하나가 못다 맺은 말을 하는 것 같다. 나직한 목소리가 빗방울에 스며든다. 우연히 경험한 알렉산터 페인의 영화 <사이드웨이>는 철없는 30대 M의 기억 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을까. M은 30대, 20대의 동료들과 영화를 보았는데, 그의 물리적 나이라는 것이 과연 인생의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왜 30대인가? M은 피부상태는 40대요, 체력은 30대(그나마 헬쓰로 단련학 덕이다.), 정신상태는 갓 스물을 못 벗어났다고 자각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M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청춘과 젊음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했다. 그런 앳되먹은 청춘의 한 장면을 우리는 영화 '그로잉업'시리즈를 통해서 수없이 보아왔건만, 그 영화의 주제는 애석하게도 언제나 '우리도 그걸(?) 할 수 있을까'다. 지겹도록 그 주제에 매달린 채, 지금은 30대가 되어버린 철없는 남성들의 로망이 사이드웨이에서 다시금 꽃피고 있으니, 영화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M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비겁함이라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 사이드웨이는 M에게는 연령과 그에 걸맞지 않는 행동/생활양상들로 인해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자신의 얘기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가 될 수밖에.
M도 꼭 그러한, 그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기억이 있었으니, 그걸 여기다 일단 까놓고 보자. 그러면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M의 모습의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질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찬란한 행각에 조금이라도 동의를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아직 청춘이거나, 혹은 박애주의자다.
영화 속의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에 해당하는 M의 친구 Y는 잭의 강인한 턱선을 빼다 박았으며, 현실에서도 권해효와 얼핏 닮았다. 그리고 그 어설픈 외모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작업을 거는 일순위 도구로 유용하게 쓰인다. 그 친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단단히 코 꿰였구나"였다. 방탕한 엽색행각을 이제는 반성했다고 믿는 소수의 친구들은 결혼 후 그의 생활을 보고 자신의 견해가 틀렸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왜 기쁘냐면, 그의 혈기 왕성한 전투적 에너지는 동행 친구에게 언제나 잉여 파트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놈은 의리파다. 한때, Y랑 술먹는 날이면 빤스 갈아입고 가야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어쨌든 그 친구가 결혼을 몇 주 앞둔 시기, 끓어 오르는 젊음을 주체 못해 바닷가 유흥지로 나섰으니, 그 길에 M도 동행했었다. (새 빤스 입고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2명의 여인네를 길에서 낚은 후 이야기는 매뉴얼대로 나아갔다. 권해효 얘기는 의례 동행자가 꺼내기 마련.. "이 친구, 닮은 연예인 없나요? 권해효라고.." "맞네예.. 아하하, 깔깔깔~~~" 자리가 무르익고 두 여성이 "오빠야, 잠깐만"을 외치고 작전시간을 구하면서 자리를 비우면 두 친구는 영화처럼 행동지침을 확인하는 것이다. "M, 쟤는 니한테 넘어왔다. 좀 잘해봐라." 그러고 여성들이 되돌아 온다.
잠시 뒤 풍경은 매번 비슷하다. M과 웬 여성 하나가 바닷가를 어슬렁 거리면서, 젠장할, 문학얘기를 하는 것이다. M 나름으로, 정치얘기나 포르노 얘기, 군대 얘기, 프로야구 얘기를 빼고서 마지막으로 남은 게 그거지만, 그녀의 대답은 "차 끊길 시간이 다되서..."다. 한심함에 망연자실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한심한지 그는 알지 못한다. 청춘이? 아니면 그놈의 문학이라는 것이? 그들의 어이없는 청춘은 곧 영화처럼 두 번째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고만다. 때는 6년전 추석 전날, 그 덤앤더머 같은 친구들이 이번엔 떼로 모여 철없는 그로잉업을 연출하기로 작당을 한다. 그로잉업. 이것의 주제는 단 하나. '우리도 할 수 있을까'다. 서른의 이 안타까운 청춘들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그로잉업의 주제에 매달려 추석명절의 의미 따위는 접어둔지 오래다. 권해효를 필두로 농구선수 문경은에 심지어는 개그우먼 이경실의 전남편 손광기까지 동원된 대규모 프로그램이었다. 아, 추석특집이란 이런 건가 보다. 천하장사 이만기도 이때 출연한 유명인사였다. 추석 연휴 테레비에 나오는 인사들이란 대개 평소에 섭외없는 그저그런 인물임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하는 것을..
어쨌든, 이 추석특집 연예인들은 곡마단처럼 필사의 노력으로 팬서비스에 들어갔으니 그 노력의 결과 그 여인네들과 우리는 한 데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고, 그녀들의 제의에 따라 가까운 단란주점에 가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부슬부슬 내리는 열나흘의 밤비를 짝짝이 우산으로 맞으면서 그들은 그렇게 걸어간다. 게다가 더 기쁜 것은, 정치, 포르노, 군대, 프로야구의 다음에 오는 M의 문학얘기가 그곳에서는 기가막히게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M옆의 그녀는 적잖이 소설나부랭이를 읽었나보다.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단란주점으로 들어섰을 때, 그 연휴특집연예인들은 순간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마담에게 '언니 우리들 왔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룸에 모인 그들은 곧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덤터기를 써야할 것인가. 토낄 것인가. 금새 결론은 났다. 1분뒤 우리는 우산도 잊은 채 여관촌 뒷골목을 냅다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그들의 영화는 완성되지 않았다. 장렬한 최후를 위해서는 다음 한 마디가 필요했다. "칭구야.... 핸드폰 놓고 왔다." “...........................”
영화 사이드웨이를 보면서 M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 그것은 30대가 되고도 삼십일 수 없는 철없는 청춘들의 현실 그 자체다. 따라서 M은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없을 뿐더러 평가를 내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 수밖에 없다. 잭의 바람기가 진심인줄 알았다는 20대 모씨의 말은 귓등에 스쳐갔다. 그로잉업이 열아홉, 스물의 어린 것들만의 영화라고 해서는 안 된다. 숱한 난관을 거치고도 여전히 그로잉 업 중인 30대의 불굴의 초상을 보고도 사이드웨이가 인생의 패배자와 그의 삶의 씁쓸함과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로잉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밀리언달러베이비 같은 통찰은 아직 멀었고 필요없다고 외치는 천하장사 이만기 M과 그의 연예인 친구 권해효, 송광기, 문경은 등에게 찬사를 보낸다. 마흔이 되도록 자라나는 그들을 위하여 이 영화를 권한다. ........................ M은 금요일 밤에 이 영화를 보고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방세와 입에 칠할 풀을 위해 남경기도 미군기지 근처의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건성건성의 '특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국철 속에서 친구들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는다. "많이 벗냐?"가 유일한 질문일지라도, 사이드웨이를 보라고 권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 그 자체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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