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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성10회 사랑방
 
 
 
카페 게시글
등산.골프.스포츠.마술 스크랩 주금산, 다시 한번 가야겠어요.
김정연 추천 0 조회 97 12.06.13 14:5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선배님들 몸살 나지 않으셨어요?

하산 길을 잘못 찾아들어 무려 두시간여를 헤매느라 장장 7시간 걸린 산행이라 나중엔 정말 발바닥이 아플 정도였어요.

주금산, 이름값 했지요? (보통 주(鑄)금(錦)산 하면 ‘죽음산’으로 알아듣기 십상이지요.)


 산행 시작은 달콤했어요. 산자락 초입부터 홍건히 떨어진 까만 오디가 반기데요. 풀섶에 떨어진 하나를 주워 입속에 넣었더니 그 즙의 미묘한 맛이라니! 유월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좔좔 소리내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맑았고 녹음 짙은 산길엔 산객도 드물어 무척 호젓했습니다. 길섶에 숨어 핀 족두리꽃과 연보라 초롱꽃이 수줍은 미소로 반겨 주었으며, 한약재로 쓰는 천남성과 흔치 않는 은대란의 고고한 모습도 볼 수 있고 여러 종류의 새 울음소리가 흐르는 땀을 식혀줄 만큼 청량한, 자연 생물의 보고인 산이어서 제가 추천을 잘 하였다고 우쭐한 마음까지 일었었죠.

 바람이 잠깐 일어 땀을 식힐 겸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드는데, 아! 키 큰 산딸 나무의 꽃인가? 했는데 아니어요. 하얀 나비 수천 마리가 유희를 벌이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내 생전 처음 보는 환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나비가 집단 서식을 하는 것은 그만큼 덜 오염되고 청정한 지역이라는군요. 함평에 가지 않더라도 나비의 축제를 볼 수 있는 행운이 그저 감격스러웠습니다.


 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앞 뒤 옆, 아무도 없이 홀로 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많은  생각에 잠깁니다. 먼 과거의 일에서부터 근래의 잡다한 일상에서 겪는 하찮고 사소한 문제에 억매어 있는 나를 봅니다. 왜 그렇게 여유롭지를 못하고 옹졸했던가? 내 생각과 마음 그릇의 작음에 새삼 늬우침이 일고 실망을 합니다. 산에 오르면 ‘마음을 비우자, 겸허해 지자.’ 하고 항상 다짐을 해 놓곤 저잣거리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 결심은 간곳없이 한심한 속물이 되어 버리니,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만도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제 1 쉼터에 오르니 이정용 선배님이 벤치 하나를 잡고 앉아 계십니다. 오늘 아침 어부인(나의 삼덕 초등, 경북여고, 효대 약대 후배)으로부터 앵두주를 한병 희사 받아 왔다고 하셔서 내가 크게 감격 먹은 선배님이지요. 또 한 벤치엔 어떤 여성 둘이가 엉거주춤 일어서는 중이었구요. 뒤 따라 올라오신 이상건 선배님이 그 여성들에게 다가 가더니, “어디서 오셨나?” 괜히 묻습니다. 그리고 곧 뒤따라오신 이무성 선배님이 ‘휴우’ 긴 숨도 내 뱉기 전 배낭을 열더니 과일 그릇을 꺼내서 들고 가십니다. 어느쪽으로냐구요? 아, 글쎄 생면부지의 여성들한테로 입니다. “퇴계원에서 갖고 온 토마토 인데 하나씩 드세요. 아니 두 개씩 드셔도 됩니다.” 이러면서요. 두 분 선배님의 눈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뒤 늦게 얻어먹은 대추토마토는 맛있기는커녕(두 여성은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했음) 씁슬했지만 괜히 나도 두 개를 집어 먹었어요. 그 여성들이 떠나고 내가 강짜를 좀 부릴까 말까 하는 찰라 이정용 선배님이 선수를 치십니다. “본처는 여기 두고 괜한데 가서 토마토를 인심 쓰다니, 것도 두 개씩이나.” 후배인 내가 왜 졸지에 본처가 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속은 후련해집디다. 하하.

 떡과 과일, 그리고 선배님들의 유머로 마음의 허기까지 채우고 정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묵묵히 한결같은 페이스로 오르는 이민원 선배님, 오늘 어부인이 동참 못해서 기운이 좀 없어 보입니다. 제일 후미에서 유영희와 이일순 선배님을 챙기시는 송무관 선배님은 참 젠틀하십니다. 자칭 타칭 경로사상이 투철한 분이라는데, 말씀도 얼마나 유모러스한지 그저 영희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산간을 흔듭니다.

웃음에 답하듯 검은 등 뻐꾸기의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요즈음 이 새의 별명은 ‘송대관 새’라고 한답니다. 네 박자로 노래한다고. 듣는 사람의 느낌대로 별명이 많은 새죠. 누구는 ‘홀딱 벗고’로 들린다고 하데요. 하하.


신갈나무, 철쭉 또 단풍나무등 중키의 활엽수림을 지나서 650봉에 오릅니다. 오른쪽 양지바위 뒤편에 가려져 있는 주봉을 아쉬운 마음으로 포기하고 왼쪽 헬기장 쪽으로 향합니다.


 선착조인 이정용 선배님이 식당자리를 잡으셨어요. 누구 모양 토마토 안 주고도 멋진 자리를 불하 받았답니다. 이정용 선배님은 오늘 계속 점수를 잘 얻고 계십니다. 키 큰 잣나무가 빙 둘러싼, 서쪽으론 독바위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남쪽으론 멀리 아득히 서리산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입니다.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이일순 선배님과 나는 걸뱅이 노릇을 합니다. 갖가지 푸성귀와 오징어 뽁음, 그리고 다양한 반찬을 준비한 선배님들한테서 눈치껏 얻어 먹는 그 재미가 꿀맛입니다. 괜히 반찬을 이쪽저쪽 나누는 척 하며 한 점 집어먹는 짜릿한 맛, 기가 막힙디다.  허지만 술권은 내가 확보했지요. 앵두주와 천진주(병모양도 예술품인)를  애껴애껴 따루다 보니 “제대로 좀 따루라”는 선배님들의 핀잔도 들었지요. 이동건 선배님의 부침개는 금방 동이 납니다. “생전 먹어본 떡 중에 이렇게 맛있는 떡은 첨이다.”고 하시는 선배님의 칭찬에 ‘택배로 부쳐 들어 말어’ 하고 마음속으로 갈등한 것 아실랑가? 모르실랑가? 하하


 ‘다린 펜션’ 안주인 안계자의 전화 재촉에 서둘러 일어섭니다. 점심 겸 저녁 준비를 해 놓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부중 동창이지요.

 별 의심 없이 아래쪽을 향한 길로 내려갑니다. 마음이 바쁜 나와 이무성 선배님이 앞장섰지요. 경사기 제법 가파른 길을, 간간이 밧줄도 타고 내리며 30여분 내려왔는데, 이정표도 없고 미심쩍은 차에 마침 산을 오르는 한사람을 만나 물었더니, 글쎄 이 하산 길은 포천으로 내려가는 길이라지 뭡니까! 우리의 목적지 ‘몽골문화촌’ 하곤 정반대편이라니, 다리에 힘이 쫙 빠집니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서  왔던 길로 내려가야 한다니,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맛있는 밥과 달콤한 술도 몇 잔 마신 뒤라 한시간여를 가파르게 올라야하는 것은 정말 유격훈련이나 다름없겠죠. 모두다 초행길이면서 산을 쉽게 생각한 愚(우)를 주금산은 호되게 나무랜거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초여름 해가 길어 어둠이 빨리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산턱에 걸린 지는 해의 여명 속에 한그루의 고사목이 보입니다. 모든 걸 비어낸 듯 허허로운 나무가 조바심치며 안절부절 하는 나를 보고 슬쩍 웃습니다. ‘세속에서 길들여진 아등바등 하는 습성을 버리고 좀 느긋하면 좋겠구먼’ 하면서.

 올라갈 때 계곡에 진을 치고 앉은 물놀이 꾼들을 부러워하던 안영태 선배님이 새로운 에너지 충전이 되었는지 사쁜사쁜 잘 내려가십니다.

 저 만큼 ‘다린’ 펜션이 보입니다. 기다림과 걱정에 지친 친구가 그래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앞개울에 내려가 혹사를 당한 발을 씻고 어루만져 주며, 오늘 하루 임자를 잘 못 만나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어요.

 길 안내 잘못한 삼덕초등 출신 엎드려 뻗쳐! 하실려나 조마조마 했는데 아무도 기합 줄 생각 않으시데요. 이상건 선배님이 꺽어오신 葛(갈)藤(등) 줄기가 회초리인줄 알고 지레 놀라긴 했지만요.

아무탈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 축하주가 무지 시원했어요. 밤이 이슥해 귀가하신 선배님들의 안위를 일일이 여쭙지 못하고 이런 단체 편지 올리는 무례를 용서해 주시와요.

산행 끝남도 시원 달콤했어요. 마석에 계시는 이상경 선배님이 갖고 오신 수박의 맛 땜에.

 선배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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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6.14 09:59

    첫댓글 그러고 보니 10회 동기로는 이상건,이일순,안영태 삼인방 이고, 12회 는 이무성,이민원,이동건,이정용,송무광- 5명,
    거기다,꽃 띠 여성 김정연 여사와 유영희 여사-- 계, 10명이군요. 나는 집안 대소사로 참석 못했지만 산행을 한거나
    다름없이 눈에 선 하옵니다. 김정연 여사깨서 글로써 각자의 개성을 잘 꼬 집었으니 말이지요 !
    남자들은 항상 명심 해야 할 것은 여자의 투기심 이란 걸 아시지요 ?

  • 작성자 12.06.14 16:58

    선배님이 계셔서 장면장면을 인증샷 하셨으면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는 산행기가 되었을텐데,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어요. 다음번엔 2코스로 올라갔다가 1코스로 내려오면 착오 없을것 같아요. 산은 참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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