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뭔지
언제부터인가 제천 사는 친구 녀석 P와 연락이 끊겼다. 아주 소박하고 누구보다 정이 많았던 친구였는데.. 나와는 학부 시절부터 무척이나 돈독한 사이였었고.. 한마디로 내겐 중마고우인 친구였다.
598. 제천
제천은 서울에서 원주보다도 더 멀다. 동해 쪽(태백 장성 도계)에서 오다 보면 삭막한 태백 장성 도계를 지나 제법 도시다운 곳이 제천이고.. 예전에는 태백, 장성, 도계등 탄광에서 돈을 벌면 제천에 나와 썼다고들 했다. 그래서 한 때는 제법 흥청거리는 도시였었다고..
나와는 의과 대학 동기에다가 평생 친구였었던 P가 연세대학교 원주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를 마치고 개업을 한 곳이 제천 중앙시장 근처였었다. 그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지만.. 하필 왜 서울서 먼 제천일까?! 하면서.. 아주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가 광부셨는데 진폐증에 걸리셔서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힘들었을 탄광 노동자들을 위해서 나름 생각 끝에 제천에다가 개업을 했다고 했다. 학부시절 참 고운 생각으로 우리는 절대로 돈만 벌자고 서울에다 병원을 개업 하는 짓은 말자고 서로 약속을 한 친구였었다. 아무튼 그 때 녀석의 어려운 사정을 도와 비싼 의과대학 등록금을 대주었던 부인이 시골이라 돈도 못 벌 제천에다 개업 하는 것을 무척이나 반대를 해 힘이 들었다고.. 오 년 전 대장암을 우연히 발견을 하고는 제천에 병원을 결국 닫았고, 전라도 광주로 내려간다고 했었는데.. 그리고 이젠 연락마저 끊겼다.
물론 입원을 했던 서울 모교의 대학부속병원에는 문병을 자주 갔었지만 그리고 원주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가끔 가기도 했었지만 제천에는 딱 한 번 개업을 했을 때 녀석을 찾아 가 제천 중앙시장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학부시절 야구 시합 리그전을 할 때 제일 꺼리는 포수를 묵묵히 반년이나 해주어서 어찌나 고마웠던지, 녀석의 결혼 전날 안양으로 함잡이로 갔었던 일, 녀석의 결혼 예물인 시계를 모래네 시장 대폿집에서 잡혀먹고 술 마셨던 일, 그래서 부인에게 엄청 야단맞았던 일, 그 후 녀석에 부인이 날 오랜동안 미워했었고.. 아마 지금까지도.. 남영동에서 곡차 한 잔을 하다가 동네 불량배들과 싸워 용산 경찰서까지 갔었던 사건.. 수 많은 옛 추억들에 대한 수다 끝에 결국 개업까지 하게 됐다면서 자축을 했었는데.. 해장을 한다는 핑계로 다시 또 한 잔을 하면서 그 유명하다는 제천의 올겡이 국도 맛을 보고..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 원주까지 따라 나온 녀석과 자정이 넘어서 까지 원주시장에서 횡성 도살장에서 금방 와서 싱싱하다는 이름도 모르는 돼지부속 구이에 또 한 잔을.. 생각만으로도 청춘이었던 친구 녀석과 같이 한 그 때가 어찌나 좋았었던지.. 그러고는 틈만 나면 한 번 더 오라고 했었는데.. 왜 녀석이 제천에 있을 때 다시 안 갔었는지?! 하는 후회가..
날이 풀려 봄이 되면 이제라도 제천 중앙시장으로 녀석이 있던 없던 간에 녀석의 행적을 찾아 한 번 가 봐야 겠다
글. 고 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