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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살아서 맛보는 천국이로다.” |
외국 신자들이 간혹 우리나라 신자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서양의 가톨릭이 먼 나라인 한국에까지 전파되었느냐?’ 그럴 때 저는 이러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천주교는 두 가지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한국에는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이전부터 이미 학자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처럼 한국은 ‘목자 없는 신앙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둘째는 천주교가 전래된 초기 백 년 동안에는 나라로부터 대규모의 박해를 받으면서 무수한 순교자들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이 순교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회가 큰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 땅에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초기 100년 동안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나라로부터 사학집단으로 단죄를 받아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도 두렵지 않게 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반상·적서·남녀차별을 당연했던 조선시대에, 하인과 마님이, 백정과 양반이 함께 기도하고 한 밥상에서 같이 먹으며 “형님, 아우”라고 불렀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평화의 공동체를 보면서 “아, 살아서 맛보는 천국이로다. 이것을 천국이라 하지 않으면 무슨 천국을 믿으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예수님은 ‘백성을 선동하고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기소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형을 당하심으로써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또한 김대건 신부님도 천주학을 주동하는 ‘신부’라는 이유로, 1846년 용산 새남터에서 참수당함으로써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결국 스승이신 예수님도, 우리나라의 순교자들도 모두 같은 이유로 죽어갔고, 그 죽음의 역사 위에 오늘의 교회가 서 있는 것입니다. 저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과 신앙고백, 실천과 증언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죽음, 칼날의 죽음, 피 흘리는 죽음,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을 알아 모시고 급기야 순교의 길을 걸으신 신앙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 또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순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내가 나의 삶 속에서 순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최종운(로사리오) 신부 용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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