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학단체 송년의 밤 행사 때 정성스레 건네준 세 권의 책을 오늘에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친필 사인을 받아 건네주신 이돈배 시인님의 시집 <궁수가 쏘아내린 소금화살-나무아래서 刊>을 우선
오늘 완독했습니다. 깊은 사유와 번득이는 비유, 연륜이 묻어나는 시 편 편의 구성을 감명 깊게 숙독했습니다.
다 읽고나서 문득 담아두고 싶은 싯귀들을 몇 군데 옮깁니다.
-당나귀 귀에 토끼눈을 한 짐승 비슷한 사람. -시간은 기차보다 빨라서 가끔 세월을 세워두려고 간이역을 만든다. -잔디는 대지의 상처를 덮는다. -추운 양지쪽 약속을 기다리는 아물지 않은 상처. -뒤뜰 항아리마다 소금 절인 책이 가득하다.
-우리의 심장은 얼마만큼 부풀어야 스치는 바람소리를 엿볼 수 있을까? -시멘트 불럭에 핀 꽃들에게 나비들이 계절을 묻는다. -영감 무덤을 찾아 할멈이 두 손으로 술잔을 올리자 "술이 와 이리 싱겁노?" -생명을 여닫는 스위치는 두려움을 감추려고 방황하는 어둠과 마주한다. -찻집에서 차를 기다리는 것보다 장터 국밥 한 그릇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편한 것을 알았다.
-세월을 앞서 가는 여인들이 은행나무 아래 앉아 있다.
-사람은 산으로 가 무덤이 되지만 민들레는 가벼워진 몸으로 가진 것을 모두 내려 놓는다.
-참외 한 봉지만 살아 숨쉬고 바쁜 택시도 교통정지선에 앉아 있다.
-사계절 네 폭 병풍으로 표구된, 그릇에 잠긴 시간이 기다리는 언덕.
-가냘픈 손으로 슬픔을 마시고 별들의 밤에 눈물 훔치는 들에 핀 지친 꽃.
-달리는 타조가 길을 묻거든 가던 길을 그대로 가라 하게나.
-잠을 깨우치는 별들의 울음소리 별의 무덤으로 저무는 밤.
-상차림들은 거리를 붙잡아 하루 종일 거품이 몸을 적신다.
-고목나무는 멍든 상처를 안고 몇 번이고 눈부시게 큰 줄기로 남아 이야기 한다.
-특이한 발상법과 상상력으로 나름대로의 독창적 세계를 구축해낸 시집(공광규시인의 발문) |
첫댓글 회장님의 다독은 도져히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ㅎ 편안한 휴일되십시요^^
부회장님~! 저 인자 회장 아니어라우.
늘 책을 가까이하시며 시상의 재료꺼리를 한지게 채우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삶이 바빠 책장넘기기가 어려우니 늘다음으로 미루는 인생입니다
단순합니다. 저는 술과 담배를 안 하니 시간이 좀 남지요 뭐.
독서를 한다는 것도 좋지만 그 많은 시편 중에서 좋은 시어를 찾아낸다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그래도 그 시인님은 좋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글을 정독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점에서요
즐거운 일요일 되십시오
시집을 대하다 보면 속독으로 얼른 덮고 싶은 때도 있지만 읽던 시편을 다시 읽어보며 음미하는 시집도 있더라고요.
남들 다쓰는 흔한 단어들 식상하지요
번뜩이는 시어들에 빈 속내를 보여봅니다
시는 결국 말의 비트는 기술이지요.
-잔디는 대지의 상처를 덮는다.-
푹 꽂혔습니다.
고맙습니다. ^^*
영감 무덤에 술을 올리자 "술이 와 이리 싱겁노?" 이 싯귀가 저는 가장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영감이 죽고 한참 지난 후 재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영감 무덤에 잔을 올렸거든요.
할멈이 "이혼하여도 되지요? 위자료 술 한 잔 밖에 없어요"라고 했거든요.